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기를 만나는 일의 시작이었다. 맞게 찾아가고도 반겨주기 전까지는 어깨에 든 힘이 풀어지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 전까지 시간이 은근히 더뎠다.
아기를 품에 안은 사람이 나를 맞아줬다. 내게 전화를 걸었던 유민이 엄마였다. '누나, 안녕하세요'하고 카일의 마음을 대변하듯 인사를 건넨 그의 목소리는 불편하지 않은 높은음으로 활기차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유민이는 있는 힘껏 미간을 구기고 있어 '인상파'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눈썹은 내려가고 이마는 한껏 올라간 표정. 약간 경계하는 것 같으면서도 호기심 어린 기색. 그것만큼은 이제 겨우 13개월을 산 인생의 느낌이 아니었다.
'나랑 비슷한 과인 것 같은데?' 나의 첫인상에 대해 유민이 엄마가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우리는 나란히 서 있으면 자매라고 오해받겠다 싶게 생김새나 높은 음의 목소리, 눈웃음까지 닮아있었다.
이십 대 중반, 유민이 엄마는 짐작했던 것보다 젊었다. 뱃속에는 유민이 동생이자 훗날 '지유‘라고 불릴 아기도 자라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할 차례. 13개월 아기에 대한 긴장감으로 어느 때보다 기억력이 좋은 상태였다. 유민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유민이의 엄마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기억했다. 마침내 유민이 엄마가 내게 유민이를 맡기고 집안일을 하러 갔다.
무턱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어 두 팔을 펼친 채 유민이를 따라다녔다. 유민이는 이제 막 소파며 책장 등을 짚고 일어서 더듬더듬 걷다가 철퍼덕 주저앉는 그런 시기였다. 어느 순간 몇 걸음 걷다 멈춰 설 때마다 유민이가 나를 보고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엄마와 닮은 눈웃음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닮았다고 해도 되는 걸까? 미래에 아들을 낳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졌다. 아마 이때 13개월 아기에 대한 마음의 긴장일지 빗장일지 모를 것이 풀어져버린 듯하다.
얼마 안 가 유민이가 나와 손을 맞잡았다. 손끝에 온몸과 마음을 있는 힘껏 기댄 것 같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소파 위를 걷거나 푹신함에 몸을 맡기며 뛰기도 했다. 리듬은 점점 격렬해져 아찔함을 느끼며 유민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유민이 엄마는 이리저리 오가다 멈춰서 우리를 흐뭇한 듯 그런 순간에 함께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느긋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약속했던 세 시간이 남김없이 흘러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유민이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엄마 품에 안겨 인사했다. 실상 멀뚱멀뚱 쳐다보기에 가까웠지만 그런 모습도 귀엽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나를 잊어버리겠지‘ 라고 속으로 되뇌며 제법 가볍고 훈훈한 마음으로 나선 바깥으로 나섰다. 아직 추운 겨울 날씨, 잔뜩 웅크린 채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나는 계속 코를 벌름거렸다. 길을 걷다 문득 상점에서 빵 굽는 냄새를 맡듯 우두커니 서서 옷이며 가방 등을 킁킁거렸다. 유민이 냄새였다. 그와 맞잡았던 나의 손에 진득하게 묻은 듯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서 끔찍하게 싫었던 겨울이 한층 달큼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유민이 엄마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 유민이가 울었어요. 누나가 좋은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