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집을 보러 나섰다.
동네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고 하천에는 물이 시원하게 흘렀다. 벚꽃과 개나리 사이로 또릉거리는 새소리가 듣기 좋은 동네였다. 워낙 오래된 동네이고 월세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나온 집이라 집 안의 상태는 기대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가니 샷시 밖으로 탁 트인 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간의 간격이 넓어서 앞 뒤로 시야를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부는 8년 전쯤 주인이 살면서 수리한 상태라 상중하로 치자면 '중' 정도 상태였지만 특별히 흠잡을 곳 없이 깔끔했다. 당시에 살고 있던 세입자는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이었는데 집에 애정을 갖고 관리하며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집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다. '이 집이라면 우리 가족을 품어줄 것 같아.'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오랜만에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계약을 결심했다.
집을 보기 하루 전, 그러니까 부동산 어플에서 이 집을 발견하기 전, 낮에 잠시 들른 친구 집 책장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만났다.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감정을 발산하는가에 따라 그 기운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변화된 기운은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공간에는 그런 마법 같은 힘이 존재한다.
공간은 사람과 같다. 내가 애정을 쏟고 관심을 두고, 좋은 것을 선물할수록 그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 없듯이 원래부터 나쁜 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까.' 혼란스러운 마음에 풍수지리 책을 읽어보아도 심난함만 커지던 차에 만난 책이었다.
그렇다면 '집이라는 공간을 좌우하는 가장 큰 에너지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삶의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공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말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그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관계'다. (...)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다면 집과 사람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_신기율, <운을 만드는 집>
결국 좋은 집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살아온 집 중 객관적으로 좋은 집이라고 할만한 곳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든 그 집을 우리의 '스윗홈'이라 부르며 살았다.
나에게 집은 단순히 밥 먹고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주는 충전소이자 나의 영혼이 담긴 공간이다. 그렇기에 집이 늘 반짝반짝 깨끗하지는 않더라도 물건마다 자리를 정해주고 제자리에 정리 정돈하며 산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다. 모든 정리를 완벽하게 하지는 않지만 애정을 담아서 한다. 집에 공존하는 물건들과 말없는 생명체들(예를 들면 화분)에게 인사를 건네며 산다. 집을 나설 때마다 현관문에서 집을 돌아보며 내가 다시 돌아올 곳을 눈으로 담는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 때도 집에게 인사하며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또 한 가지, 웃음소리로 집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집 안에서 남편과 다투는 일은 최소화하고 만약에라도 다툰 날은 최대한 숨을 고르며 무거운 에너지가 오랫동안 집 안에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웬만하면 빠르게 화해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 걷는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좋은 운을 만드는 집의 조건을 떠올렸다. 결국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다.
운이 좋다는 말은 에너지가 잘 돈다 라는 말과도 같다. 공간의 에너지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에너지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내가 기분 좋게 지내고 기운을 북돋우며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집이 원래 갖고 있는 터나 기운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마음가짐이나 기분, 태도는 오롯이 내가 바꿀 수 있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리고 언제라도.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 묻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물으며 명당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나를 먼저 돌아볼 일이었다.
좋은 집을 찾아 헤매다 지쳐버린 나에게 이 책은 다시금 본질을 떠올리게 하고 희망을 주었다. 책을 읽고 신축 오피스텔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그냥 살아볼까, 고민하던 차에 이 집을 만났다. 묘하게 기분 좋은 타이밍이었다.
며칠 후 월세 계약서를 작성했고, 우리는 이사 전부터 그 동네를 자주 산책했다. 주말에는 이사 갈 아파트 단지에 주차하고 커피 한 잔을 사서 공원으로 걸어갔다. 집에서 공원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하천을 따라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온몸으로 느껴지는 공기와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발리를 여행하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거닐 때의 자유로운 느낌과 비슷했다. 한 마디로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산책길은 그 후로도 4계절 내내 나에게 큰 기쁨이 되어주었다.
