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예쁨의 발견.
(손원평, <아몬드>)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의 표지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소년의 얼굴이 큼지막히 그려져 있다. 어디를 쳐다보는 건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은 감정을 읽어내기 어렵다. 아무래도 기쁨은 확실히 아니며, 슬픔에 가깝긴 하지만 슬픔도 아니다. 미스터리한 이 표지의 소년은 바로 소설의 주인공 윤재다. 윤재는 감정표현 불능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살아가며 필요한 감정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마치 구구단을 외우듯 암기해야 한다.
소년의 가족인 할머니와 엄마는 열심히 그에게 기본적인 감정들과 그에 걸맞은 감정 표현들을 일대일로 대응시켜 교육한다. 슬픔이 무엇인지, 분노가 무엇인지, 고마움이 무엇인지를 말 그대로, 글로 배운다. 윤재는 기본적인 감정들을 외우며 공부한다. 이도 저도 모르겠을 땐 그냥 상대방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일종의 치트키도 함께 말이다.
오늘 <소설 같은 소리>로 발췌한 부분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주고자 '愛'를 정성스레 쓰고 있는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이다.
사랑은커녕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일 수 있는 두려움, 놀람,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에게
사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윤재는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윤재는 할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예쁨을 발견하고야 만다.
가장 밝고 어여쁜 빛이 누군가의 뒤에만 강하게 내리쬐는 듯한 착각을 동시에 하면서
그렇게 소년은 사랑을 알아간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사랑이라는 명사에는 '빠진다'는 동사가 자주 따라붙는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영 여전히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첫 만남에 빠르게 사랑에 빠지거나, 첫눈에 반하거나 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는 원인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가볍고 간지러운 감정을 처음 느껴보고, 그에 대해 자주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열여덟 무렵을 떠올려보아도... 아무래도 나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또 나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 L은 소위 알 수 없는 포인트 한방에 금방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소위 금사빠적 성향이 짙은 친구였다. 그래서 나와 친구의 연애 수다 패턴은 종종 이랬던 것 같다.
나 이번엔 진짜 운명이야. 그 오빠 너무 좋아!
-아닐걸? 저번에도 진짜라더니 금방 식었잖아?
...
대체로 나는 친구를 말리고, 친구는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벙쪄서 서로를 쳐다보곤 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항상 앞서가면서 마음을 덜컥 열어버리는 친구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심지어 상대방이 본인의 존재를 알지 못할 때에도 이미 상대방의 아주 사소한 버릇들까지 파악해내고야 마는 그 집요함에 조금 어이가 없고 황당해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내가 L을 가까이서 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누군가를 볼 때 그녀와 나와의 시선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지금보다도 더 타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을 열여덟에 나는 누군가의 단점을 더 잘 발견하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단점을 잘 보는 것이 내 단점이었던 것인데, 특히나 연애 감정이 생기려 하는 경우 그 성향은 더 강하게 작동했다.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 두려움, 그리고 나에게 있는 콤플렉스 등 여러 부정적 면모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에 빠지기는커녕 누군가를 동경하거나 하는 일도 나에겐 아주 흔치 않은 일이 될 수밖에.
반면 L은 누군가의 사소하고 작은 모습들까지도 기어코 찾아내어 장점으로 칭찬하곤 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여러 면모 중 좋은 지점 하나는 꼭 발견해내고야 마는 그녀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하나도 두렵거나 부담스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발견해 낸 멋진 부분들은 사랑의 감정을 촉발시키는 포인트들이었다.
사랑에 쉽게 빠지고 안 빠지고를 결정적으로 좌우했던 우리의 차이는 바로 타인에게 향하는 시선의 방향에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그건 진심으로 전해졌다. 그런 L의 태도는 처음엔 그녀의 칭찬이 부담스럽다던 이들의 마음까지도 허물어버렸다. 뭐 이런 것까지 칭찬하지? 너무 영혼 없는 거 아냐? 라고 삐딱하게 생각하던 친구들도 꾸준한 진심 앞에선 마음을 놓고 기분 좋게 웃어버렸다.
사랑을 오래 지킨다는 것
나와 L의 차이에서 발견되었듯 사랑은 '빠진다'는 수동적인 동사보다는 적극적 노력이 가미된 '발견하다'는 동사가 더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바로 '예쁨의 발견'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보다는 사랑의 이유가 되는 예쁨을 발견한다는 표현이 더 좋고 와 닿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좋은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은 그건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좋은 무언가를 찾고 싶으면 정말 두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도 한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려고 해도 적어도 안경이라도 고쳐 쓰고, 눈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은 자잘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는 '사랑'은 내가 가만히 있는 데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 사람이다'싶은 종소리가 귀에서 들리고 하는 그런 마법 같은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꾸준하게 긍정적인 시선이 예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예쁜 것들이 한 존재에게 더 깊게 발견될 때, 그럴 때 사랑은 시작된다.
그런가 하면 연인의 사랑 감정을 오래 지켜내는 것도 다름 아닌 지속적이고 꾸준히 상대방의 새로운 예쁨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모습을 모두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의 감정이 점차 어려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더 알고 싶은 것, 더 발견할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 오래된 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감정이다.
타고난 긍정적 사랑꾼 L과 감정을 글로 배우는 소년 윤재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 나는 이제 예쁨을 자주 발견하는 예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보려 한다. 올해의 다짐 같은 것을 따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쓰며 한 가지가 떠올랐다.
올해는 내가 만나게 되는 이들의 예쁨을 발견하고 또 발견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그런 어여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