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고백이 존재한다. 그중 연인의 애심이 담긴 고백은 무엇보다 우리로 하여금 애잔하고 뭉클한 감정을 북돋기 마련이겠다. 고백을 결심한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상대에게 숨김없이 드러내는 가감 없는 말. 고백. 그러나 뜻대로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인생에서 어디 그리 확답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게 있었던가. 설마. 어떤 고백은 참 서툴다. 본심 혹은 초심과는 다르게 전달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로 하여금 자칫 오해와 불신을 사 버릴 만큼 와전이 되는 경우를 발생시키기도 하여 끝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일까. '저의'를 품은 고백 또한 존재할테다. 가령 좀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상대를 이만큼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야말로 위하고 있다는 비대한 감정으로 인한.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려는 과시가 기저에 깔려 상대에게 억지 매력을 전하기 위해 꾸며지고 포장되어지는 고백. 그렇다. 고백이란 언제나 솔직함만을 담고 있진 않겠다. 언제나 솔직만 하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만도 없는 게 인생의 은밀한 규칙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백의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 발신자의 말과 문장이 본의 그대로 '확실히' 전해 진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법. 바로 그 지점. 고백이 고백이 되지 못한 채 꼬여서 어그러지고 마는, 그야말로 고백의 모순이 탄생되는 순간이랄까. 발신자의 말이 길어지고 앞뒤로 본심에 대한 사족이 질펀하게 붙은 화법이나 문장은, 그 마음을 전달받는 수신자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과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 가령 '네가 이래서 내가 이렇다'라는 식의 화법. '너'가 먼저 문장 서두에 나와 버리는 문장들이 어쩌면 그럴 수 있겠다. 예컨대 상대가 날 낮은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이 기저에 깔린 채. 그럼에도 그런 너에 비해 나는 널 더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은근한 비교식 문장이나 혹은 상대의 행위나 태도는 별로였다는 걸 확실하게 어필한 이후 그럼에도 자신은 너에 비해 더 우월한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은근한 과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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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고 고백을 주고받을 리 만무할 테지만 그럼에도 고백이 마냥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야말로 TPO (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천차만별의 형태를 띠는 고백에 대해서. '너'의 고백이 '나'에게는 그렇게 되지 못할 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나'가 아니라 '너'의 탓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문장들이 분명 있었노라고. 그리하여 발신자의 본심과는 다르게 수신자인 상대는 미묘하게 좋지 않은 감정을 자극시키게 되고 마는 말. 그야말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을 초래하는 문장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고백이었을까. 정말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던가. 내가 무심코 던지는 고백이라 믿었던 문장은, 실상 자신의 내적 욕망의 독이 묻어있을 수 있을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 고백의 포장을 입었으나 한쪽만 좋은 일방통행적 문장. 마냥 아름다운 말로 들리지만 실제 그 아름다운 말속에는 정녕 원하고자 했던 다른 속내와 저의는 없었는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의 지복과 기쁨을 위함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은 작품의 화자 폴 케이시의 시선을 중심으로 각 주인공의 인칭 변화에 맞춰 사랑에서부터 파국에 이르기까지. 상대와의 '연애의 기억'에 대한 과정을 다양한 시선에서 조명한다. '나'에서 '너'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소설 속 화자의 독백이자 고백으로 읽힐 수 있을 폴의 기억에'만' 의지한 이 서사가 조금 불편하고 안타까웠던 건 철저히 한쪽의 기억에 의지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폴의 상대. 수전에 대해서. 나는 궁금하다. 그리하여 화자에게 묻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의 독백은, 그의 고백은. 모두 진실이고 신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폴 보다 어쩌면 더 커다란 희생을 아프게 감내해야 했을 수전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편집된 고백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억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공감력과 배려가 결여된 채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상상력이 조금 부족한 이들은 흔히 '실수'를 저지를 수 있겠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연인'이 되고자 하는 이에게, 혹은 연인에게 어떤 상황에 대한 설명 혹은 '그럼에도 사랑하고 있다'는 애심에 대한 고백이 실수적 문장에서 출발하려 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고백의 모순은 탄생할지도 모르는 것이겠다. 발신자의 우월감과 과시, 어떤 생색내기를 기저에 깐 형태의, 수신자인 상대를 향해 자신의 명분 혹은 해명을 위한 장치로서의 고백도 얼마든지 탄생될 수 있는 법. 또한 그런 고백은 결국 은근한 조롱으로도 와전될 수 있을 여지를 만드는, 고백이 품고 있는 어떤 모순들.