<운을 만드는 집>에서는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하느냐'라고 물을 때마다 집만 보지 말고 그 집으로 오가는 길을 함께 보라고 충고한다.' 결혼 후 숱하게 이사하며 살아보니 진짜 그렇다. 집 안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집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집 안은 리모델링 해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동네는 내 힘으로 바꿀 수도 없으니까.
우리는 그 집에서 2년을 살았다. 당연하게도 사는 동안 모든 게 평화롭진 않았다.
윗집에는 미취학 남자아이가 두 명인 가족이 살았다. 둘째가 두세 살 정도 되었을 때는 경기를 일으키듯 악 쓰며 우는 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고 매일 아침 알람대신 빽빽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도 덩달아 쪼그라들었다. 다행히 1년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니 울음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대신 우리 집 천장이 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소음 그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건 부모님의 무관심한 태도였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이나 표정조차 비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어떤 책에서는 말한다.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라고. 억지스럽게 느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매일 윗집 아이들이 가족과 기분 좋게 놀고 잠을 푹 자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그 후에도 층간소음은 여전했지만, 희한하게도 아이들의 소음이 그전보다 괴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소음, 혹은 소리일 뿐이었다. '그래도 웃으면서 뛰어노는 발소리가 우는 소리보다는 낫네.' 싶었다.
별별 집에 다 살아본 덕분에 웬만한 문제는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가끔은 뺑뺑이를 돌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차 댈 자리가 있음에 감사했다. 적어도 주차해 놓은 차를 뺑소니 당하는 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삐거덕 거리는 30년 넘은 알루미늄 샷시인 집에서도 3년을 살았기에 튼튼한 손잡이가 달린 하얀 샷시를 열 때마다 '샷시가 참 튼튼하고 좋다.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원룸과 1.5룸에도 살았었기에 멀쩡한 방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자주 감사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과 공원이 있는 것에도 크게 감사했다.
임대인도 우리 기준에는 약간 비상식적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고 보면 상식적이고 말이 통하는 임대인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쯤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거 아니야?' 스스로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좋은 임대인은 못되어도 최소한 상식적인 임대인이 되자고 거듭 다짐했다. 운 좋게도 분양권이 완공된 후 세를 준 집의 임차인은 친구로 지내고 싶을 만큼 야무지고 소통이 잘 됐다. 신혼부부인 임차인이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주어서 우리는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가슴에서 우러나왔고, 그들 또한 우리 덕분에 좋은 집에 산다며 감사인사를 전하곤 했다. 전세계약을 하고 재계약을 하며 서로 협의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었지만,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하고 이해하며 중간지점을 맞춰나갔다.
살다 보니 어느덧 월세 계약기간 2년이 다 되어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 우리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에게는 집 1과 집 3이 남아있었다. 2019년 당시 나의 목표는 대출 없이 집 1에 입주하는 것이었다.
집 1은 2019년 5월, 전세를 끼고 매매했고 한 가족이 6년 가까이 계속 전세를 연장하며 살고 있었다. 전세 만기는 2025년 3월이었다.
집 2는 2019년부터 2022년 초까지 우리가 실거주하고 2022년 3월 제주살이를 하러 가면서 매도했다.
집 3은 2021년 말 완공되었고, 집 2를 매도하여 잔금을 치른 후 2022년부터 전세를 주고 있었다. 전세를 한 번 연장하여 전세 만기는 2026년 5월이었다.
마침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의 월세 만기도 집 1의 전세 만기와 똑같이 2025년 3월이었다. 월세살이에 지친 우리는 집 1에 입주하고 싶었지만, 집 3을 매도하지 않으면 집 1의 전세금을 내어줄 상황이 되지 않았다.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내어주는 방법도 있지만 무리한 대출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또 집 3을 전세를 끼고 매도하기에는 시장상황이 좋지 않았다.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임차인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매매로 내놓기에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정쩡하게 시간만 흐르던 2025년 1월, 집 3의 신혼부부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저희 퇴거하고 싶습니다.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