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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2. 2023

연인의 단상

사랑한다는 말은 때때로 개소리가 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얼마든지 충분히. 사랑이 다른 형태의 무언가로 확실히 변모할 수 있는 사회가 점점 더 되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다. 왜일까. 질문 끝에 나는 '나이 탓'을 하고 만다. 무력하게도. 마냥 낭만적으로 '사랑'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에는 잖이 나이를 먹어가며 직간접적인 '경험'이라는 걸 쌓아 나가게 된 탓일까.  물론 '제대로' '잘' 나이 들어야 한다는 엄격한 전제 하에 나이 듦이나 일종의 '경륜'을 선호하는 편인 나로서는 뭐랄까. 추악하게 나이'만' 먹은 어른들의 얼빠진 사랑은 어린이의 그것보다 더욱 미숙하고 유치하며 참 후지게도 변할 수 있음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른들의 어떤 모자란 사랑은 부작용과 파장력 강한 커다란 슬픔과 몰락을 자아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조금 더 맵게 이야기해 볼까. 사랑을 빌미로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권모술수를 행하며 그야말로 누군가를 산뜻하게 등 처먹는 데 익숙하던지. 그러니 어쩔 도리 없이 우리는 정신을 확실히 단련시킬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좀 우스꽝스럽게 들릴 테지만 '사랑'이 '개소리'로 변모하게 놓아 두지 말 것을. 최소한 개새끼와 쌍년에게 '당해선' 곤란하다는 것에 대해서 염두에 둘 것을. 그렇다. 맞다. 정녕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개소리로 변함에 있어서 대부분은 개새끼 무리와 썅년들 때문일 것이라고. 그들은 서서히 조용히 다가오겠다. 자신들이 지닌 인적 물적 내적 자원을 적시에 철저히 활용하면서. 그야말로 상대를 홀리는 데 도가 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아주 먹음직스러운 '덫'이 바로 '사랑'으로 포장될 수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 



너무 무서운 상상일까. 그러나 어쩌나. 한 때의 연인은 결국 '적'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신뢰는 불신이 되고 과거의 사랑했던 말은 어느새 공허한 개소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변모되어 버린 채 추락한 사랑의 장면과 형편없이 막을 내린 연인 간의 엔딩은 서초역과 양재역에 즐비한 법률사무소와 로펌의 일상 속에서 흔히 발견되곤 하지 않던가. 오늘도 '사랑'으로 둔갑한 채 다양하게 상대를 향해 행해지는 사기, 이혼, 형사, 민사고소, 기타 등등의 소송과 사건 사고들로 인해 의뢰인들이 날로 찾아오고 있다는 것. 통탄스럽지만 어쩔 도리 없는, 연인이라는 단어 안에 숨겨진 은밀한 그림자, 그리하여 마냥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이 시대 이 사회 속 사랑에 대한 속상한 현실. 



Edvard_Munch ,  Love and Pain (Vampire), 1895  (뭉크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그야말로 사랑과 고통. 뱀파이어...) 




사랑한다는, 보고 싶다는, 이리 오라는. 매혹적이고 달콤한 그 문장들은 이 시대 속에서 결코 선하게만 작동되진 않겠다. 우리가 숨 쉬는 지금 이곳은 '웰컴투 자본주의' 아니던가. '계산' 하는 데 능숙하고 익숙한 누군가들의 사랑은 이미 이 사회 속에서 꽤 만연해 보인다. 어떤 연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상승의 도구로서 충분히 상대의 포지션과 자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런 연인들에게 이미 사랑은 계산의 영역에 존재하겠다. 수치화된 사랑은 경제권력과 섹스주도권을 자연스럽게 탄생시킨다. 물론 기혼시장에 입성해서 계산이 꼬여버릴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해 내는 것도 계산된 사랑을 하는 연인들의 몫일테지만. 그리고 나는 그 지점에서 어떤 사랑은 절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져 버린다. 그건 최소한 '진짜' 사랑의 범위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신용 혹은 레버리지를 이용한답시고 감당 못할 부채만 줄기차게 확대한 채 그야말로 절벽으로 치닫고 있음을 모르고 끝없이 휘황찬란한 소비를 행하기 일쑤인. 혹은 그런 소비를 계속해서 조장하고 부축이게 만드는 참 대단한 광고와 마케팅 술수들. 그 행태에 열렬히 동조하는 대중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과 비슷하달까 (다소 오버스러운 비유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화폐가 양적으로 힘차게 늘어만 가는 아슬아슬한 사회 속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잡히기는커녕 나날이 치솟는 금리에 결국 부채 못 갚는 사람들이 폭증하며 결국 우르르 무너지고 마는. 이른바 도미노식 디폴트. 그야말로 줄파산은 시간문제거늘.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도 시원찮지 않았던가. 최소한 이런 시절을 돌파해 나가는데 개새끼와 쌍년의 계산식 위에서 꼭두각시가 되어 함부로 흔들려선 안 되는 것. 정말 사랑하고 싶은 '나'라는 사람을 천박한 멍청이들이 망가뜨리게 놓아두어선 절대 안 되는 것임을. 



