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는 아이들을 재운 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계는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남편 이황이 단양으로 떠난 지 벌써 3개월.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소셜미디어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화면을 위아래로 스크롤하며 권씨는 남편의 게시물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전에는 주로 성리학 관련 명언이나 단양의 아름다운 경치 사진을 올리던 이황이 최근 들어서는 매화 사진을 연이어 올리고 있었다.
매화라... 11월인데 무슨 매화야?
계절에 맞지 않는 매화 사진이 의심스러웠다. 더구나 매화 화분이 놓인 배경도 관아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집 같았다.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남편의 영상통화 태도였다. 처음 한 달은 꽤 성실하게 화상통화에 응했던 이황이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이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항상 바쁘다며 짧게 끊었다.
이황: "오늘은 지역 문화사업 회의가 있어서... 나중에 다시 걸게."
권씨: "또? 요즘 회의가 왜 이렇게 많아? 아이들이 아빠랑 얘기하고 싶어하는데."
이황: "미안, 다음에 길게 하자. 끊을게."
매번 이런 식이었다. 통화 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남편은 항상 어딘가 바깥에서 서둘러 통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권씨는 남편의 행동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
다음 날 오후, 권씨는 오랜 친구인 윤씨와 카페에서 만났다. 로스쿨 동기였던 윤씨는 지금 이혼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권씨의 급한 연락에 시간을 냈다.
윤씨: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놀랐어. 무슨 일이야? 표정이 안 좋네."
권씨: "이황이가... 뭔가 이상해. 단양에 간 지 3개월인데, 통화할 때마다 어색하고 매번 바쁘다고만 해."
윤씨: "음... 행정 일이 많나 보네. 근데 결혼 20년 차에 그런 걱정을 하다니,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권씨는 자신의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이상한 행동을 말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역시나였다.
권씨: "요즘 계속 매화 사진만 올려. 그것도 11월인데.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윤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윤씨: "야, 이거 봤어? 단양 핫플레이스 태그 검색했는데, 이황 교수님 있더라."
윤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화면에는 인스타그램 앱이 열려 있었고, '단양강선대' 해시태그 검색 결과였다. 그중 하나의 게시물이 열려 있었다.
단양여행러브
권씨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화면에는 강가에서 찍은 이황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젊은 여성이 함께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긴 머리에 단아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황과 함께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권씨: "이게 누구야?"
권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윤씨는 댓글을 가리켰다.
윤씨: "댓글에 '두향언니 최고'라는 말이 있던데..."
권씨는 댓글란을 확인했다. 정말로 그곳에는 '두향언니 항상 예쁘고 지식도 많아요! 퇴계 교수님과 찰떡궁합이네요ㅎㅎ'라는 댓글이 있었다.
두향... 이름까지 있네. 갑자기 시인 이름처럼 듣네.
권씨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윤씨에게서 핸드폰을 돌려받은 뒤, 곧장 '단양 두향'을 검색했다. 몇 초 뒤, 그녀의 눈앞에 검색 결과가 나타났다.
'두향 - 단양군 문화관광해설사, 인스타그램 팔로워 8.2만명, "단양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문화 크리에이터"'
권씨는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두향의 가장 최근 게시물... 그것은 매화 화분 사진이었다.
바로 이황이 올린 것과 동일한 매화였다. 배경까지 같았다. 권씨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윤씨: "괜찮아? 너 표정이 안 좋아 보여."
권씨: "윤아... 나 단양에 가봐야겠어."
윤씨: "뭐? 지금?"
권씨: "그래, 지금. 너무 많은 우연이 겹치고 있어.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권씨는 결심했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내일 당장 단양으로 가기로 했다. 그녀는 변호사였다. 증거를 수집하고 진실을 찾아내는 게 그녀의 직업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이황 씨, 당신이 그토록 숭배하던 퇴계 이황도 이런 행동을 했을까? 매화라... 바람의 증거가 될 줄은 몰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