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날아 #너의삶을살아가
얼마 전 첫째가 독감으로 3일을 앓았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지나 5교시 수업일 무렵 전화가 왔다.
'어?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데..'
"여보세요?"
"엄마,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목도 아프고."
"정말? 바로 집으로 와."
"응."
집에 온 아이의 얼굴이 벌겋다.
바로 집 앞 소아과로 향했다.
점심시간 직후 진료시작되자마자 들어섰는데, 이미 동네 아이들이 가득이다.
근처 중학교 학생들, 초등학생들, 앉아있으니 유치원생들까지.
온 동네에 독감이 유행인가 보다.
"열 좀 재볼게요. (삑-) 38.3도요."
열이 오랜만에 꽤나 높았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프면 고열로 고생을 했었다. 40도를 찍어야 열이 내릴 정도였다.
그래서 어릴 때는 열이 가장 무서웠다.
좀 크고 나서는 아파도 고열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은 겁부터 난다.
독감검사를 했다.
잠시 몇 분 대기 후 들어갔더니 시뻘건 두줄이 선명하게 키트에 그려져 있다.
"독감 맞아요. 실비보험 있으세요?"
"네, 있어요."
"그럼 수액으로 주사 맞고 가세요. 약처방 해드릴 테니 3일 약 챙겨드시고요."
"네."
수액(패라미플루)을 맞기 위해 주사실 안에 들어간 아이는, 주사 맞기 싫다면서 유치원생 마냥 짜증을 부렸지만, 간호사선생님의 단호함 앞에 더 이상 징징거리지 못하고 주사를 맞았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하면서 내 눈에는 전혀 쉼이 아닌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따로 챙겨주고 약을 먹이고, 아이가 먹고 싶다 하는 과일을 주문했다.
과일을 또 따로 챙겨서 방에 놓아주고, 보리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물을 새로 끓였다.
"아주 지극정성이네. 너 엄마한테 잘해라."
아이 아빠는 들리지도 않을 잔소리를 아이에게 건넸다.
2,3일은 학교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아이의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다.
수액 때문인지 열이 바로 내렸고, 다음날 아침이 되니 컨디션이 모두 회복된 것 같았다.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었다.
"엄마, 오늘 점심에 초밥 먹을까?"
아이는 이틀을 집에서 쉬면서 신선놀이를 했다.
초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게임도 했다.
엄마를 백번쯤 찾으면서. ^^
결혼 전에는 아이를 넷 정도 낳아서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좋았고, 길을 지나가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어지간하면 나를 좋아라 했다.
순수하고 잘 웃어주고 따르는 아이들이 나도 좋았다.
결혼을 하고 나의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아이들에게 가졌던 호감과 다정함은 저 멀리 다른 세계로 던져버리게 되었다. 타인의 아이들에게 갖는 마음과 내 아이에게 품어지는 마음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 둘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아이를 좋아했으니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내가 교사였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훈육을 잘해왔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아이를 키울수록 점점 사라졌다.
아이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웠지만, 육아는 미치도록 힘들었다.
품 안에 있을 때는 몸이 으스러져라 힘들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멘탈을 부여잡기가 힘들다.
내 품 안에서, 나의 말을 들어주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다.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조금 더 길다고 하던데, 나는 딸이 없으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남자아이의 경우 저학년인 2학년까지가 부모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시기인 것 같다.
초등3학년부터는 서서히 "자기"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태어나서부터 건강한 자존감과 애착관계를 형성하도록 자녀를 키워낸 시간은 초등 3학년이 되면서부터 그 결과가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린다.
품 안의 자식일 때가 좋다는 어른들의 말은 정확했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정확하게 3학년 시기부터 나는 혼란에 빠졌으니까.
(물론 모든 아이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마다 모두 '다름'이 있다.)
돌아보면 아이의 '자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내 기준과 길러온 방식은 바뀌어야 했다.
여전히 사랑하고, 그래서 걱정하고, 매일 기도하지만 그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려면 방법을 바꾸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던 나는 아이와 반복적인 갈등의 패턴으로 빠져들었다.
관계의 기본값이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5학년쯤 되니 갈등은 더욱 빈번해졌다.
대화를 시작하면, 대화가 아니라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의 끝은 서로를 향한 원망과 자책감이었다.
나와 아이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이 아빠는 (대부분의 아빠가 그렇듯) 태도의 문제를 들고일어났다.
점점 관계는 틀어져만 갔다.
아이와 갈등이 빈번해진다면,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부모가 먼저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부모다. 먼저 멈추어서 돌아보아야 한다.
나도, 아이도 모두 변화의 시기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그저 '사춘기'려니 하고 관계의 갈등을 내버려 두면 아이와의 관계는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만약 대화의 끝이 대부분 감정싸움으로 마무리된다면, 힘겨루기 자리에서 내려와 일방적인 관계의 패턴을 멈추어야 한다.
부모가 전부였던 영유아기와 미취학 시절을 지나, 이제 서서히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지금은 어쩌면 곁에 함께 서 있어 줄 비빌언덕과 같은 부모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가 실컷 세상을 살아가다가 아플 때나 배고파질 때, 아쉬워질 때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 아빠였으면 좋겠다. '속이 다쳐왔을 때, 이 세상에서 1그램도 사라지지 않도록' 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두 발로 딛고 훨훨 날아 자기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