그렇다면 반대로' 진심'이 숨 쉬는 사랑의 신실함을 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지켜내면서 우리는 '진짜 연인'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지킬 수 있단 말일까. 답을 영원히 얻지 못할 무력한 질문일 테지만 굳이 답이랄 것을 찾아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을 향한 자신의 철학적 미적 생활적 기준을 철저히 세우고 정신과 영혼을 끝없이 단련해야 한다고 말이다. 철학.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사람에 대한 철학이 분명 있어야 할 테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럼에도 제대로 확실히 소신껏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지켜내려면. 



속된 말로 뇌와 심장을 풀가동해 소프트웨어를 가열하게 돌려야 한다. 애당초 초기 셋업된 '나'라는 인간의 환경설정과 의식이라는 프로그래밍이 좀 낙후되었다 싶어도 방법은 있다. 다시 태어날 순 없겠지만 다시 태어날 각오로. 그야말로 심신 모두 싹 갈아엎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변화무쌍 기개와 의지로 눈을 제대로 떠서 상대를 면밀하게 살피고 관찰할 것. 그래야 누가 나를 잡아먹을 천하의 개새끼고 누가 내 등골 빠지게 헤쳐먹다 뒤통수 칠 쌍년인지. 그리고 누가 비로소 상대를 애지중지 아끼고 보필하며 온 진심을 다 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진짜 사랑을 기반으로 인생의 마지막 문까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그야말로 '되는 집' 만드는 데 충분히 함께 공헌하는 보석 같은 존재인지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산으로 가려는 글을 겨우 붙잡는다..) 


@Frida Kahlo,  A Few Small Nips, 1935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프리다를 사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절대 그럴 순 없어...) 



대화를 계기로 이어지고 연결되는 두 사람은 일상의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라는 시간적 축적과 연속되는 데이트라고 명명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이윽고 '연인'이 되는 문에 다다르겠다. 두 사람은 서로를 관찰한다. 그리고 상대의 매력을 확인했을 때 '끌림'이라는 지극히 사적 감정에 빠져들겠다. 자신이 알아차리듯 아니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매력요소가 상대적으로 선명한 쪽에 비해 그렇지 않은 쪽은 긴장과 초조라는 감정과 마주하기도 할 테다.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확고하다면. 그리하여 '변화'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모든 변화의 시발점(始發點)은 결국 '사랑' 때문인 것만 같다. 사랑. 두 사람이 자석처럼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의 단초. 당신의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두 세계가 하나로 합치되려는. 두 육신이 하나로 엮이려는 성적 욕망의 발현이기도 한. 에로스의 실현을 위한, '연인'이 되려는 두 사람. 



앞서 연인의 단상을 다소 험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그럼에도 무척 중요한, 그야말로 연인을 연인으로 만들어 주는 절대적 요소는 다름 아닌 '낭만적 감정'이라고 감히 말해보고도 싶다. 다만 주의할 것은 사랑의 세계 안에서는 그 지극하게 사적인, 낭만적이라고 정의하는 범위에서의 나만이 낭만적일 수 있는 감정에 상대는 화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거절당할 위험을 충분히 감수하면서도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야 비로소 사랑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 원래 고귀한 건 쉽게 얻을 수 없고 발견되기도 쉽지 않은 법 아니던가. 또한 너무 미숙한 대처로 인해 서로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하고 너무 성숙해서도 어떤 사랑은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불가사의한 사랑의 세계. 그런 세계임에도 성숙한 용자들은 기어코 사랑을 발견한다. 지키고 또 얻는다. 그들은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철학적 사랑의 기준이 헤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적인 낭만적 감정을 공적인 예의를 통해 확실하게 전한다. 성숙한 두 사람은 비로소 성숙한 연인 관계로 발전된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에게 '진짜 연인'으로 자리 잡힌다. 



진정한 성숙함과 온전한 신의로 무장한 연인의 사랑은 얼마나 절절한 진정성이 전해지던가. 그들은 서로를 향한 용자가 될 준비를 한다. 상대의 두려움을 나의 힘으로 희석시켜 내려는. 나의 불안은 상대로 인해 희미해지고 또 조금씩 줄어든다. 진짜 연인으로서의 두 사람은 촘촘하고 밀도 높게 서로의 세계로 깊숙하게 들어가려 한다. 정말 '사랑' 한다면. 그저 얕게 헤엄치다 빠져 버리는 후지고 볼품없이 계산된 사랑이 아닌. 비할 수 없을 성숙한 사랑을 나누려는 연인들은 어쩌면 심연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의 고통과 좌절 불안과 우울로 가득한 그 어두운 심연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려는 용기. 그렇게 상대의 세계로 깊숙하게 빠질 각오를 지닌 채로.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아픔을 홀로 견디고 있을 연인의 고되고 애달픈 세계를 발견한 연인은 상대의 아픔을 말끔히 치유해 내려 애쓸 것이다. 상대의 지복과 행복만을 바란 채로. 아무 대가도 바라는 것도 없는 완전무결하고 의연한. 애절하고 애틋한. 그리하여 '진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진짜 연인들의 시간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tvN '남자친구' 中. 서로의 안온을 내내 걱정하며 아낌없이 자신을 던지려 했던. 두 사람은 진짜 연인이었겠다...



