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극 내향형 인간이다. 내향형 인간은 밖으로 돌아다닌 것보다 안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낯가림을 해서 친해지려면 서로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친해지면 오래가는 편이다. 아쉽게도 우리 식구 모두 I로 시작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강아지에게 MBTI가 있다면 우리 코코도 I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MBTI 얘기를 꺼낸 건 코코에게 낯가림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식구가 느낀 감정이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웃을 수도 있다. 무슨 강아지에게 낯가림하냐고. 하지만 예쁜 거랑 친해지는 거랑은 다르다.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는 동생이 말했다.
“언니, 코코가 집에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아?”
“응,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아. 시간 지나면 코코는 다른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깔끔쟁이 우리 아빠는 코코가 달갑지 않았다
아빠는 코코가 불편하다
아기 코코는 너무나 귀엽고 예뻤지만, 잠시 빌려서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강아지도 생명체라고 배변 패드에 오줌과 똥을 싸는데 매번 치우는 것도 처음엔 싫었다. 포메라니안의 특징은 하얗고 많은 털이다. 집에는 없던 하얀 털들이 돌아다녔고 이를 제일 불편해하던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심지어 아빠는 짜증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놈의 개, 왜 데려왔어!”
강아지가 집에 온다는 건 집이 더러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깔끔한 걸 추구하던 아빠는 청소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강아지가 집에 온다는 건 청소를 더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고 어쩌면 내가 오늘 청소했다는 게 표시가 안 날 수도 있다. 아빠 입장에서 청소만 문제가 아니었다. 강아지는 생명체라 한 번 키우면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므로 너무 성급하게 데려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처음에 정을 주지 않으려고 본체만체했다. 여자 셋이 예뻐서 만지작거리고 사진 찍고 아기 포메 얼굴 구경하고 있을 때 아빠는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아빠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 도도한 얼굴에 어느새 푹 빠져버렸다
식구들을 사로잡아버린 아기 포메 코코
코코는 우리 식구를 더 끈끈하게 해 주었다. 코코의 존재 하나로 대화가 더 늘어났고 식구들 사이도 더 좋아졌다. 코코는 딸들인 우리보다 아빠에게 더 많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자 셋에 남자 하나라 외로울 수도 있는 아빠에게 코코는 최고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코코를 안고 다니며 예뻐했다. 심지어 어릴 때 우리에게 하듯 코코 먹일 간식을 사 오셨다. 하도 안고 다니니까 동네 주민들은 우리 집을 ’ 코코네 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이름은 몰라도 ’ 코코네 집‘인걸 다 알 정도고, 그런 코코를 소중히 안고 다니는 아빠 얼굴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내향형 인간인 우리 식구는 시간이 지나 코코에게 익숙해졌고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코코가 특별히 뭘 한건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었을 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는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다고 한다. 한 번 키워봐서 헤어졌을 때의 슬픔을 잘 알고 계셨고 책임감에 대해서도 고민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고 아빠가 말하는 ’ 책임감’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우리 식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