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가 안정을 찾은 다음, 퇴근 후 무료한 저녁에는 주로, 아니 거의, 침대에서 누워 보냈고, 대부분 '유튜브 동물 채널'을 서너시간 연달아 보며 시간을 떼웠다.
말썽꾸러기 강아지부터 절절한 마음, 보는 내 애가 다 끓는 노견까지 다양한 주인공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오래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내가 무슨 대단한 동물 애호가도 아닌데 왜 굳이' 동물 채널'을 이렇게 봐댔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각없이 보다 잠들기 좋을 정도로 흐뭇하게, 대단한 감정의 파도를 타지 않는 수준에서, 말랑말랑한 웃음을 남겨주는 정도의 '만족'때문 같다. 그러니까, 지칠 때까지 보고나면, 웃을 일 없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잠들도록 해주었으니까.
그 어느 무렵부터 이상한(?) 펫샵 광고 메세지도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솜뭉치 인형같은 아기들(?)의 사진을 보며, 이것이 실존하는 생명체인지 궁금했다.
어찌 되었든, 그래도 나는 내 일상에 '강아지'를 들일 생각은 없었다. 일종의 묘한 오기 같은 것인데, 한 마디로 '혼자사는 여자 인생'에 방점을 찍기 무서워서.
혼자 자다 혼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개에게 인사하는 인생.
집에 돌아오면 개 산책 시키고, 개 씻기고 개 재우고 다시 자는 인생.
나가면 개 이름을 자식처럼 부르며, 하루종일 개 생각, 대화의 지분의 팔할이 개가 되어버리는 인생.
"넌, 누군가한테 사랑을 쏟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데, 손바닥만한 강아지를 실물로 보는 순간 노예가 될거야. 일단 동물 채널을 그렇게 오래, 여러가지로 매일 꾸준히 본다는 거 자체가 대박 위험하다. 얼른 구독 취소해."
나는 며칠, 아니 몇 주를, 스팸성 광고 메세지의 강아지 사진들을 보며 고민했다.
마치 절대반지를 보고도 마음으로 이겨내던 케이트 블란쳇이라도 되고 싶었던가. 선거가 있던 그 날. 나는 조깅하는 차림으로 펫샵으로 향했다. 정말 조깅만 할 생각이었다.
3.
형광등 불빛아래 아크릴 박스마다 생김이 다른 강아지들이 갇혀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인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고, 마치 고층 동물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높낮이를 달리하여 갇힌 강아지들을 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일단 찬찬히 볼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크릴 문을 두드리는 고객(?)들, 그 고객들더러 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달라붙는 직원들. 그리고 문을 향해 앙칼지게 짖는 강아지들. 벽 면을 가득 채웠던 아기 강아지들마다 가격과 생년월일 등등이 붙어 있는 낯선 광경이 이어졌는데, 굽이치는 벽 면의 맨 끝, 맨 아래칸. 생년월일도 가격도 없는 손바닥 만한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강아지들처럼 짖지도 꼬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정말이지 작은 인형같았다.
직원이 내 옆에 붙었다.
"꺼내봐 드릴까요?"
"제가 만져봐도 되요?"
"그럼요."
직원은 능숙하게 목과 엉덩이를 잡아 강아지를 꺼냈다. 포메라니안이라는데, 곰돌이나 너구리 같았다. 그런데 너무 반응이 없었다.
"아픈가요? 가만히만 있네요."
"어려서 그래요. 이빨 보세요. 실같죠?"
잇몸을 들어 보이며 귀찮게 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직원이 내게 안아보라고 건네줬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강아지의 온몸은 따뜻했다.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눈물이 핑돌것 같았다.
"그런데, 얘는 몇 개월인지 이런 표시가 안 나와있네요?"
"아, 포메 2개월이고, 200만원이에요."
"네?"
"이거 비싼거 아니에요. 얘가 한 10년 살거든요. 1년에 20만원 밖에 안 드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던 직원은 명품샵 직원이 클로젯을 열듯, 다시 아크릴 문을 열어 강아지를 넣으며 말했다.
강아지는 다시 멍하니 앉을 것 같더니, 천천히 나를 쳐다봤다. 분명 뒤돌아 나오려고 했는데. 내 인생에는 강아지 같은 다른 생명체는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저 1년에 얼마 밖에 안 든다고 말하는 저 사람들하고 계속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못 견딜 것 같았다. 오지랖이 샘솟더니 나는 일단 그 작고 가벼운데 따뜻했던 꼬물이를 아크릴 판에서 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깅할 차림으로 멀리까지 걸어왔던 나는 택시를 불러 내 첫 개와 함께 아무 대책 없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3.
2차 접종을 하겠다며 동네 병원에 들렀는데, 의사가 갸우뚱거렸다.
"얘는 두 달이 안되었어요. 1차 접종을 할 수가 없는 애인데."
"2개월이라고 했고, 1차 접종했다고 접종표도 줬는데요."
