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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내가 누구인가 보다도 중요한 것은

by 조이 Feb 27. 2025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싶었다. 모두가 쉬어갈 수 있는. 그러나 내 곁을 스치는 모두에게 내어줄 만한 넓은 품은 내게 없었다. 아니 한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마치 앙상하고 벌거벗은 겨울나무 같았다.


나의 지인은 내게 상록수 같다고 했다. 사시사철 잎이 푸른 나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일정한 거리에서 일정한 만큼만 친절한 것이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니, 나는 쑥스러운 듯 씁쓸했다. 그것도 한결같다면 한결같은 거겠지.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10:36)


그러다가 문득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 기록된 사마리아인이 떠올랐다. 강도 만난 자를 여러 사람이 발견한 것으로 보아 그는 길거리에 쓰러져있었다. 외진 곳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들이 자주 지나는 길이었던 것이다.


발견하고서도 외면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사마리아인은 그를 돌보아 주었다. 그의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갔다. 여행자 신분이라 일정이 있어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정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서 그를 살피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개와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사마리아인이 자기 상처에 손을 댔다니, 강도 만난 자가 정신을 차린 후에 고마워나 했을까 싶다. 그 뒷이야기까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최악의 경우 적반하장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선의로 베푼 것을 악의로 갚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록 내가 개돼지 취급을 받을지라도, 미담으로 전해져서 칭찬받기는커녕 당사자에게 고맙단 인사조차 듣지 못할지라도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죽어가던 사람을 살려냈으며, 그것이 심지어 성경에까지 기록되었는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가서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실 정도로 그가 한 일은 하나님께 기억되고 사람들에게 기려졌다.


그는 당시 혐오의 대상이던 '사마리아인'이 아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다. 사랑으로 실천한 행위가 그의 정체성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싶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였는가, 아니면 그런 푸릇함을 자랑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는가.


내가 다니는 길목에 있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에게도 품을 내어주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길 바랐다. 사랑의 실상은 수고가 따르는 법인데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지나쳐버린 곳에서 스케치하는 사랑이라니. 나는 그저 그 풍경이 좋아 보였던 것이다. 정말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라기보단, 사랑이 많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 5:41)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것이 힘들었다. 우연히 만나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같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이상 함께 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맞는 방향이라고 해도 억지로 끌려가기보다 차라리 혼자 방황하길 선택했다. 어리석은 고집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더 편안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했다. 칠 년이라는 간 동안 소년원이라는 곳에 출입했던 것은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워낙 내 마음의 댐이 단단하여 콸콸 넘치는 사랑은 아니었고 힘겹게 길어 나르는 사랑이었다. 땀과 눈물이 뒤섞일 만큼 힘들었지만 열심히 나르다 보면 나도 그 사랑에 흠뻑 젖곤 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타인을 사랑한 경험이었다. 가족도 아닌데,라는 말을 덧붙이기에도 민망할 만큼 가족마저도 천륜이라 의무적으로 사랑한 시간이 었다. 그런데 의무가 아닌데도 의무인 것처럼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들에겐 나의 사랑이라도 필요해 보였다. 사랑이 정말 필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퇴원한 아이들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곳에 있던 아이가 퇴원 이후 교도소로 송치되었을 때도 면회를 가는 발걸음이 어려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똑같은 아이들이었는데도 나는 예전처럼 그들을 대하지 못했다. 내가 가서 만날 순 있었지만 그들이 나의 생활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은 허용할 수 없었다. 그랬다. 나는 두려웠다. 나의 사랑은 딱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내 사랑은 힘겹다. 저기에서 여기까지, 여기에서 거기까지 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상대방이 첨벙 대더라도 흙탕물이 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만 인사를 건넨다. 그 정도 거리에서만이 나는 여유 있게 미소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을 함께 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도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던 이유 중 한 가지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에게 존경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존경받았다는 것은,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그가 제자들을 인내하고 품어주며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마음으로 한 영혼을 사랑했다.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새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한 그루의 아름다운 아름드리나무가 되기를 포기한다. 다만 내가 지나는 길목에 쓰러져있는 사랑이 필요한 자, 그러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다가서는 이웃이 되길 소망한다.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다가설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간구한다. 그가 누구든 내가 누구든, 우리의 만남을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길 기도한다.


https://brunch.co.kr/@rapalala/72

* ondo 작가님의 브런치 북 글을 읽고 이 글을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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