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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싫다

by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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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명쯤 있지 않나 싶다.


그냥 싫은 사람, 이유 없이 싫은 사람,

함께 있으면 숨 막힐 정도로 싫은 사람.


나에게는 그녀가 그랬다.

나를 담당하는 고객사의 그녀.


업무 미팅을 할 때마다,

업무 결과의 컨펌을 받을 때마다,

작은 의견을 주고받을 때조차

그녀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는

내 마음을 심하게 휘저어 놓는다.



분노, 공포, 의지 저하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여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그 완성품을 꺼내 들었다.


팀장님에게 퇴사 의지를 밝힌 것이다.


팀장님은 그녀가

우리 팀의 다른 사원들과도

잦은 마찰을 일으키는 상습범이라며,

고객사에 컴플레인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내게 마지막으로

그녀의 부조리함을 낱낱이

문서로 남겨줄 것을 권했다.



팀장님의 요청이 있던 날,

밤새 보고서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내가 적은 글이 A4 용지 여러 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싫어했듯,

그녀도 나를 정말 싫어했구나.’




어느 한 사람이

싫고 밉고 두려워지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무지(無知)’에서

찾을 수 있다.


모르니까 싫은 것이다.


그 사람에 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그가 내게 왜 이런 식의 언행을 하는지,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그의 업무 지시 태도나 의견 조율 방식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결국 타인에 대한 무지는

그를 이해할 수도, 존중할 수도,

배려할 수도 없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마치 어린 시절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내 안에서 차츰 괴기스러운 존재로

한없이 왜곡되어 가는 과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어떨까.


내가 그 사람에 관한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알아 가기 위한 노력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싫고 밉고 두려우니

피하기만 했을 뿐,

그녀와 나의 관계를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방법은

모색해 보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팀장님에게

기본적인 퇴사 서류 외에는

아무런 피드백을 드리지 못했다.


나도 그녀를 알아 가고자 노력하지 않았고,

그녀도 나를 알아 가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몰랐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을

싫어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엇갈림,


말 그대로

우리는 무지했기에

서로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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