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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un 14. 2017

누군가의 사람이었음을

그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우연히 짐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잊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서랍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상자를 원치 않게 다시 꺼내야 하는 순간이 왔죠. 한참을 어떡할까, 지금 우리 각자의 삶을 보면 그런 추억은 없었다며 아니라고 주장하는 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그런 시절이 존재했었다고 내밀 수 있는 이제 남은 유일한 증거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까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괜히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할 일을 여전히 손에 집히는 증거로 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 아닌가 해서 큰마음 먹고 다 정리했습니다. 글자 한 자에 웃고 울었던 그 시절 나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보물을 그렇게 하나하나, 받지도 않고 그대로 버려 달라 말하는 영수증 조차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다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다 지웠습니다.


핸드폰 속의 대화, 클라우드에 저장돼있던 사진들, 컴퓨터에 저장돼있던 사진들, 이메일, 서로 연결되어있던 계정들, 그리고 이미 한 차례 정리하긴 했지만 이제는 모든 편지까지. 그래서 그런지 닳아 없어질 만큼의 간절함에 걸어 버릴지 모르는 그의 전화번호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 친구와 저의 모든 시간은 오로지, 또 온전히 제 기억 속에 있을 뿐이지요. 물론 이조차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마치 어떤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몇 년 책을 덮어두면 희미해지는 것처럼요. 고등학교 때는 참 열심히도 수학을 했었는데 이제는 미적분이 너무 새롭고 낯선 것만 같은, 그런.





그래도 하나는 남겨뒀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그 하나는 남겨두었습니다. 그것도 찢어서 버리려다가 문득, 이마저도 내가 버리면 사랑의 가치를 완전히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요. 그래서 혹여나 다음 사람이 또 있다면, 그때를 위해서라도 내가 너무 완전히 까먹지 않도록 딱 한 장, 이 한 장은 두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다니. 이제 기억이 나진 않지만 표정을 보니 그때 나는 참 행복했었구나 싶은 밤입니다.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 나도 누군가의 사람이었구나.


이제는 참 낯선 생각입니다. 나의 삶이 나만의 삶 같지 않아 불안해지는 하루하루인데 신기하지요. 나는 어떻게 누군가의 사람이면서도 내가 온전히 나만의 것일 때보다 더 행복한 듯 웃음을 지었을까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간 못 본 두 달 사이 새로운 소식이 없냐며 농담을 건넸지만, 2년으로도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참 더 오래 걸리겠지요. 나는 사람 인연이, 어쩌면 정말 살다가 한 번 두 번 온다 생각하기에,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다는 서서히 잊혀가는 기억을 이 한 장으로 기억하겠습니다.


그래서 훗날, 설령 또 한 명의 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람이었음을.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하루가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울고만 싶을 때, 혹은 그 사람의 웃는 모습만 봐도 덩달아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지던. 공기가, 바람이 선선한 저녁 그저 손잡고 동네 한 바퀴 걸은 것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이 행복하고 편안했었던.

나도 누군가의 사람이었음을. 그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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