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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y 04. 2020

가장 좋은 때보다 덜 좋은 이곳

아쉬운 마음들은 저마다의 낭만으로 남아

바다는 푸르고 지평선은 머나멀었다.

오후도 좋지만 요코하마는 밤에 참 아름답습니다.

아, 네.

겨울도 좋지만 봄이 가장 좋고요.

네, 그렇군요.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가장 좋은 요코하마보다 조금 덜 좋은 요코하마에 있는 셈이었다. 도달할 데가 남아 있는 겨울 오후.

봄밤에 또 한 번 와보셔야죠.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정이현, <밤의 대관람차> 중)






25년째 한 고등학교에 근속 중인 은 문득 자신의 몸이 25년의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낯선 느낌을 다시 관성의 힘으로 무너뜨리며 시동을 걸어야 한다. 출근을 해야 하니까. 양은 어제와도 내일과도 다르지 않을 오늘을 보내는(혹은 견디는) 사람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현관문을 닫고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걸고, 매일 같은 주파수의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을 한다. 아쉬운 것도 욕심나는 것도 없어 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양은 그해 겨울방학 해외교류 활동 인솔자로서 일본 요코하마를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떠나기 전부터 '요코하마'는 감정 또한 관성처럼 늘 비슷한 높이의 상태를 유지해오던 그녀에게 모처럼 가벼운 흥분을 일으킨다. 요코하마는 관성적인 지금이 아닌 다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지금처럼 지겹고 천천히 늙어가는 현재의 삶을 상상할 수도 없던 젊은 날, '부루라이토 요코하마'를 흥얼대는 누군가의 옆모습을 보며 설레곤 했던 시절이 있던 것이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에 나오는 요코하마. 그녀는 그 지명이 상기시켜주는 한 때의 어리석음과 격정들을 곱씹으며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


지명을 들었을 때부터 막연하게 느꼈던 가벼운 흥분은 어쩌면 그곳에서 동행하는 에게 느끼게 될 미묘한 감정을 예감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그녀가 한 때의 사랑과 얽힌 요코하마라는 공간에 담긴 낭만을 간직하고 있던 탓일까. 요코하마에서 양은 장에게 마음을 삐끗하면 주었을 뻔하는 감정들(얼핏 보면 밍밍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나 에로틱한)을 종종 느끼게 된다. 그중 한 순간은 이렇다. 그녀가 일행이 대관람차를 타는 것을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샌가 옆에 와있는 장이 대관람차에 대한 두려움을 툭 털어놓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양과 장이 대관람차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이 순간은 짧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 순간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함께 요코하마에서 무언가 감정을 나눴다거나 마음을 전한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양은 결국 25년의 관성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 둘 사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루하게 긴 시간 동안 덧없이 늙어간다.


다만 소설을 읽으며 어떤 작은 마음의 이동 같은 것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저 대화이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이 곳의 가장 좋은 계절은 지금이 아닌 다음 계절이라는 말은 양의 뺨을 붉게 만들고 만다. 아마도 양에게 그 이야기는 관성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지금도 좋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어떤 것을 꼭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매력적인 고백으로 닿았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결국 양은 도달할 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겐 옛사랑의 부고와 여전히 긴 오후만 남는다. 해도 해도 너무 쓴 현실이 반영된 결말이 텁텁해 잠시 책을 덮었다.


나는 현실의 쓴맛은 후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둘의 대화에서 낭만기만 살짝 건져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보지 못한 계절이 남은 그곳


