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때 손에서 나던 냄새를 섬세하게 되살릴 수 있다. 13개월 아기 유민이 엄마가 즐겨 쓰던 섬유유연제의 향기와 그런 옷을 입고 이리저리 천천히 오가며 걸음마를 하던 유민이의 땀이 더해진 냄새. 덕분에 겨울이 매섭지 않다. 생각을 얼어붙게 하고 턱을 덜덜 떨게 하더라도 즐길만하다.
그러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를 만나는 게 유민이에게 더 나은 일이라고 믿었다. 딱 하루, 단 몇 시간 함께했을 뿐이지만 그를 위한 진심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벌써 소중해지는 만큼 두려워해야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다소 부담스러웠다. 전달이 되었는지 유민이 엄마는 베이비시터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거두었다. 바라던 바인데 시원섭섭하기도 해 굳이 갓 구운 빵을 찾아 먹으며 이 특별한 추억을 매듭지었다.
처음이 화두가 되는 때가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이나 첫사랑과의 추억 등이 그렇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의 동생을 보고 '아이가 참 귀엽다'라고 처음으로 느꼈다. 그 아이는 친구와 열 살 차이가 나서 세 살이었는데, 아동 모델을 할 정도로 끼가 다분해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 번은 나와 친구, 그 아이 셋이서 명동에 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거리의 모든 사람이 쳐다볼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그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몇몇은 그 아이에게 너무 예쁘다며 말을 걸기도 했으니 아주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아마 그때 나는 그런 아이의 보호자가 나인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 아이와 모든 순간을 나누면서 그에게 쏟아지는 애정도 나누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참 초등학생이던 나는 친구가 넘치게 부러울 정도로 그 아이에 대한 애착이 커져서 자주 놀러 갔다. 늘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해서 불만이 가득했던 친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키워본 적도 없지만 아이를 만나는 일상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좋은 첫인상을 남겨주었다. 이는 초등학생 남매와의 만남으로, 유민이와의 인연으로, 앞으로 쓰일 또 다른 아이들과의 필연으로 나아갔다. 잠깐일 줄 알았던 날들은 아직도 부지런히 쌓여서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이제 서른이 넘었고 유민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그때 아무래도 매듭을 리본으로 지었나 보다. 선 하나만 잡아당겨도 쉽게 풀어졌으니 말이다. 유민이 엄마에게서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유민이는 누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그 말이 기뻐서 또 한 번 유민이를 만나러 갔다. 주말마다 세네 시간을 함께하는 '베이비시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