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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덴 블루 Aug 06. 2023

찰나의 순간에 거침없는 행동

셰익스피어의 <햄릿> 배경지로 유명한 크론보르성(Cronborg Castle)이 있는 헬싱외르로 출발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헬싱외르까지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렸다. 기차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니 탁 트인 바닷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저 멀리 크론보르성이 보였다. 우측 편에는 외레순 해협을 통해 스웨덴으로 매시간 운항하는 페리가 보였다. 페리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관광객이 크론보르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경치가 좋은 바닷가와 맞은편에 앙증맞게 보이는 예쁜 집들은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림이었다. 그림 같은 장면들을 눈에 담으며 걸으니 어느새 크론보르성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서 코펜하겐 카드로 계산하고 크론보르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멋진 크론보르성과 바닷가 풍경을 다 둘러본 후 크론보르성을 나왔다. 구글맵을 보고 다음 여행지인 매 사냥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크론보르성에서 출발지인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여유 있게 걸으며 주변에서 열리는 행사도 잠시 보기도 했다.


조금씩 걷다 보니 구글맵의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근처를 두 번을 맴돌았는데 버스 정류장은 없었다. 혹시나 출발지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구글맵에 나온 버스 번호 930R이 없었다. 지나가는 덴마크 시민에게 길을 물었다. 그 사람도 버스 정류장을 잘 모르는 듯했다. 알려주는 곳에 가보았지만 버스 정류장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시간이 10여 분 정도 남았다. 오금이 저렸다. 다음 일정이 여유 있다면 다음 버스를 타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매 사냥터는 그날 오후 3시에만 매사냥 행사를 했다. 그래서 꼭 그 시간 버스를 타야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급히 찾다가 지나가는 덴마크 시민에게 한 번 더 길을 물었다. 그런데 그 시민은 버스 정류장 대신 근처 기차역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930R이 버스가 아니고 기차라고?“

하면서 구글맵의 도착지를 유심히 보니 Fredensborg St. 이었다. 930R이 기차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여행 전에 보았던 R이 Regional Train의 약자라는 것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기차역 주변을 계속 돌며 버스 정류장만 찾고 있었다. 재빨리 뛰어 기차역에 도착 후 두리번거리며 일단 기차에 올라탔다. 출발 시간이 8분 정도 남았다. 올라탄 기차가 목적지로 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기차를 타고 바로 보이는 덴마크 남자에게 구글맵을 보여주며 ‘이 기차가 목적지로 가는 기차가 맞는지’ 물었다. 그 남자는 그의 스마트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화를 듣고 있던 남자 맞은편의 덴마크 여자는 스마트폰을 보며 ‘이 기차가 목적지로 가는 기차가 맞다’라고 했다. 남자도 스마트폰을 찾아보더니 맞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덴마크 남자와 여자가 있던 곳에는 자리가 없어서 조금 더 앞으로 갔다. 기차 안의 자동문 2개를 통과해서 자리에 앉았다.


조금 후 황급히 한 남자가 달려왔다. 조금 전 기차에서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던 덴마크 남자였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예요.”

라고 말했다. 그는 건너편 방향의 노란색 기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노란색 기차를 타세요. 이 기차는 곧 떠나요. 빨리 내리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다급하게 말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기차 출발 시간이 3분 정도 남았다. 반대 방향으로 연결하는 육교를 있는 힘껏 뛰었다. 도착하니 다행히 기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기차 앞에 다가가니 기차 앞부분에 기관사가 보였다. 기관사에게 숨을 헐떡이며 ‘이 기차가 목적지 기차역으로 가는지’ 물었다. 기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타라고 했다. 다급히 기차에 올라탔다.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만약 그 덴마크 남자가 다시 한번 더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야 한다’라는 말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오후의 여행 일정이 완전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자리까지 와서 말해준 친절한 덴마크 남자가 진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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