산토리니는 아니지만 파르테논 신전 가는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


내가 있는 이 곳이 조금 덜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그곳을 더 아쉽고 마음에 남는 공간으로 남게 해 준다. 지난겨울에 나는 뜬금없게도 그리스에 갔다. 유럽여행을 가보자 마음먹은 나는 아테네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편부터 선뜻 예약해버렸다. 시작 도시도 미정이었지만, 마지막 도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테네'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아테네에 머물며 겨울에 한적한 산토리니를 다녀온 어떤 여행기를 읽고 거기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사람보다 고양이와 당나귀가 더 많다던 산토리니의 조용한 겨울은 어떨까 싶었고, 아무리 겨울이라도 그리 많이 춥지는 않고 상쾌하다던 그 공기를 나도 꼭 마셔보고 싶었다. 대책 없이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제대로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데 그제야 겨울에 여행자의 신분으로 산토리니에 가려면 시간이나 돈이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에만 가면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산토리니 행은 이렇게 쉽게 무너져 버렸고, 대신에 아테네에 더 여유롭게 머무르자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도 보통 청량음료 광고에서 나올법한 파랗고 하얗고 싱그러운 여름날이 그리스의 성수기임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정보가 잘 나오지 않아 조금씩  겨울의 그리스행이 흔치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느끼긴 했다. 그리고 정말 실제로 도착한 후 아테네 시내의 한적한 거리를 보면서 그 말들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아테네에서 마주쳤던 상상 속 조르바 느낌의 쾌활한 현지인들은 간혹 나에게 "겨울에 아테네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다음엔 여름에 꼭 놀러와! 여름이 정말 좋거든!" 같은 말들을 호탕하게 해 주며 웃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그 말들이 다음 여행에 대한 축복으로 들렸다. 겨울이긴 했지만 포근하고 쾌적한 날씨,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는 조용한 시내, 그리고 내 입맛에 너무 잘 맞았던 싱싱한 그리스 음식들로 안 그래도 행복했던 탓일까. 지금도 좋은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는 여름이라니. 꼭 다시 와야겠다는 설레는 마음에다 대고 여름의 그리스를 한번 더 약속시켜주는 말들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에도 이토록 좋은 그리스니까, 언젠가의 겨울엔 미리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꼭 산토리니까지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도달하고야 말 우리의 낭만을 응원해


용산역 기차소리 말고, 교토역의 기차소리가 듣고 싶어


물론 지금 이곳이 아니면 어디든! 하는 심정으로 아무 데나 떠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지만, 우리는 여행지에 대한 저마다의 낭만들을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다.


얼마 전 독서모임 뒤풀이에서 H는 요즘 일본에 너무 가고 싶다면서 일본 여행에 대한 낭만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그의 아주 구체적이고 치명적인 낭만 리스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철도에서 댕댕댕- 기차가 온다고 알려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는 낭만을 실현하고자 비 오는 날 일본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는 여행 내내 장마였다고 한다. 그래서 비는 '추적추적'이 아니라 '주룩주룩'으로 내렸고 결국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며 H는 일본에 다시 가야 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칭 타칭 사대주의자 J가(농담 보태서 말하자면 그에겐 사실 대문호의 나라 프랑스 정도 되어야 낭만 여행지다) '대체 일본은 뭐하러 가?'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그냥 비 오는 날 용산역 근처에서도 그런 소리는 들을 수 있을 텐데..'라는 덧붙임까지 완벽한 자기희생 개그였달까.


H와 J의 에피소드는 어쩌면 저마다의 낭만이 누군가에겐 전혀 이해가 안 되는 포인트에 놓여있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내가 겨울에 사람 없는 한적한 산토리니에서 길고양이를 보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는 꼭 거기까지 가야겠니? 하며 서울의 길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 어느 동네 골목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H가 일본의 비 오는 기차역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다시 꼭 갈 거라고 말했듯,

J가 프랑스 보르도가 좋은 이유들을 신난 목소리로 빠르게 읊어줄 수 있듯,

그리고 내가 겨울의 산토리니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나고 싶듯,

우리가 갖고 있는 낭만 포인트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으로 우리를 설레게 한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결국 도달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은 놓친다고 한들, 더더욱 그 아쉬움으로 '다시 언젠가는!'을 외치며 마음 한편에 사랑스러운 낭만으로 쌓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친한 이들에게 가끔 꺼내 이야기하면서 눈을 반짝일 수 있었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 가장 좋은 요코하마보다 조금 덜 좋은 요코하마에 있는 셈이라는 아쉬움을 소설 속 양이나 장처럼 쉽게 접어버리지 말기를. 도달할 데가 남아 있는 겨울 오후를 싱겁게 보내버리지는 말기를. 언젠가의 봄밤에 또 한 번 와봐야 한다는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기를. 그래서 그 낭만들에 언젠가는 도달하기를. 조용히 응원해보는 밤이다.


그러니까 산토리니의 길고양이들아 조금만 기다려줘 언젠가의 겨울엔 맛있는 간식 잔뜩 챙겨서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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