사랑의 세계에서만큼은 계산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랬었다... 그랬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는 연인에 대한 단상(斷想)은 사실 이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무엇이든 계산에 익숙한 사회 속에서 내가 선택한 사랑만큼은. 내 마음이 향하는 사람을 향한 행동만큼은. 절대 계산하지 않을 것을. 그야말로 ROI 가 바닥이어도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 그럴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 진짜 연인으로서의 시간... 그리하여 마냥 주어도 절대 아깝지 않을 것. 더 주지 못해서 그것이 못내 미안할 것. 상대가 지닌 자원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을 것. 다만 둘 사이의 온전한 교감과 교신을 이뤄낼 것...



참 어렵고 지켜내기도 힘든 행동강령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지키기 쉽지 않지만. 그러나 이것이 연인에 대한 예의이고 또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대하는, 연인에 대한 변함없는 단상(斷想)이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신분상승 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그러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당신의 명성과 권위. 품위와 선함은 그저 당신의 것.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나는 당신의 무엇도 소유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안다. 물론 이 말은 반대로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겠다. 당신도 마찬가지로. 나의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사랑은 애당초 소유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나라는 사람이 지닌 그 어떤 것도 상대는 가질 수 없다. 다만 나눌 뿐이겠지. 자신이 지닌 부분적 자원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만을. 아낌없이 나누려는 마음. 단지 그것뿐. 그럼에도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게도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랑. 그것이 사랑의 양가성이라면. 나로 인해 그이가 더 돋보이길 나는 바랐었다. 능력이 된다면 기꺼이 그의 자랑스러운 트로피로서의 내가 되길. 당신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기를. 연인으로서 최고의 존재로 영원히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그이는 한 시절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타자이자 사랑의 결실로 선택하고 싶었던, 나를 변화시켰던 단 하나의 존재. 나의 진짜 연인이었다...





"당신은 이별을 해요 난 사랑을 할 테니."


본심과 다르게 상대를 위하기에 도리어 밀쳐내려는 안타까운 이에게 연인이 말했던 이 문장에는 얼마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던가. 상대는 멀어져도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그 마음은 얼마나 진정이던가.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 날 TV에서 두 주인공주고받았던 이 문장이 들렸을 때. 이미 지나간 시절의 당신을, 우리를 나는 떠올리고 말았다.  이미 그 시절은 지나갔음에도. 그이의 연인이었던 존재로서의 '나'는 점점 흐려지고 멀어져 가고 있음에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분명 잊혔을 것이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이 문장을 내내 좋아했었다고 말했던, 당신의 연인으로서의 내 목소리는. 지금 어떤 크기로 그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 예전엔 알려 애쓰다가 혼자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이젠 굳이 알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 마음을 혼자 기억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시비(是非)를 완전히 무효하게 만들었던 '내 사람'으로서 선택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내 선택이, 내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나는 어떤 마음을 계속해서 지켜내고 있다는 것. 노력하고 있다는 것.



한 손으론 박수를 칠 수 없듯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건 없다. 자신에게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상대를. 나를 걱정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상대를. 한쪽의 노력으로 애써 겨우 지탱해 나가는 무게중심이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어찌 그런 상대를 열렬히 욕망할 수 있을까.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는 건강한 관계라고도 볼 수 없을 테다. 불멸할 수 없는 인간이 더더욱 어찌 영원을 바랄 수 있는지. 그리하여 모든 사물과 현상에 특정한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면 더더욱 사랑의 세계와 연인 간에도 그 시기는 엄중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연인으로서 유효한 그 순간 서로에 대한 최선과 예의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 



현재 두 눈에 선명히 연인으로서 서로가 존재할 때. 아낌없이 온 마음을 건넬 수 있기를. 눈길이 끝내 향하고 말았을 자신의 그 마음을 부디 오래 기억하기를. 그래야 유효기간에 다다라도 서로 그 시절을 추억하며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당신에게 연인으로서 오래 기억되는 찬란한 존재였음을. 훗날 연인으로서는 돌아갈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지라도. 그리움을 놓치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은 시간과 만나 힘이 되어 주기도 할 테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한 때 누군가의 진짜 연인이었던 이들만이 누릴 수 있을. 마법 같은 힘...




두 눈에 담긴다는. 두 눈이 직시하는 대상이 된다는. 그것은 기적.... 영원을 바라게 되는. 영원할 수 없는. 그런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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