나를 헤쳐도 좋은 고백은 없듯, 남을 헤쳐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고백이겠다. 사실은 고백만 그러할까. 사실 연인 혹은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히 '말'이 그만큼 중요한 법. 최소한 우리가 선심과 진심으로 상대에게 다가가 자신의 '진정심'을 전하려 한다면 말이다. 상대를 살피려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타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 어떤 '권력'이 담긴 말은 누군가의 의도적 무기가 될 뿐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담긴 마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여기서 잠시. 버트런드 러셀의 '권력'을 잠시 떠올려보자면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던 '권력'으로 타자를 통제하려는 힘은 국가와 사회, 심지어 소규모 단체 및 가정 내에서도 은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할 테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고백이란 그런 권력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측은지심과 친절함을 기저로 상대를 진정 살피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고백은 결국 상대에게 무해하게 다가가 마음을 전하는 첫 번째 단계일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내게 전달된 그이의 고백들은 굉장히 무해한 목소리와 문장이었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사회적 위치라는 것이 있다면 그 시절의 그이는 분명 충분히 나를 향한 일종의 경미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음에도. 그의 문장과 태도는 바르고 단정했다. 물론 첫인상부터 묘하게 겸손하고 외적 모양새도 심지어 너무 소탈하여서 때로는 가빈(家貧) 하다고 느낄 정도의 사람이었으니까. 요새 말로 따지자면 너드남에 가까웠던 그이 덕분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외적 외모가 화려하지 않아도, 멋진 몸을 가지지 않아도. 목소리와 말투. 사소한 행동을 관찰했을 때 그것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충분히 섹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늘 깍듯한 문장체와 존대를 했던 그는 섹시하고 단정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최소한 내가 듣기에는. 계속 듣고 싶었던 만큼.
-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 생각만 합니다. 나로 인해 상대가 억지로 떠밀리듯 하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 연예 정도로만 생각되는. 제가 그런 여자였나 봅니다.
- 그럴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아직도 그 순간 그의 고백을 기억한다.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어찌 그 순간의 문장들이 잊히지 않을까.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 시절의 시간을 박제하듯 간직하고 있어서일 테지만. 그로 인해 마음이 내려앉고 피식하며 웃음이 터지기도 하며 한동안 보이지 않거나 해외 출장이라도 멀리 길게 나가 있다 하자면 묘한 허전함과 궁금함이 생기고 마는 사람. 상대로 인해 때로 온통 검은 슬픔과 속상함으로 가득 차 올라도 반대로 그 사람으로 인해 자꾸만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나도 모르게 절로 생겨 버리는 마법. 그 시절. 나로서는 그것이, 그 상대가 사랑이 아니고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내가 찾은 유일한 답은 그이의 '다만' 그 이후의 문장이 내게는 답이나 마찬가지였겠다. 마음을 한 순간에 빼앗겨버리고 말았던. 시간이 잠깐 멈춘 듯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그 목소리...
- 너무 과분해서요. 내게 너무 과한 사람이라. 결혼까지 바라면 제가 정말 도둑놈인데.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헤어지고 싶지가 않네요. 만날 수록 계속 욕심이 생기니 큰일입니다. 혹시 제가 싫어지시면 언제든 떠나셔도 됩니다...언젠가 놓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게 상대를 위한 예의같아서.
