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이사만 아홉 번
퇴거하겠다는 임차인의 연락을 받은 후 잠시 숨을 골랐고, 미소가 지어졌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다. 하지만 이번 연락은 좀 달랐다.
"오히려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집을 매도하자."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는 나의 계획보다 흐름에 맡기고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슬며시 다가온 기회를 알아보았고 그 흐름에 올라타려고 발을 뻗었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퇴거하는 것이니 본인들이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부담하겠다고 말하는 임차인 부부에게 우리는 매도 계획을 알렸다. 공인중개소에도 즉시 매물을 등록했고 임차인도 적극적으로 집을 보여주었다. 집이 팔리면 임차인도 추가 비용 없이 퇴거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서로 같은 뜻을 품고 합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매수자 우위 시장(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주택을 매도하는 사람보다 매수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장)이어서 제 값을 받기도 어려웠다. 불과 2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조바심은 삶의 어떤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특히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조바심은 늘 일을 그르친다.
결국 목표했던 가격보다 2~3천만 원 낮은 가격에 매도했다. 한 달쯤 후 실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우리 집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다른 매물들이 2~3천만 원 더 비싸게 팔렸다. 우리의 거래는 같은 기간 내의 '최저가 거래'로 기록되었다. 로열동에 로열층, 옵션도 좋은 조건을 갖고 있던 우리 집을 헐값에 판 것 같아 속이 쓰렸다. 나의 조바심으로 제 값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시기적절하게 매도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을 매수한 사람은 좋은 조건의 집을 최저가로 산 것이다. 얼마나 기쁠까.
브런치북 4화~5화에 나왔던 12평 작은 집을 매도할 때는 우리가 집을 팔고 한 달 후 집값이 1억이 더 올랐다. 돈만 생각하면 속이 쓰렸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편안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집을 평균 시세보다 1억 비싸게 팔았다면 매수자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속이 쓰릴까, 그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테니. 당시에 저렴하게 집을 산 매수자는 우리 앞에서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두둥실 떠갈 듯했던 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누구라도 기쁜 사람이 있으면 됐지 뭐.‘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울그락불그락하기보다는 그동안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집과 앞으로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의 평안을 빌며 집과 작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2025년 5월, 그렇게 또 한 채의 집을 우리 손에서 떠나보내며 2019년 2월의 어리숙했던 우리가 떠올랐다. 벼락 맞은 듯 손에 쥐어진 분양권을 바라보며 잠깐 기뻐하다가 이내 쫓아온 두려움을 애써 잠재우던 그때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무식해서 용감했다. 분양권 당첨부터 계약, 대출, 잔금 등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기에 과정마다 늘 약간의 두려움이 따라다녔지만, 동시에 '잘 됐고, 잘 되어가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결국은 잘 된 일로 만들어갈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자 내 편이 되어 줄 세상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에게는 집 한 채만이 남았고 <대출 없는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결혼 7년 만에 일단락 됐다. 애초의 목표는 말 그대로 '대출 없는 내 집 마련'이었지만 약간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코로나 시기에 남편의 사업실패(빚 최소 1억 이상)가 있었고, 아파트를 매도할 때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팔았다. 사는 동안 아무런 이벤트 없이 계획대로만 착착 진행됐다면 '대출 없는 내 집 마련 + 여유 자금'까지 가능했겠지만 인생은 원래 조금 아쉬운 듯싶은 게 좋지 아니한가. 그래야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으니까.
'진짜 우리 집에 입주하는 날이 오는구나.' 얼떨떨했다. 때가 되니 애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됐다. 게다가 그 사이 우리 집은 재건축 대상으로 선정됐다. 언제 새 아파트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기에 호들갑을 떨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기쁜 일이다. 7년 전 재건축 강의를 들으며 살고 싶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의 사업성을 모두 계산해 보고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선택한 집이었다. 스스로에게 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내가 너무 기특했다. 내 어깨를 토닥거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실컷 칭찬해 주었다.
결혼 후 7년 동안 숱하게 이사 다니며 때로는 내 상황이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을 복기하고 또 복기해 보아도 그 당시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결혼할 때 우리는 대출 끼고 우리가 원하는 입지에 집 한 채를 살만 한 자금 사정도 소득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상황에 최적화된 내 집 마련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계속 나아왔다.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온전한 내 것이다. 선택한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며 얻은 배움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사를 많이 한 탓에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사를 자주 한 덕분에 제주살이도 해보고 다양한 집에도 살아보고 다양한 동네도 경험해 보고 귀한 인연들도 만났다. 어떤 열악한 집에 가도 우리의 스윗홈으로 만들어내는 숨겨진 능력도 발견했다.
물난리 났던 신혼집, 30년 된 12평의 작은 집, 제주 산간지역의 오두막집, 제주도 7평 원룸, 누수가 있었던 신림동 원룸, 천호동 오피스텔, 하자 투성이었던 신축 오피스텔, 얼마 전까지 살았던 월세집까지 여덟 곳의 집을 거쳐 이번이 아홉 번째 집이다.
'만약에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집을 사지 않고 빌라 전세에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면 어땠을까. 집을 사지 않았다면 이사도 안 갔을 것이고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그럼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지금보다 나았을까.'
만약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분명 내 인생의 방향도 모습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선택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건 오직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삶뿐이다. 나에게 없는 다른 삶을 떠올리는 건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오직 단 하나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집으로 이사한다는 기쁨도 잠시, 홈스윗홈에 입주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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