"이거 병원에서 해준게 아니잖아요. 그냥 수기로 쓴 거예요."
"그럼, 안 맞은 거에요?"
"못 맞은 거겠죠. 얘는 일단 400그램이 안 되는데, 한 달정도 된 것 같아요."
"한달요?"
"2개월부터 팔 수 있으니까 속인거예요. 그게 예뻐서 잘 팔리구요."
"아..."
"작은게 잘 팔리니까 아사 직전으로 만들어 놨을 거거든요. 밥 많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이 만큼 주라고 하던데요."
"그거는 관리하기 쉬우라고 하는 얘기고요. 애기는 많이 먹고 따라 잡아야해요."
폴폴폴 오피스텔을 살랑살랑 걸어 다니던 작은 강아지에게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동물 채널을 봤으면서, 몇 개월이 얼마만해야 되는지도 몰랐던 것인가. 무슨 돈키호테 병이 걸려서 '아크릴 판'에서 구해준다는 객기를 부렸던가. 얘는 엄마랑 언제 헤어졌나. 얘는 도대체 얼마나 배가 고팠나. 나는 정말 그 병원 문을 나서며,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름을 지었다.
복순이.
Lucky Girl.
나는 스칼렛 오하라가 타라의 흙을 손에 움켜쥐며 맹세하는것 마냥, 대단히 비장하게 주먹을 움켜쥐며 다짐했다.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될 수 있는 인생, 아니, 견생을 만들어 줄게. 복 많은 강아지, 행운의 소녀가 되렴. 나의 첫 개, 복순이.
4.
"복순이가 혼자 있는데, 안 될거 같다."
"푸하하하하. 너 절대 개를 안 산다던 그 마음 어디 팔아먹었냐."
"산다는 말도 미안해. 뭔가 사고 판다는 산업에 일조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아."
"역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서워."
친구는 낄낄거렸고, 나는 저녁 약속을 마다하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복순이는 아주 담대하고 적극적인 아가씨인데, 용감함이 넘쳐서 사료를 한 입에 삼켜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 갑자기 컥컥 되며 힘들어했다. 나는 눈이 뒤집혔다. 밤 9시에도 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복순이를 안고 엉엉 우는 꼴을 뒤돌아보신 택시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아파요?"
"엉엉, 얘가 뭘 먹더니 커컥 하면서 숨을 못 쉬고.. 엉엉"
"지금도?"
"엉엉, 네?"
"등을 살살 쳐봐요."
"엉엉."
"개 처음 키워요?"
"네, 엉엉."
울며 복순이를 토닥이며 생쇼를 하다 병원에 내릴 때쯤,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개는 애기랑 똑같아. 아가씨 이제 애기 하나 키운다 생각하고 용감해져야되. 엄마들이 놀래면 애가 더 놀라잖아."
"네?"
"쟤 지금 괜찮아 진 거 같은데, 그래도 병원 가서 다시 확인해보슈."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복순이는 뻔뻔하게도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웃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의사는 마치 택시아저씨에게 전달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했다.
"애기가 급하게 먹다가 사래 들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좀 일으켜서 등을 쳐주면 또 나아져요. 얘는 지금 제가 본 개 중에 제일 건강해요. 놀라지 마세요."
5.
최근까지 재택근무가 깊어진 덕분에 나는 거의 24시간을 이 꼬맹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하기 싫었던, '개를 자식처럼' 돌보는 육아, 육개 인생이 내 인생 한 복판으로 들어왔다.
먹이고, 똥 치우고, 산책시키고, 씻기고, 놀아주다 먹이고, 똥 치우는 사이클을 기반으로 틈 날때 내 일을 겨우 했다. 일은 겨우 해냈지만, 나만의 시간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나마 잠깐씩 하던 운동도 가기 싫어졌고, 그나마 좋아하던 영화도 보기 싫어졌다. 나는 나를 보며 반짝 반짝 눈을 빛내는, 이 작고 따뜻한 털뭉치에게 폭 빠져 버렸다.
엄격한 엄마(?)가 되겠다면서 혼내놓고, 돌아서면 다시 껴안고 뒹구는 바람에 내 옷은 온통 강아지털로 복실복실해졌다. 스타일러에 넣어도 털리지 않는 짧지만 통통한 포메라니안 털들은 베개에도, 입 안에도 그득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감으면 복순이가 보고 싶고, 눈 뜨면 복순이랑 산책을 나간다. 한강 공원을 누비는 복순이는 돌아보며 웃는다. 개에게 표정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동물 채널에서 보고 배웠지만, 실제 '실물을 보니' 비할 바가 못된다. 그야말로 이것은 살아있는 감동, 이래서 개 키우는 사람은 개가 자식인가보지.
한 번의 키스는 세상을 균열시킨다고 했다.
복순이라는 작은 생명체가 내 인생에 들어온 순간, 바짝 마른 드라이플라워같던 내 인생에 대단히 즐거운 균열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