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모두가 사라진
대공원 길가에 꽉 다문 꽃봉오리가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말해 주어요.
폐장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메아리가 되어 내 등을 떠밀고
이미 늦은 발걸음을 재촉하네요.
한 발짝 두 발짝,
너에게 가는 길.
벚꽃이라도 활짝 피었다면
더욱 근사했을 텐데…
하나둘, 무채색으로 바랜
하늘 저편에서 불어오는 꽃샘바람이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말해 주어요.
짝을 지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가
저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망설이는 마음을 부드럽게 안아 주네요.
한 발짝 두 발짝,
너에게 가는 길.
벚꽃이라도 활짝 피었다면
더욱 근사했을 텐데…
하나둘, 적막이 둘러싼
동물원 안에 텅 비어 있는 사육장이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말해 주어요.
넘실거리는 호수의 물결이
메마른 주변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낯설고 서투른 우리 두 사람을
만남의 장으로 데려가 주네요.
한 발짝 두 발짝,
너에게 가는 길.
벚꽃이라도 활짝 피었다면
더욱 근사했을 텐데…
하나둘, 봄꽃이 피고 질
저 언덕길 너머 작은 소녀의 실루엣이
이미 봄이 다가왔음을 말해 주어요.
은 십자가 귀걸이, 회색 미니 원피스,
하얀색 반스타킹, 에나멜 메리 제인 슈즈,
너무 매혹적인 그녀의 모습은
내 시선을 잠시 멎게 만들어 주네요.
한 발짝 두 발짝,
나에게 오는 길.
그녀가 딛는 걸음마다
분홍빛 벚꽃이 요동쳐요.
이것은 지난날의 추억도
먼 훗날의 상상도 아니에요.
우리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오늘의 꿈결 같은 이야기예요.
한 발짝 두 발짝,
너에게 가는 길.
지금 이곳에 마법을 걸어 주세요.
시간을 멈추는 마법 말이에요.
한 발짝 두 발짝,
나에게 오는 길.
지금 이곳에 마법을 걸어 주세요.
시간을 멈추는 마법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