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퇴사 이틀 후,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명상센터로 향했다. 나는 종교도 없고 명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주변에 명상을 해본 사람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고, 과학적으로도 명상이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명상에 호의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2016년은 명상을 한다고 하면 '사이비'에 빠졌냐는 이야기를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어딜 간다고?"
"명상센터."
"아, 뭐 템플 스테이 같은 건가?"
"뭐...."
나에게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도 별점과 리뷰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가는 내가, 생전 처음 명상이란 걸 하러 가면서는 '명상이 뭔지, 뭘 배우는지, 어디에서 먹고 자는지....'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다니. 오직 출발날짜, 도착시간, 준비물, 종료날짜 정도만 알아보고 무작정 짐을 챙겨 명상센터로 향했다. 아는 것이 없어서 용감했고, 그 용감함이 내 삶을 뿌리까지 바꾸어 놓았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9년을 살면서 찌들어 버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비워내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을 선택한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저 우연을 가장한 필연, 본능적 이끌림이라고 둘러대는 수밖에.
한 가지 확실한 건, 퇴사 후 첫 번째 여정으로 명상을 선택한 것은 내 인생의 '천운'이었다. 명상은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명상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명상센터에서는 새벽 4시 반부터 밤 9시까지 눈을 감고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간에 잠깐씩 쉬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핸드폰도 책도 노트도 없이, 오직 침묵 속에 있었다. 묵언은 기본이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몸을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 없이 말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답답할 것 같지만,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오직 내 안에 머무르는 고독한 시간이 나에게 한계 없는 자유를 주었다.
어린 시절,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도 없고 집이 텅 비어있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잠시 장을 보러 나갔던 엄마는 곧 돌아왔지만, '혼자'라는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없었다. 언제나 가족, 친구, 선생님, 이웃, 직장상사와 동료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늘 분초 단위로 공부하고 일하고 소통하고 반응하고 대응해야 했다. 퇴근할 때 동료들과 숨을 내쉬며 하는 말은 늘 비슷했다. "와.... 오늘도 숨도 못 쉬고 일했네. 고생했어." 물론 숨은 쉬었겠지만, 숨도 멈춰가며 집중할 만큼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시키며 일했다.
숨도 쉬지 못할만큼 빠르게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빠져나왔다. 텅 빈 국도를 혼자 달리는 느낌. 왠지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고독 속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조용한 길 위를 달리며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여유로운 바람을 느꼈다.
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나'와 함께 있었다. '지금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구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지?' 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나에게 묻고 답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나 아닌 저 사람은 누구일까?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그들 안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곤 했다. 하지만 학교에 가고 사회에 발을 딛으면서 '성적, 인기, 외모, 수능, 대학, 취업, 부모의 기대' 등 외부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사느라 '나'의 존재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나를 외면하며 살았다. 나에게서 달아나 사회적 성공을 향해 속력을 높였다. 고속도로 1차선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멈칫거리다가는 내 뒤에 있는 차가 상향등을 깜빡거리고 나를 추월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엑셀에서 발을 띄지 못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나의 진실한 모습은 방해가 되었다. 신중한, 배려하는, 공감하는, 섬세한, 열려있는, 진솔한, 양심 있는, 주체적인 '진짜 나'는 숨겼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복종하는, 감정을 숨기는, 쿨한, 이성적인, 상처받지 않는, 경쟁하는, 이기는 걸 즐기는 '가짜 나'를 만들어내며 살았다. 나를 감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짜 나'를 들킬까 봐 두려웠다. 진짜 내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더 바쁘게 일하고, 술을 마시고, 거짓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밀쳐두었다.
명상홀에 앉아 눈을 감고 내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20년 만에 마주하는 나였다.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지?' 나와 맞닿아 있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앉아 ‘몸의 감각, 생각, 감정, 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꼈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자각했다. 자리에 앉아있지 않을 때는 가만히 누워 구름이 흘러가고 지나가는 걸 바라보았다. 때로는 쪼그려 앉아 땅 위에 개미가 지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걸을 때는 걷기만 했고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생각과 감각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흩어지는 구름처럼, 생각도, 감각도 끊임없이 떠오르고 이내 사라졌다.
숨을 쉬며, 몸의 감각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았다. 열흘 동안 내가 한 건 그뿐이었다. 원래 알고 있었지만 20년 넘게 잊고 살았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나에게로 돌아왔다.
퇴사하고 첫 번째 여정으로 명상센터에 갔던 건 우연이였을까? 열흘 동안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할 지혜를 만났다. 처음으로 삶이 나에게 우호적이라 느껴졌다. '네 뜻대로 살아보라'며 등을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네 뜻대로 살아라.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라. 삶은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하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느끼며,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뿐이다. 늘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 언제든 네 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완된 몸과 마음으로, 기쁨과 평안 속에서 쉴 수 있다....'
명상을 몰랐더라면 다사다난했던 지난 8년 동안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삶은 매분 매초 변화한다.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간다. 삶이 원래 이런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
8년 간 마주친 모든 역경과 고난은 나에게 명상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명상은 한 번 안다고 저절로 되지 않았다. 치열한 고행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다만 매 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편법도 쓸 수 없다. 오롯이 내 몸으로 겪으며 직접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든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능력이기에, 누구나 지금 바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나와 나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과거와 껍데기에 연연하지 않고 매순간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뿌옇게 얼룩져 있던 나의 필터를 뽀득뽀득 닦았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갔다. 적어도 석달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몸조차 나의 것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갓난 시절처럼, 몸과 마음 모두 결림없이 가뿐했다. 고요함을 품고 바라본 세상은 눈부셨다.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딛을 땐 ‘진짜 나’와 함께였다. 나도 세상도 겉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명상에 대해 글을 쓸 때마다 조심스럽다. 명상은 오직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말과 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명상을 빼놓고 나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나의 경험을 쓰면 되잖아.' 수차례 스스로를 다독이며 글을 썼다. 한 명에게라도 가닿기를 바라며.
나는 오직 하나만 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_소크라테스
• 편두통
나는 늘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다. 생각이 너무 많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생각이 떠오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 생각에 내가 반응하고, 또 그 반응에 반응하면서 생각에 휘둘리며 살았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고 뺑뺑이 도는 강아지 같았다.
생각의 과부하로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편두통이 한 번 시작되면 응급실에 실려갈 만큼 지독한 고통이 몰려왔다.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쑤시는 듯한 통증이었다. 통증이 시작되면 앉지도 눕지도 일어서 있지도 못했다. 처방 받은 병원 진통제도 소용없었다. 우연히 잘 맞는 약을 발견해서 일본에서까지 약을 공수해 먹으며 겨우 버텼다. 정밀 검사를 해본 후 '만성 편두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할 방법도 없고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편두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컨디션에 따라 가끔씩 가볍게 찾아오는 두통은 있지만, 하루 정도 쉬다 보면 낫는다. 편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주변에 과거의 나와 비슷한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이 모두의 편두통 해방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이야기는 따로 차근차근 풀어보려고 한다.
여러 방법 중 명상도 편두통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생각은 언제나 떠오르고 사라진다. 다만 내가 그 생각에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흘러가는 구름처럼 이내 흩어지고, 결국 사라진다. 생각의 존재를 바라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서 그저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나는 슬픔을 느끼지만, 내가 슬픔 그 자체는 아니다. 나는 슬픔을 느끼는 나일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생각을 하지만 내가 생각 그 자체는 아니다. 생각을 하는 나일뿐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구름같은 존재다. 슬픔도 생각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