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작지만 치명적인, 그 기억

<기억 안아주기>를 읽고

by 책한엄마

https://youtu.be/KTM7diRfo2Y

셋째는 내게 계속 예상 이외의 상황을 만들었다. 셋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고 첫째, 둘째를 키울 때 갖고 있던 단단한 육아 지침이나 생각이 다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 임신했을 때 이사를 하고 남편 유학이 정해지며 아이 임신과 함께 책을 계약해 쓴 글을 고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약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임산부는 결국 2시간 걸려 링거 영양제를 맞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 첫 번째 생일이 되기 전 나도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외국 살기가 시작됐다. 한국어를 떠듬떠듬 시도하기 시작했던 아이는 주변 다른 언어가 들어오면서 입을 다물었다. 결국 만 2세 때는 영국 언어 스페셜리스트를 몇 번이나 만났는지 하루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역병이 세계를 뒤덮었다. 내 막내딸을 임신하고부터 한 번도 내가 예상한 대로 인생이 돌아간 적이 없었다. 항상 상상 이상의 세상을 겪고 있고 이게 내 딸이 태어나면서 겪고 있는 인생이다.



첫째, 둘째는 일 년 이내에 자기 혼자 잠을 잤다. 대변과 소변 또한 일찍 가렸다. 그 당시 나는 유아교육 전공을 배우고 있었고 정교사 2급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셋째는 예외였다. 두 돌 지나까지 영국에 지냈던 딸은 개인적 침대가 없어 킹사이즈 침대에서 계속 같이 잘 수밖에 없었고 카펫으로 만든 남의 집에서 배변훈련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만 3세를 넘어버렸다. 아이는 배변훈련이 끝나지 않았고 독립 수면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덩치가 커질수록 고집이 더 세져 교육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이 자체가 내게 자책과 괴로움이다. 차라리 얘가 처음 키웠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두 아이를 나름 성공적으로 일찍 교육시킨 내가 셋째는 모두 늦는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 지금 이 괴로운 기억은 계속되고 있다. 소변은 어느 정도 훈련이 끝났으나 아직 큰일을 보는 데 힘들어한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은 그것이다. 기억이 얼마나 몸에 큰 문제를 키울 수 있는지 예시로 드는 많은 부분이 이 큰일을 보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배출해야 하는 물질이 몸에 남아있다면 독소를 계속 몸속에 품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배출을 자신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거나 트라우마로 조절을 스스로가 거부한다면 또한 어마어마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의외로 약물이나 입원과 수술에 의한 어려운 해결이 아닌 기억 속에 있는 두려움이나 트라우마를 없애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놀라운 호전을 보일 수 있는 예가 엄청 많았다는 점. 그것만 봐도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뇌과학이란 영역이 점점 중요성이 커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병이 없던 아이를 환자로 만든 사람이 가족이나 의사라는 것이다.(p.5)

20~30퍼센트의 예민한 아이들은 기저귀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변을 참으며 엄마에게 기저귀를 도로 달라고 조른다. 기저귀를 주면 안심하면서 아주 편안하게 다시 변을 본다. 이런 아이에게 기저귀를 떼는 과정은 일종의 지옥 훈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p.21)


반대로 기억이나 행동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흔히 과속이나 어떤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 기질이 악하거나 나쁜 성품을 유전적으로 받아서라고 생각했다. 이 뿐 아니라 간단한 조작이나 시각으로 착각을 하게 하거나 세뇌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쉽게 기억을 조작시킨다. 상대방이 은근하게 몰아가는 말의 변화나 과거라는 희미한 기억을 이용해 반복해 과거를 다른 이미지로 이야기하면 그대로 우린 그걸 사실로 믿어버리고 기억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라는 건 잘못 조작하면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연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약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효과 없는 약을 주며 그 사람 신뢰를 이용해 몸을 변화시킨다는 플라세보 효과, 더 나아가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죽을 줄 알았던 소녀가 살아났다는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이 설득력을 갖는 건 실제로 우리 믿음이 죽음을 넘길 수 있다는 걸 내면 어딘가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과속 사고 낸 사람은 늘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사람이라고.(p.45)
이상과 현실과 중용이 어우러지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몽상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래도 우리에게 꿈을 꾸는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 미티에게 사진작가 숀 오코넬은 눈표범을 관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p.209)
대니얼 길버트는 상상의 오류 중 하나로 상상의 과정에서 우리가 없는 정보를 채워 넣거나 혹은 있는 정보를 빠뜨리는 점을 지적했다. (p.231)
하지만 저는 그 안에 이미 얼마나 많은 허구가 존재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뭔가 이야기하고, 그것도 사소한 부분까지 자신 있게 말하고 또 감정까지 표현했다고 해서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옳은 기억과 거짓 기억을 안정적으로 구분해낼 수 없습니다.(p.245)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위험하고도 연약한 기억을 지배해야 할 것인가? 기억의 주인은 본인이지만 의외로 우린 어떻게 이 기억을 잘 보호하고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종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게 바로 이 책 <기억 안아주기>에 답이 있는 듯싶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강조하고 건강을 위해 균형 있는 식단에 신경 쓰지만 정작 우리 기억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다른 환경에 의해 조작되고 변경되어 몸과 정신을 좀먹는다는 생각을 이제껏 하지 못했다. 내 뇌를, 내 정신을 몸이 운동으로 다져지고, 내 장기가 균형 있는 식단을 통해 잘 유지되듯 정신을 위해 나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젊어서 전전두엽을 충분히 이용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치매 환자는 순하고 ‘예쁜 치매’로 가게 되고, 나쁜 기억에만 집착하고 늘 불안해하던 치매 환자는 화를 잘 내는 ‘미운 치매’로 간다.(p.260-261)


문제가 있는 타인에게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게 필요한데 본인은? 본인은 의외로 어떤 상태인지 평가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 상황이 나를 흔들어놓지 않는다면 정작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의료로 사람을 진찰하고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학자인 저자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명상’과 ‘자기 성찰’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한 것이다. 그렇다. 과학과 정신 수양은 이제 만나고 있다. 뇌과학은 다시 말하면 자신을 수양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이용해 종교를 통해 운과 삶을 점쳤다면 뇌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인하여 자신이 가진 생각을 통해 자신 몸이 달라지고 주변이 달라지는지 가시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이 바뀌면 내 몸이 바뀌고 주변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굳이 보이지 않는 신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신이 존재함을 믿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종교로는 기도, 비종교적으로는 명상을 통해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는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에 좋은 도구가 된 책이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편에 서 있다. 우리는 믿지 못해서 두려워한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사실 두려움이다. 이렇듯 두려움의 대척점에 믿음이 존재하는데 두려움은 믿음을 만날 수 있을까? 뇌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심리 상태를 뇌 영역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다.(p.284)
뭉클찜으로 같이 읽은 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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