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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카눈넝 Oct 23. 2022

<2장>_2.나는 아이를 물었다

며칠째 장마가 계속되었다. 뉴스에서는 90일 일상 지속되는 장마라며 연신 떠들어 댄다. 창밖을 내다봤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살짝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하얀 커튼이 흩날렸다. 아침이었지만 온 집안의 불을 꺼놓고 있으니 저녁만치 컴컴했다. 정신없었던 아침 시간을 차분히 하기 위해 커피머신을 켰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 내릴 준비가 되었다. 얼마 전 카페인 부작용으로 고생을 했었던 터라 내 평생 찾지 않을 것 같았던 디카페인 캡슐로 골랐다. 이제는 카페에서 디카페인 메뉴를 훑어보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사은품으로 받은 텀블러에 쏟아붓고, 커피 머신이 내려준 디카페인 커피를 그 안에 부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빗방울이 아파트 난간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소리만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거실로 향했다. 어둑해진 거실에는 치열하게 보낸 아침 시간을 증명해 주듯 먹다 남은 밥그릇 주변으로 밥풀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포크는 상 밑으로 떨어져 둘째의 손수건과 뒹굴고 있었다. 첫째의 기나긴 밤을 함께해 준 애착 인형과 거실 한편 수북하게 쌓인 못다 갠 빨래 더미도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이 고요한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모금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 순간 안방에서 둘째의 칭얼거림이 느껴졌고 식탁에 커피를 올려둔 채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커피타임이 끝이 났다.     


순한 둘째 덕분에 나의 육아는 비교적 순탄한 편이다. 하지만 순탄하다고 해서 절대 편하다는 건 아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게 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에 신경은 예민하고 작은 아기에게 부족함 없이 잘해주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다짐한다. 거기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여전히 ‘똑같이’ 받고 싶은 첫째가 있다. 이제 막 태어난 둘째를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자꾸만 첫째가 혼이 났다.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는 것을 어른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한 것이 있다. 남편이 어느 날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 정도라고…?’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부모도 아이와의 적응 시간이 필요한데 아이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임이 큰 첫째에게서 둘째를 지켜내는 사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예민했을까 싶었지만 나는 초초초! 예민 상태였다. 작은 실수도 절대로 용납하지 못했고 반복되는 꾸지람에 첫째의 마음속에는 분출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있었다.

둘째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첫째가 떼를 썼다. 둘째를 재우고 있어 첫째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자 다짜고짜 나와 둘째 사이를 파고들며 안기려고 했다. 그 바람에 둘째는 첫째 밑에 깔려 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잠깐만 멈춰보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더 강하게 행동했다. 그때 둘째는 백일 정도 됐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첫째가 이해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눈앞에 보이는 첫째를 물었다. 첫째는 깜짝 놀라 더 크게 울며 옆으로 비켰고 나는 그제야 둘째를 안전한 곳에 눕혀 놨다. 첫째는 엄마가 자신을 물었다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아이를 물어버린, 아주 못 되고 본인 감정하나 자제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고 말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자책과 함께 죄책감에 몸이 떨렸고 모든 것을 다 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육아는 그렇게 나를 극한으로 몰아갔다. 육아 서적이나 방송에서 보던 아이의 마음을 토닥여주며 차근히 속삭이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대학교 동창 친구가 어느 날 책 선물을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난 절대 학대하지 않을 거야!’ 라는 직설적인 제목을 가진 만화책이었다. 아라이 피로요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었다. 볼드모트를 입에 담기 두려워했던 마법사들처럼 모두 학대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두려워한다. 그런데 학대라는 단어를 책의 제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니, 적지 않아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시원했다. 작가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혼내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곧이어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고 엄청난 난이도의 육아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면서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을 독백하는 장면들이 나오는 데 너무 공감돼서 책을 보는 내내 누가 시원하게 등을 긁어주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첫째와 키즈카페에 갔었다. 한참 놀다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옆자리에 손님이 앉았다. 엄마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삼 남매였다. 그 엄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했다. 목마른 아이에게 물 대신 커피를 줬다. 막내로 보이는 아이가 형, 누나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왔을 때는 신경질적으로 “여기 왔으면 그냥 너희끼리 알아서 놀아!”라고 혼을 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너무한다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지금의 순간에서 그 엄마가 너무나 이해가 가며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아이에게 물 대신 커피를 준 것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느새 첫째가 여섯 살이 되었고 둘째는 세 살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흔히들 ‘짬밥’이라고 하나? 왕 엄마들에게는 한없이 초보 엄마지만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 나올 때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남편의 일이 바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우리 남편은 출장이 잦았기에 육아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지 도무지 몰랐다.

잠깐이라도 괜찮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에 집안일 대신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그럼 책이라도 읽자. 집에 있는 읽기 쉬운 책을 골라 십 분이라도 앉아서 읽으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아니면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때리기’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해 줘도 좋다. 항상 아이들의 말소리로 힘들어하는 내 귀에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쉼을 주는 것이다.

시간이 더 생긴다면 운동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의 경우 요가를 한다. 그냥 동네 걷기도 좋고 유튜브에서 줌바댄스를 검색해서 신나는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여봐도 좋다. 운동이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돌봐주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자신감도 생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시간을 갖은 ‘나’에게 고마워진다.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아이 걱정이나 집안일 걱정이 사라진다. 땀까지 조금 흘려주면 기분 전환에 그만한 것이 없다! 몸을 움직이는 만큼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     


마음 다독이기. 답답한 지금의 상황을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필터를 가지고 바라보자.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다. 슬프게도 출산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살기 위해 죽어라 하고 노력 중이다. 죽어라 하고 노력하는데 너무 힘드니, 엄마한테 울음으로 하소연한다. ‘그래 내가 좀 봐주자.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참아볼게.’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보자. 내 뱃속에서 열 달을 거쳐 생겨난 소중하고 신비한 존재이다. 멀리 보도록 노력해 보자. 앞으로 십 년 후에 유아기의 아이가 얼마나 그립고 사랑스러울 것인지!

고백하자면 오늘도 아침에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엄마가 밥 앉아서 먹으라고 했지! 한 번 더 엉덩이 떼면 밥 치울 거야!” 하며 협박까지 더해준다. 매일 같이 실수하고 또 노력하고 후회하는 날의 반복이지만,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힘든 것은 똑같지만 나의 마음이 다르다. 나를 궁지로 몰고 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받아줄 힘이 생긴다. 쉽지는 않지만, 우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혀볼 수 있다. 그리고 울음으로 표현된 아이의 감정이 사실은 어떤 감정인지 들여다 볼 기회가 생긴다.

아이들에게 항상 천사같이 차근차근 말하는 엄마의 되지 못했다. 죽기 전까지 그 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엄마의 역할을 잘 해내는 동시에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행복한 엄마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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