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닭고기 수프
매일 12시간이 반복된다.
마법의 닭고기 수프를 만들기 위해 처음 시작하는 일은 바로 닭 작업이다.
우선 주방의 빈 바닥에 전날에 깨끗이 씻어서 말려둔 커다란 작업포를 깔아놓고, 닭 손질 작업을 시작한다. 아침일찍 도착한 냉동닭 수 백 마리의 목 부분과 꽁지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산처럼 쌓아놓으면 옆에 앉은 사람들은 닭의 뱃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남은 내장과 지방들을 모두 훑어내어 큰 대야에 던져넣는다. 아무래도 아침의 피곤함과 나른함이 남은 때문인지, 대화는 거의 없다.
아무리 장갑을 튼튼하게 끼워도 손이 차갑게 얼어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으.. 마비되는 느낌. 희한한 건, 매일 아침 굳어서 펴지지도 않던 아픈 손가락이 일을 하면 점점 저절로 펴지는 거다. 일을 해서 통증이 생기고 굳은 손가락들이 일을 해야 펴지다니. 하하.
큰 대야에 가득 가득 담긴 수백 마리의 닭들은 또 실시간으로 넘실거리는 찬물로 초벌 세척을 한뒤, 다시 다른 큰 대야로 옮겨져서 재벌 물로 세척한다. 그 뒤에 닭 상자에 담겨져서 본격적으로 닭 작업을 위한 준비로 들어간다.
닭 작업은 분업화되어있고, 한편으로는 멀티가 가능해야하기도 하다. 첫 단계의 사람달은 큰 바구니에 준비되어있는 삼과 마늘과 대추를 닭에 집어넣어 다음 단계로 전달하고, 두 번째 단계의 사람들은 전 날부터 불려서 냉장시켰던 찹쌀을 닭의 뱃속에 가득가득 채워서 다음 단계로 넘긴다. 세 번째 단계 사람들은 받은 닭을 잡고 양쪽 다리를 꼬아서 단단하게 붙들어매는 작업을 하고, 다시 큰 대야 통에 담는다. 직원들 중 능숙한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의 속도로 닭안에 대추를 넣거나, 닭 안에 쌀을 넣거나, 닭 다리를 꼰다.
이후 물로 닭에 묻은 찹쌀 부스러기를 씻어내며 닭 상자에 담긴 뒤, 저온 저장고로 들어간다. 이게 매일 아침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닭들이다. 이렇게 오늘 미리 작업한 닭들은 저온저장고에서 냉동되어서 하루 숙성된 뒤 내일 아침에 삶아진다.
닭작업과 동시에 불을 켜서 팔팔 끓여 둔 통에 시간 맞춰 어제 준비해둔 닭들을 넣는 것도 잊지말아야한다. 숫자를 잊지 않기 위해 속으로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열, 이런식으로 되뇌이며 다섯 마리씩 나누어 넣는다. 몇 번은 딴 생각을 하다가 몇 마리 넣었는지 잊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에 평균 몇 백 마리의 닭이 틈틈이 삶아진다.
닭작업 중간 즈음, 즉 닭 다듬기와 세척이 끝났을 때 즈음엔 나는 후다닥 달려가서 이미 팔팔 끓고 있을 육수통앞으로 간다. 먼저 끓어오른 육수표면의 기름 불순물을 걷어낸 뒤, 염도계로 염도를 잰다. 준비한 소스통에서 소스를 국자로 퍼내어 육수통에 넣고 휘휘 저어주면서 표준 염도를 맞춘다. 염도가 맞춰지면 전날 찹쌀을 갈아 냉장고에 저장해둔 통으로부터, 물에 개어진 찹쌀물을 적당량 부어가며 알맞은 점도에 이르기까지 저어준다. 조심스럽게 켜놓았던 불을 모두 개방하고 이후로는 열심히 저어준다.
불기운이 무척 뜨거워서인지 여름 동안에는 늘 넓적다리 피부에 열꽃이 피어서 붉은 반점이 가득하곤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세 출산을 준비 중인 남성들에게는 무척 안좋은 작업이겠다는 판단이 든다. 그리고, 이 열기는 결국 미칠듯한 탈모를 불러온다. 조만간 머리를 밀어야하나 고민 중이다. 육수가 완성된 뒤에는 최종적으로 먹기에 적합한 염도인지 확인하고, 또 직접 떠서 맛을 본다. 반복해서 만들며 느끼게 된 것이지만, 나는 내가 만든 육수가 제일 맛있다! 하루 중 이런 육수 만들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차례 반복한다.
