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나게 했다
가끔 어떤 작품들은 뺏고 싶은 느낌이 든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작품이거나, 내가 쓰고 싶었던 감정 혹은 이야기와 마주할 때 그렇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 김종옥 작가의 [거리의 마술사]는 후자에 가깝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 맨 앞 페이지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읽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을 연달아 읽으며 나를 사로잡았던 감정은 '뺏고 싶다'였다. 이런 작품을 내가 썼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런 작품을 쓰지 못했을까? 나도 이 안에 있는데, 이 작품 안에 내가 들어 있는데도 왜 나는 쓰지 못했던 걸까? 이런 질문에 그날 밤 잠을 설쳤다.
김종옥 작가의 [거리의 마술사]는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이며 2013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다. 등단작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이 작품이 꽤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마술 같은 작품이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매년 발간하는 젊은작가상 수상집은 내가 매년 꼭 구입하는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수상집이 발간되는 그 해에는 반값에 판매된다는 점이다. 젊은작가상의 취지가 젊은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 있다고 판단한 문학동네는 책을 보급판이라고 하여 원가보다 50% 할인된 가격에 이 책을 보급한다. 이러한 문학동네의 취지가 마음에 든 나는 매년 구입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내가 소개할 많은 작품들이 여기 수상집에서 나올 것이다.
[거리의 마술사]는 왕따에 대한 이야기다. 걷는 모습이 특이하고 말투에서 약간의 자폐가 묻어나는 남우를 둘러싼 아이들의 이야기. 그런데 이 작품은 어느 한 개인의 감정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소재 자체는 분명 개인이 폭발할 감정들이 다분한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담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던 남우는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남우를 괴롭히던 태영의 변호사가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데 그중 남우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희수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된 진행 방식이다.
남우는 좀 이상한 아이였어요. 자폐증 같은 면이 있었죠. 확실히 자기 세계에서 잘 나오려 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완전히 자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냥 심하지 않은 자폐, 아주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 그 중간께에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친구가 없다는 게 그애에게 확실히 괴로웠던 일인지 아닌지 잘 판단할 수가 없어요.
변호사에게 "담배 한 대 피워도 되죠. 어차피 아줌마는 경찰도 아니잖아요."라고 한 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희수는 남우와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이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을 간 기억과 사진이 그것을 증명하는데, 그런 그녀조차 사실 남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너무도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애를 교실 한구석에 놓인 신발장이나 청소도구함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그런 가구를 괴롭히지는 않잖아요. 그애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될 정도예요. 이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아이들은 그애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지 몰라요.
이처럼 다른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남우는 어느 날부터 너무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학교 아이들이 모두 선망하는 현재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이면서 동급생인 안나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안나는 수업시간 도중 갑자기 손을 들고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 앞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자리가 바로 남우의 옆자리였다. 이 장면은 마치 하나의 스냅사진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슬로우를 걸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작품을 읽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아이들이 그 순간 받았을 느낌과 같은 것처럼.
아이들은 남우의 옆자리가 비어있다는 걸 그 순간 처음 안 것 같았다. 마치 안나가 가리키는 순간 거기에 빈자리가 생겨난 것처럼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안나는 책과 노트를 들고 그 자리로 걸어갔다. (중략)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안나가 남우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건네던 순간이었다. 그것은 수업 중에 흔히 옆자리의 아이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남우는 칠판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자기 책상 위를 바라보고 다시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미묘하게 고개를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아이들은 모두가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안나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남우의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을 주고받은 것. 이 일을 계기로 남우는 아이들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영이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지나가면서 남우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게 되면서 아이들은 남우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분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매칭을 만들어낸다. 바로 남우와 안나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남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교실에서 안나와 같은 존재였죠. 사실 안나를 싫어하는 애들도 꽤 있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안나는 우리 교실에 없었죠.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세계는 여기에 없었어요. 바깥세계, 연예계라는 곳에 있었죠. 똑같은 의미에서 남우의 세계도 여기에 없다고 아이들은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그 생각을 수정해야 했죠. 왜냐하면 남우는 항상 교실에 있었으니까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남우와 연예계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안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닮은 존재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안나가 왕따를 당하지 않은 건, 안나는 학교에 없었다. 자신의 세계로 넘어가버렸으니까. 다만 자신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은 남우가 아이들의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아이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남우는 희수에게 거리의 마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마술을 보여줬지. 남우는 말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나게 했어. 남우는 그가 보여준 마술을 그녀에게 얘기해 준다. 카드를 맞힌다든지, 카드를 순간적으로 다른 카드로 바꾼다든지, 비어있는 콜라 캔을 다시 채운다든지,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그가 떠올린 숫자나 물건의 형상을 맞힌다든지, 또는 아주 조금이지만 공중에 뜬다든지......
여기서 희수와 남우가 나누는 대화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처음에는 오타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남우의 대사들에 큰따옴표(" ")를 넣지 않는다. 근래 들어서 소설들의 대사들에는 큰따옴표가 사용되지 않기도 하기에 그런 것인가 했지만 희수의 대사에는 들어가고 남우의 대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작가의 의도임을 알 수 있었다. 남우의 대사들에는 어째서 큰따옴표가 없을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실제로 두 사람은 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희수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대화 일 수 있다는 것. 일단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낯설다. 남우는 원래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에 교실에서 단 둘이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에도 두 사람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수는 남우가 자신에게 말을 걸까 봐 두려워한다. 그런데 숲에서 기다렸다가 만난 두 사람이 거리의 마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희수가 만들어낸 상상이 아닐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에 등장하는 문장인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나게 했어'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우의 세계로 희수가 건너가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설정이다.
숲 속에서 그녀는 남우를 기다린다. 장대같이 가느다랗고 키 큰 나무들이 그녀의 모습을 아파트 뒷길로부터 가려주고 있었다. 언제 비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젖은 흙냄새가 났다. 남우가 오자 둘은 숲의 안쪽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희수는 남우를 만날 수 있는 그의 세계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그를 만난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녀의 대사에는 큰따옴표가 붙는 것이고, 자신의 세계에서 말을 하는 남우는 큰따옴표가 붙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두 가지 의미로 이 부분을 해석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꼭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다.
처음에 태영이는 남우의 손에 들린 칼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맨 먼저, 마치 손 그 자체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하얀 칼날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아까 남우가 책상 서랍에서 꺼낸 것이었다. (중략) 남우는 왼손으로 태영의 눈을 가렸다. 태영은 어둠 속에서 배에 무언가 쑥 들어오는 걸 느꼈다.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불 그 자체가 배로 들어온 것처럼 뜨거웠다.
남우는 자신을 주도적으로 괴롭히던 태영이에게 다가가 그의 시야를 왼손으로 가리고, 오른손에 든 칼로 그를 찌른다. 순간 아이들은 칼을 보고 소리를 질렀고,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달아났다.
하지만 칼은 없었죠
남우가 희수에게 거리의 마술사를 만난 이야기를 한 후에 그는 마술을 연습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이 바로 남우가 태영이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다. 모두가 칼과 피를 보았는데, 경찰들이 교실과 남우의 소지품을 모두 살펴보았지만 칼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태영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남우가 말했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남우는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희수는 그런 남우의 행동을 단순히 밑으로 내려가기 위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남우를 둘러싸고 있으니 계단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 그렇게 남우는 교실 세계와 작별하고 자신의 세계로 건너간다.
남우라는 왕따 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남우일 수도 있고, 그런 남우를 보며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아이들일 수도 있다. 어느 위치에 있던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작가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마술을 경험하게 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을 뺏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나는 분명 태영이 칼에 찔리던 저곳에 있었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