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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채 Jan 15. 2021

정신병원에 가다 말고 제주도에 와버렸다

1일 차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의문의 시선에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기를 여러 번, 나중엔 너무 익숙해져 버려 그 의문의 시선이 느껴져도 '그런가 보다.' 하고 덤덤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료와의 실랑이 후, 느낌으로만 존재하던 것의 실체가 나타내기 시작했다.


   동료와 한바탕 실랑이가 끝나고 난 후, 처음 겪는 호흡 곤란에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다행히 그날은 그 정도에서 멈췄지만 그 후기 문제였다.

   그날 이후 심한 무기력감이 앓았다. ‘무기력감’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몸살 같았다.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모르니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우울감으로 증폭되었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해도 즐겁지 않았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기 잃은 눈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무언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골목 기둥 뒤에 숨어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 앞에 아른거리다가도 어느 센가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나타났다.


   피부 아래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눈을 의심하고 다시 그것을 보려고 뻣뻣해진 고개를 돌리자 불길이 확! 솟아 안면을 강타했다. 눈 앞이 하얘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귀 안 쪽에선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명으로 이어졌다. 다리가 없어진 것처럼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니 움직이면 안 될 거 같았다. 조금만 움직였다간 ‘그것’이 품 속에서 칼을 꺼내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올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공포였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에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꼭 보고 싶었다. 아니 꼭 봐야만 했다. 기둥 뒤에 숨어 나를 보고 있는 ‘그것’은 내가 아는 누군가와 아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똑바로 보려고 나를 짓누르는 공포감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짓눌려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다녀 ‘그림자’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다. 혼자.

   점점 갈수록 그림자를 보는 일이 잦아졌고 그만큼 길바닥에 눕는 일도 빈번해졌다. 길바닥은 지저분하고 차갑고 또 불편했지만,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다행히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생각이 들게 했다.


'아, 지친다... 이대로 숨이 안 쉬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편해졌으면 좋겠다.'


   공포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우울로 나를 점차 지배해 나가더니 쉽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두려우면서 멈추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마치 지뢰 같았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터져야 끝이 났다. 그리고 괜찮은 상태로 돌아와도 마치 속을 게워낸 듯 역겨운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런 정신적 토사 광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 감기랑 그리고 마음 감기에 걸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전처럼 일상을 보내기 어려워졌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당시 지인들이 '금방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라고 말했다.

   마음의 병뿐만이 아니었다. 추운 날씨에 자꾸 길바닥에 누우니 아주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약국에서 산 감기약을 한 통을 다 비워도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결국 자주 가는 병원을 찾아갔다.

   회사 근처에 가정의학과가 있었는데 꽤 가까이 있었던 덕분에 자주 애용했다. 그렇게 너무 자주 간 탓에 의사 선생님이 내 얼굴만 봐도 이름뿐만 아니라 이전 진단내용까지 외우고 계실 정도였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처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평소와 다른 질문을 하나 더 하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가정의학과이기 때문에 이상할 게 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이미 짐작하고 계셨는지 당황한 기색 없이 조용히 휴지를 건네셨다. 그리고 다음 예약환자가 늦는다 했다며 더 울 수 있게 토닥여주셨다. 그리고 내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우울증 자가진단 지를 건네셨다.

   나는 순순히 선생님이 건넨 진단 지를 받아 들고 차근차근 작성해 내려갔다. 결과는 '심각'했다. 선생님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일단 나에게 독감주사와 약을 처방해 주시고 정신과를 내원할 것을 권했다. 나는 '정신과'라는 단어에 겁이 덜컥 나 다시 또르륵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은 다시 휴지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지금 감기에 걸린 것처럼 마음에 감기가 걸린 거예요. 감기처럼 약을 쓰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꼭 가봐요. 꼭이요."



# 가장 높은 장벽은 ‘나’이다.


   나의 상태를 알게 된 후 몇 개월이 지나 나는 2주 정도 긴 휴가를 냈다. 선생님의 설명과 권유에도 결심하기까지 조금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찌 됐든 결심을 하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병원에 가기 위해 옷가지 몇 개와 세면도구 등 간단하게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통원치료도 가능했지만 나는 입원하는 걸 택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유난히 나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져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나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았다. 위염, 두통이랑 다를 것 없는 병인데 '병'에 '정신'이라는 말이 붙으니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구체적인 진단을 받으면 더 이상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고 행여 누군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마치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생각은 쉽게 떨쳐내 지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가는 걸 주저한 가장 큰 이유는 ‘나’였다. 그동안 내가 무시해왔던 '나의 상태' 그것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예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입원을 결심한 것은 내가 벼랑 끝에 와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림자가 보였고, 쫓기고 있었고, 쫓기고 쫓기다 벼랑 끝까지 와있었다.


   병원 입원하러 가는 당일, 나는 몸 구석구석 용기를 긁어모았다. 가방을 챙겨 메고 집을 나섰을 땐 ‘이렇게 멀쩡한데 병원에 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멀쩡하고 또 씩씩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허세임을 알게 되었다.

   그 씩씩한 발걸음으로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마치 실수를 한 것처럼 엉뚱한 지하철을 탔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여러 번 열렸지만 나는 망부석처럼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40여분이 지나고, 드디어 내 발은 움직여졌다.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린 곳은 김포공항이었다.

   나는 홀린 것처럼 긴 보행 터널을 지나 김포공항 '타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또 홀린 것처럼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참 좋아진 세상. 핸드폰 위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니 쉽게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마일리지를 바득바득 긁어모아 티켓을 사는데 보탰다. 그 와중에 통장잔고를 생각한 나의 이성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비행시간이 되자 나는 원래 여행을 계획한 사람처럼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좌석에 앉아 승무원이 주는 오렌지 주스를 얌전히 받아 들고 홀짝홀짝 마셨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알았다.


‘아, 병원에 가지 않아서 이렇게 편하구나. 정말 가고 싶지 않았구나.’



# 그래서 도대체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나는 계획에도 없었던 제주도에 도착했다. 도착한 날 제주도 하늘은 잿빛이었고, 분무기를 뿌리는 것처럼 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온 제주도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라 내 발은 공항 안을 한참 방황을 했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을 숙소조차 없다는 것에 뒤늦게 당황해 한참을 우왕좌왕했다. 일단 공항을 벗어나자는 생각에 가방 구석에 처박아놓은 양산을 펼쳐 썼다. 작년 여름에 넣어두고 꺼내지 않은 양산이었다. 나의 게으름이 준 행운의 양산이었다. 약하긴 하도 비를 막기에는 충분해 펼쳐 쓰고 걸었다.

   나는 일부러 공항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공항에도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멀리 떨어진 정류장에 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버스 앞유리에 적힌 목적지를 보려고 몸을 앞으로 뺐다. 그랬더니 버스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민망함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려고 일단 버스 계단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갑자기 그림자를 봤을 때처럼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지고 이명까지 들려왔다. 속이 뒤집혀 빈속에도 무언가 올라올 것 같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 목소리가 이명을 찢고 들려왔다.


“안 탈 거면 발 치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올린 발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려는데 버스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이미 떠나버렸다. 버스는 떠났지만 귓가엔 버스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 또 지난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빨리 뛰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지겨운 과거의 아픔들. 그만 곱씹고 싶은데 또 그것이 없으면 지금의 나를 이런 나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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