10시 혹은 10시가 넘어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주문이 들어오면 이미 끓여서 뜸을 들인 닭을 뚝배기에 담고, 완성이 된 육수를 가득 부어서 불판에 올려놓는다. 대부분 주문이 들어온지 몇분이 안되어 어떤 경우는 1~2분 내에 홀로 나가는 편이다. 언제나 손님이 빨리 드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 모두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아침부터 손님이 몰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점심시간 전후해서, 2시반 정도까지 바쁘고, 다시 4시반 5시부터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삼계탕 외에 파전이나 닭죽, 탕수육등의 다른 메뉴가 함께 끼어들어서 다들 늘 바빠진다. 나는 주로 탕수육쪽을 담당하고 있다. 삼초오온~~ 탕소 하나! 라는 외침을 들으면 네~~ 대답과 함께 후다닥, 튀김기계로 가서 예열버튼을 누르고, 냉장고 속의 전분반죽과 일정한 무게로 재어져 포장되어있는 탕수육용 고기를 꺼내어 보울에 담는다. 장갑위에 1회용 장갑을 다시 덧댄 뒤 열심히 주물러 준다. 온도가 맞춰지면 전분반죽 옷을 입은 고기들을 떼어내어 수제비를 띄우듯 튀김기 안의 기름 속에 퐁당 빠뜨린다. 전분반죽 상태가 안좋거나 제대로 주물러주지 않으면 중간 중간 퍽 하고 터지고 기름도 더 많이 튄다. 타이머를 누른 뒤, 나름의 적합한 시간에 잠깐씩 꺼내어 공기중에서 뒤집어주고 다시 넣고를 반복한다. 다른 사람들은 대충 넣고 타이머만 누르는 편이지만 나는 조금 시간이 걸리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탕수육도 내가 만든게 제일 맛있다고 느낀다. 하하. 내가 만든 경우에는 언제나 깨끗하게 비운 접시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주문이 들어온 음식들을 준비해 홀쪽으로 보내는 것 외에 당연히 함께 하는 것은 설거지다. 나는 주로 뚝배기를 씻는 것을 담당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손놀림의 요령이 늘어서인지, 적은 노력으로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깨끗하게 닦게 되었다. 우선 뜨거운 물로 불려내며 씻고, 찬물에서 점검하며 닦아낸 뒤, 뒤집어 말렸다가 진열대로 보내거나, 주방 앞쪽의 불판 쪽으로 카트를 이용해 보낸다. 내 뒤쪽에서는 뚝배기 외의 반찬 그릇들을 싱크대에서 초벌 세척한 뒤 세척기에 넣고 돌리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65초안에 세척기가 끝나기 전에 이미 완료된 그릇들을 부지런히 차곡차곡 큰 바구니에 담아 홀쪽으로 보낼 준비를 해둔다. 이외에도 수저, 국자들을 모아서 세척하고 다시 세척기에 돌리고, 마지막엔 끓는 물로 세척을 해서 다시 홀로 돌려보낸다. 중간 중간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통을 비우고 비닐을 채우며, 음식 쓰레기통이 다차면 버리고 오는 일도 잊지 말아야 불편함이 없다.
중간 중간에 사용했던 장갑들을 세제들을 담아서 역시 끓는 물로 소독하고, 다시 세탁기로 돌려준 뒤, 바깥에 말리는 것도 잊지말아야한다.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있는 피클 만들기나, 깍두기 담기, 파 썰어내어 말렸다 담기는 매일 하지는 않으므로 생략!
이런 일과들 사이 사이에 서로 돌아가며 쉬는 1시간의 휴식시간이 있다. 직원숙소로 가서 씻고 젖은 옷을 갈아입고나면 대략 40~50분정도 쉬는 시간이 생긴다. 잠시 기절했다가 일어나는 느낌이다. 다른 남자직원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여자직원들은 잠시 틈을 보아 쉬는 시간을 갖는 것에 비해서, 담배를 피우지않는 나는 하루 종일 휴식없이 움직이다가, 정해진 쉬는 시간이 되면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분으로 잠이 든다. 하루 중 퇴근 시간 못지않게 기다려지는 중요한 시간이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저녁시간을 넘기고 나면 청소시간이 돌아온다. 모든 일을 다 끝내고 청소를 하려면 끝이 없다보니,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이 되면 주방 전체구간의 일부분씩을 맡아서 조금씩 청소를 해놓고, 마지막에 바닥청소를 하는 식이다. 불판청소외에 특히 바닥청소는 내 몫이기에 바닥에 걸레질을 하고있자면, 아, 오늘 하루 일이 드디어 끝나가는 군, 안도의 숨을 몰래 내쉬며 퇴근을 기다리게된다. 내일 있을 닭작업을 대비해서, 쌀을 씻어서 불려놓기도하고, 닭작업에 쓰일 삼, 대추, 마늘을 미리 챙겨놓는다. 참, 내일 닭작업할 박스들도 미리 챙겨서 깨끗이 씻고 세척기에 돌려서 말려놔야한다.
이 외에도 생각나는 것들이 꽤 있지만 대략 이렇게 하루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마법의 닭고기 수프를 만들기 위한 12시간 종료!
아, 드디어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