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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든 Aug 28. 2023

슬픔과 그리움을 배우느라 맨발로 달려나갔다


  유민이가 현관문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방금 엄마와 아빠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봐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3개월 아기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 문이 닫히기 전, 거듭 단음절을 외쳤다. '아'와 '어' 사이의 발음일 뿐이기에 어떤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슨 뜻인지 느낄 수 있었다. 떠나는 이를 붙잡고 싶은 마음,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민이를 거실로 데리고 왔다. 나는 언젠가 답이 올 거라 믿고서 언제나 친절한 혼잣말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태워주겠다며 갈비뼈 부근을 부여잡았다.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빠르게 주저앉았다.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고 싶어 에어컨 앞에 서서 그랬다. 기다랗고 매끄러운 표면에 유민이와 그를 안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키득키득'에 가까운 웃음이 들렸다. 안도의 한숨 내쉬어서 어깨가 내려앉았다. 당장 끓어 넘치는 감정을 잊어버리게 하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숨바꼭질을 했다. 유민이는 인내심이 부족한 술래여서 어디든 나를 따라다녔다. 작은 발바닥이 마룻바닥과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찰지게 이어졌다. 다행히 걸음 폭이 작아 내가 조금만 속도를 내도 사이가 벌어졌다. 그 틈에 어디든 빠르게 숨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길 계속했다. 흔히 '숨 넘어갈 듯 웃는다'는 건 웃음이 몸의 안팎을 드나들어 몸과 마음을 온통 흔들리는 걸 뜻하는 거겠다고 그때 유민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정리했다. 그런 웃음은 존재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나뒹굴게 만들었다.


  다시 유민이는 현관문을 붙잡고 울었다. 그날 몇 번이나 더 그랬다. 그 반복을 지켜보고 함께하면서 깨달았다. 아까 그 울음이 잠깐의 것일 수 없음을, 슬픔과 그리움이었음을 말이다. 다만 유민이는 슬픔과 그리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해서 그저 솔직하게 달려 나갔다. 용감하게 울부짖었다. 나와 일상을 요란하게 보내면서 잠시 잊었다가도 이내 엄마와 아빠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자리에 서고 또 섰다. 차가운 현관이었고 맨발이었다.


  어쩐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유민이는 아주 슬프거나 누군가 그리울 때마다 이날의 발이 시린 감각을 되살릴 수도 있겠다, 매번 그 감각이 익숙해지지 않아 발을 어루만질 수도 있겠다,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당시 나는 아주 슬프거나 누군가 그리울 때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다. 밥을 먹지 않고 싶고 잠을 자지 않고 싶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고 재밌어한다고 믿었다.


   이제와 더 진솔하게 고백해 보자면 그러다 죽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었던 거라고, 당장 감당하지 못하는 슬픔과 그리움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존재를 끊어내고 싶었던 거였다. 그 시기의 나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았다. 한번 뜯은 봉지 과자는 끝장을 내야 내려놓는 성질도 못 죽이면서.


  더는 유민이가 갑자기 달려 나가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돌아왔으니까. 한참 없었지만 지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그들과 그저 숨바꼭질 정도를 한 것만 같았다. 아까 슬픔과 그리움을 배우느라 힘껏 자신을 밀어붙여서 해냈던 있는 그대로의 표현을 다른 감정을 위해 썼다. 엄마와 아빠가 건네는 장난감을 받아 들고 '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환호하고 무언가를 먹으며 두 팔을 뻗어 만세를 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얻는 배움이 있다. 그 순간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 울고 웃고 말하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가 그렇다는 것이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 더 정제하여 표현해 내는..... 배움의 연속이다. 오늘도 내게 들끓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반갑다. 몸이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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