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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하는 사랑

당신의 사랑을 리셋하겠습니까?

by 스텔라윤


(지난 화에 이어서 씁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걸 내려놓고 조건 없는 사랑을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물론 결혼은 현실이다. 에세이에는 '밥 얻어먹으려고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라고 당돌하게 썼지만, 밥 없이 사랑만으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사랑 없이 밥 벌어먹을 힘이 생기지도 않더라. 결국 사랑의 힘이 밥도 먹고살게 해 준다.


무엇보다 남편은 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사람이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도 남편과 이야기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그와 함께 하면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이내 숨통이 트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기댈 곳 없이 몸에 힘을 꽉 주고 숨통을 조이며 살았던 나는 남편을 만나고 다소 흐느적흐느적, 빈틈을 허용하며 지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사랑은 로맨스도 아니요, 밥줄도 아니다. 나에게 사랑은 숨이자, 생명력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 박노해의 걷는 독서


rahul-pabolu-j2i4w4fE6mE-unsplash.jpg 온기를 주는 사랑 (unsplash.com)


나에게 숨 쉴 곳이 되어주는 그를 만나 내 안에 각인되어 있던 조건부 사랑을 리셋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새롭게 배웠다. 사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랑 자체의 특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왜곡될 뿐, 사랑은 원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나의 경우 조건 없는 사랑의 대상이 남편이었지만, 어떤 역할에 한정할 이유는 없다. 부모님, 배우자, 자녀, 친구 누구든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숨 쉴 곳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누구나 사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물과 햇빛을 주고 관심을 주면 발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씨앗을.


사랑을 글로 쓰기 시작했던 건 그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랑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것일 뿐, 내 안에 또 내 삶에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나 또한 사랑 없이 시들어가던 시절이 있었기에 사랑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랑 없이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처절한 사랑결핍의 경험은 오히려 사랑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상처를 외면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결핍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선택했다.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


2년 가까이 블로그에 글을 쓰며 늘 '사랑이 이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공저로 쓴 에세이의 제목도 '사랑이 이긴다.'이다. 사랑이 이긴다고 외칠 때마다 '사랑에 지고 이기는 게 어디 있나. 사랑에 이긴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삶의 마지막에 '사랑이 이기는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사랑 별 것도 없더라.'라고 나의 지난날을 한심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회의감을 가득 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면 남편에 대한 사랑이 미화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남편에게 조건부 필터를 씌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팬티만 입고 밥 먹는 남편을 볼 때나 별 것도 아닌 일로 고개를 떨구며 의기소침해할 때. "여보 허리 좀 펴요!" 백번을 말해도 삶의 무게가 버거운지 허리도 고개도 자꾸 굽어 휜다. 참 못나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남편이 못나 보일 때면 남편이 객관적으로 못난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내 마음에 미움이 끼여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을 리셋한다.


매일매일이 끝없는 리셋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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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동아줄인 줄 알았던 그와의 인연은 알고 보니 홍연이였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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