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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Oct 21. 2023

넷째 아들에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나에게 달려오고 싶었다는 아들..

사랑하는 넷째 아들 규용아.


너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보니 내 마음이 저절로 뿌듯해지고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구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듯한 너의 '외유내강'의 성격과 내가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외할아버지)를 꼭 빼닮은 너를 나는 마음으로 아끼고 많이 좋아한다.


무더운 여름, 5살 어린 너를 외갓집에 맡기고 나는 오수의 우리 집에 왔었지. 그때 네가 외갓집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필례에게 "풀녀야~ 우리 오수는 언제 가냐~"하고 보채더니, 외갓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10km 먼 길을 달랑 대나무 작대기 말을 타고 엄마가 있는 오수를 향해 길을 나섰다더구나.


혼자서 무작정 오수 집을 향해 외갓집을 나서고 백제 고개를 넘고, 영천을 지나 지시랭이 앞쯤 지날 때에는 장작더미를 싣고 지나가는 소구루마를 얻어 타기도 했다더구나.


그렇게 네가 오수의 우리 집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내가 부엌에서 불을 때며 저녁밥을 짓고 있는 저녁나절이었다. 네가 집에 도착해서 10여 분 지났을 즈음,  오수 지서의 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더니 나에게 묻더구나.


"여기, 혹시 산서에서 온 어린애 없습니까?"


"여기 야가 산서에서 방금 왔구먼요"


순경이 "그러면 다행이구만요. 지금 산서에서 어린애가 없어져 우물을 살펴보아도 없고, 온 마을을 찾아봐도 안 보여서 늑대가 물어갔는가 찾아달라고 산서 지서에 신고를 했고, 혹시 집이 오수니 오수 지서에 연락해서 남신동 집에 가보라 해서 왔습니다"하고 이야기하더구나.


내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순경에게 권했지만, 그 물도 마시지 않고 빨리 지서에 가서 산서 지서에 전화 연락해야 한다고, 외할아버지가 산서 지서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구나.


5살 어린 네가 10km 먼 길을 대나무 작대기 말을 타고 터덜터덜 걸어왔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구나.




너도 위의 형들처럼 공부를 잘해서  전주에 있는 북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다녔지. 처음에는 너도 형들처럼 새벽 기차를 타고 전주로 통학을 했어. 집으로 돌아오는 통학기차를 타려면 언제나 마지막 수업 도중에 나서야 했기에 너는 자취방을 얻어서 자취를 시작하기도 했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너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의 야간대학교에 진학을 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해결을 지. 네가 처음으로 야간대학교에 진학을 한 이후에 너의 밑에 있는 여동생들도 너를 따라서 야간대학교에 다니게 되었지. 그 누구도 너희에게 그렇게 하라는 강요나 가르침이 없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을 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지.

네가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 고향에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구입한 밭이 있었지. 우리 집에서 그 밭을 가야 한다면 널찍한 냇가를 끼고도는, 리어카나 트럭도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있었고, 우리 집에서 도보로 가려면 논둑길이 태반인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는 길이 있었지. 도보로 걸어서 족히 30여분은 가야 했던 용정리 밭이었지. 


용정리 밭 바로 옆에는 기찻길이 있어서 리어카를 끌고 밭에 가면, 리어카는 기찻길 건너편에 세워 두고 밭에서 거둬들인 여러 가지 곡식들을 기찻길 건너편으로 날라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


너의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너는 직장에는 휴가를 내고 대학교 같은 과 학생들이 전남 여수로 졸업여행을 간다고 헸지.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당연히 용정리 밭을 지나야 했지. 그때 너는 일행들과 기차를 타고 고향을 지나게 될 때, 혹시 내가 밭에서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차 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용정리 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고 했지.

아니나 다를까 뜨거운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용정리 밭 한복판에서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밭고랑에 사이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부지런히 풀을 매고 있는 내가 너의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순간, 너는 힘차게 달리는 그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했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나에게 달려오고 싶었다는 너의 말이 얼마나 나의 가슴을 벅차게 헸는지 모른단다.

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기차는 여수를 향해서 쉬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을 테고, 한 개 하얀 점(.)으로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던 너는 "엄마!!!" 하고 소리 높여 부르고 싶었다는 너의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 왔었단다.




너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성당 봉사모임 레지오 야외 행사에서 족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친 네가 6개월 동안 고생을 하던 때였지. 그때 너는 허리 통증이 심해서 서 있거나 누워 있어야 했고, 신경치료에 물리치료, 추나요법 치료를 해도 통증이 계속되어 앉을 수가 없어서 버스나 지하철에 자리가 나도 서서 가야 했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서서 식사를 해야 하고 자동차 운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추석은 다가오는데 허리 통증으로 운전을 하지 못해서 내려 올 수 없겠다는 네 전화를 받고 나는 걱정이 태산이었구나.


추석 지나고 며칠 후, 허리에 좋다는 여러 가지 약재를 구해서 택배로 보내면서 너에게 보내는 손편지도 함께 넣어 보냈지. 너는 그 편지를 '훈민정음 해례본'같다는 표현을 하면서 지금까지 너의 장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내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어 읽는다고 했지.

 
그 후에도 내가 먹는 거, 허리 상황이 어떠한지 수시로 전화로 물었더니, 너는 나의 걱정을 덜어 주려고 일부러 버스를 타고 산서에 까지 내려왔고, 산서 장날 나와 함께 장터에 가서 내가 부탁해 둔 무 씨, 지네, 미영 씨, 삼 씨를 추가로 구입하기도 했지.

 
두어 달 후, 너는 수술 없이 통증이 가시고 허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너는 나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너의 허리를 치유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머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가족 카페에 글을 썼더구나.




허리 아픈 넷째 아들에게 보낸, '훈민정음해례본' 같은 엄마의 편지


 몇 자 적는다.


 약을 삶아서 얼려서 보내려고 했더니

 쉽게 갖고 갈 형편이 못되어서 택배로 부치니,


 닭을 한 마리 사서 푹 삶아서 건지고,

 물에다 지네, 미영 씨(목화씨), 삼 씨를 갈아 넣고 잘 다려서


 정성껏 하루 세 차례씩 먹고,


 알밤이나 녹두나물만 먹지 말고 조심하고,


 효과가 있으면 또 두어 번 해 먹으면 낫는다고 하니

 정성껏 먹기를 부탁한다.      


 무 씨, 지네가 허리 아픈데 좋단다.

                     



사랑하는 나의 넷째 아들 규용아.


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외갓집 텃밭에 맛 좋은 고구마를 심고 가꾸면서 형제들과 나누고, 따뜻한 형제간의 정을 이어 가려고 노력했던 너의 수고를 나는 잘 알고 있단다.


나와 아버지 산소 양쪽에 아담한 반송 소나무를 심고 가꾸는 정성도 알고 있지. 외갓집 마당과 텃밭 주변에 보기 좋은 소나무를 심고 애써 가꾸는 것도 알고 있단다. 언제나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도 나는 안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너의 연년생 두 아들도 결혼시키고 이제는 3명의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지. 지금도 나와 아버지를 위해서 따뜻한 관심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나이 70살인 된 네가 지금처럼 변함없이 가족들과 잘 어울려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너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넷째 아들 규용아.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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