언젠가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한다면 아마 이런 남자와 하겠구나 싶었더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와르르 무너졌던 마음. 나를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과분하게 생각해 준 예의 바르고 단정한 사람. 심장이 무너져버릴 정도의, 뜻밖의 섹시한 문장을 천천히 건네주던 사람. 이상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당신의 문장. 그 고백 때문이었을까. 가슴이 벅차오르는 문장. 그저 사랑한다는 감정 표현보다 더 애절하고 진정으로 전해졌었던 그의 목소리... 건네받은 고백에 대한 내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의 화답은 그리고 이것이었다. 그 시절 그이에 비해 나는 참으로 유치했고 한없이 응석쟁이였으며 어리고 모자라고 많이 부족한 여자였고. 보다 경륜자였던 그이는 그럼에도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어른' 같은, 나무 같은, 한없이 기대고 싶었던. 그런 사람에게 건넸던 엉뚱하고 발칙했을 나의 고백...
- 그럼... 이렇게 할까요. 놓아주지 마시고 대신 저를 가지세요. 전부 다. 그 마음에 대한 제 예의입니다.
그건 정말이지 기적 같은 문장이었겠다. 사랑은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어쩌자고 그런 말을 건넬 수 있었던 건지. 오랜 세월을 돌이켜 그이와의 짧은 연애 시절을 떠올리자니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이야 절대 서로 건넬 수 없을(!) 그런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갔던 시절. 아마 그 시기는 그야말로 기적이었겠다. 암. 그렇고말고. 자신의 감정 표현뿐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대함에 있어서 늘 초지일관 스테디함을 유지하는 사람. 심리적 굴곡이 없어 보이는 자타공인 평화주의자인 그이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기적에 가까웠던. 우리들의 고백...
물론 기혼 전의 고백은 한편 힘이 의외로 없어진다는 걸(?) 기혼 이후에 천천히 알게 되었다. 고백이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을 지녀 내내 유효하게 살아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겠다만. 그럴 리 만무한 법. 물리적 시간으로 만남이 반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결혼을 한 우리에게는 그 이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생의 부침과 굴곡을 해마다 지속적으로 겪어야 했다. 그 시절을 구구절절 말해 뭐 할까 싶지만. 두 번의 연속되는 유산 수술과 그 이후 만신창이가 된 나로 인해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찾아든 위기들. 아주 길고 긴 터널을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는 것처럼 혼자 낑낑대며 기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던 그 시절. 그때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와 고백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솔직한 진심은 쏙 뺀 채 활시위를 한껏 잡아당겨 심장을 저격하기 위한 날 선 고백들에 가까웠으리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은 고백을 누구나 한 개 정돈 마음에 품고 있을 테다. 내게도 그런 문장, 그런 고백이 존재한다. 그 시절 그이에게 간절히 듣길 바랐던 고백. 그러나 의외로 차갑고 단호하기도 한 그이의 성정과 성향으로 인해 절대 들을 수 없던 고백.. 그런 문장과 그런 고백이 있다. 가슴이 꽉 차서 서럽기까지 한 말. 그때 내가 당신에게 듣고 싶었지만 끝내 듣지 못했고 내가 듣고 싶어서 스스로 수술대 위에서 마취주사가 들어가기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읊조리던 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청소하다가. 야근 후 혼자 퇴근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다 무심코 내가 내게 건네고 말았던 그런 고백.
- 미안해...
어떤 고백은 속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속죄는 되풀이된다. 그게 모순과도 같은 인생이라면... 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그리운 고백으로 이 문장을 떠올릴테다. 잊고 싶으나 잊을 수 없고, 잊어선 안 되지만 어느새 잊어버리고도 마는, 내게는 고백의 모순을 떠올리게 되고 마는 아름답고도 슬플 수 있는 말. 이제는 자주 아이들에게 육성으로 그리고 그에게는 마음으로 곧잘 건네고야 마는 이 고백을.
-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