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집을 사고 싶어
어라? 물론 나도 공사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주인의 반응이 그래 마땅한 태도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곰팡이의 흔적 아래 숨 쉬고 밥 먹는 일을 4주나 더 해도 괜찮을까? 실은 의아했다. 병원 외래 진료를 받는 것과 세입자의 도배를 도와주는 것은 정말 동시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인 걸까 싶어서.
찰나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수긍하기로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정이 있어서 기다리면 해준다고 하는데 괜히 억지 부려 내 편의만 주장할 이유도 없긴 해서다. 글세,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당장 도배를 해달라고 힘주어 말했을까? 아니면 한 달이나 참아야 하니 관리비 한 달치를 깎아달라 말했을까?
천장에서 한 달 동안 누렇게 앉아 있는 곰팡이 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아주 작은 원룸에 사는 청년 1인 가구 세입자 입장이라는 게, 얼마간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일은 순순히 풀렸다. 한 달이 지나 도배는 예정대로 치러졌고, 누수 문제도 무사히 해결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누수 문제로 마음 앓이를 할 일은 없었지만,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한 가지 또렷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에 그것을 해결하는 권리는, 공간을 누리고 사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을 재산으로 소유한 자에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해서, 자연스레 지지할 수 있는 문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치와 논리 때문에, 자본이 부족한 어떤 사람들은 삶의 보금자리에 대한 기본적인 유지와 보수가 불편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옳고 마땅한 일일까?
실제로 집을 빌려서 산다는 것은, 내가 겪어보니 일단 불편한 일이기도 한 데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서러운 일일 때가 참 많았다. 특히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렇다. 보금자리에 문제가 생긴 것도 난감한데, 그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임무까지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그 문제가 과연 제대로 처리가 될까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하고, 해결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기도 쉬웠다.
사람 성향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 치사하다. 치사해. 내가 집주인이 아니라서 그렇단 말이지?
물론 내가 겪은 문제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집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여러 문제는 곰팡이 말고도 흔하니 말이다. 난방 기기 고장, 벌레 문제, 전세 보증금 사기 등, 훨씬 더 불편하고 난감한 문제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주거 공간의 문제들은, 셋방 살이가 아니라 자가 살이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곰팡이 같은 참 흔하고 사소한 문제에서 조차도, 임차인은 집주인에 비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집에 '곰팡이'가 생겼다면? 이때 나는 누구에게 곰팡이가 생겼다고 '보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곰팡이를 지우기 위해 소독 처리를 하고 도배를 해도 되겠느냐고 타인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스무 살을 향해 달려가는 오래된 빌라에는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대개는 스스로 해결했다. 처음 그 집에서 맞는 겨울, 샤시의 아귀가 안 맞아 닫히지 않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임시방편으로 뽁뽁이를 두껍게 붙여 긴 겨울을 났다. 화장실 변기 부품이 문제를 일으켜 작동을 멈추었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지체 없이 사비로 업체를 불러 부품을 교체했다.
무슨 일이든 집주인에게 알려 해결하는 쪽보다, 내가 알아서 손해를 보는 쪽이 훨씬 편했다. 그 정도 손해는 내게 저렴한 축에 속했다. 언제 해결되려나 싶어 답답스러워 지거나, 때로 집주인의 귀찮아하는 내색을 눈치 보며 알아서 소심 해지는 기분이야말로 내게는 너무 턱없이 비싼 손실이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 임차인으로 집을 옮겨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금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왠지 '해명하는 자세'가 되고 '부탁하는 기분'이 들고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게 싫어서 조용히 자기 돈을 쓰고, 사소한 문제는 애써 무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크고 윤택한 주택을 고가의 보증금으로 임대하는 부유한 세입자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매물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학가 원룸의 젊은이들이 겪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또 주거 매물이 부족한 도심 직장가의 소형 원룸, 투룸을 임대해서 살아가는 일부 사람들에게 더 해당되는 일이기 쉽다.
곰팡이 문제가 해결이 되고, 여러 날이 흘렀다. 2020년 가을. 원룸에 산 지도 1년 6개월이나 지나가던 때였다. 당시 서른 두 살의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 이 나이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과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은, 아늑한 조명을 켜놓고서 좋아하는 진토닉 한 잔에 빗소리를 음미한다고 해서 충분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침대에 누워, 이제는 뽀얗게 변한 천장을 바라보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것은 그래서 였다.
"안 되겠어. 나도 집을 가져야겠어.”
그때부터였다. 틈틈이 주택을 살 수 있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직장에서 가까운 전셋집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던 2년 전과는, 그 결연함부터가 달랐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단순히 잠을 자고 책을 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내 공간을 내 마음에 맞게 운영하는 주도권이었다.
- 그래서 집은 얼마야?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제 보니 그 보금자리를 운영하는 주도권이라는 게,
정말 정말 값이 많이 나간다는 걸.
- 다음 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