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상인 Apr 25. 2024

2023년 12월의 기록



언더독요가 12월 출석부





2023. 12. 03. (일) 빈야사




1.

북적거리는 일요일 아침.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늦잠 자고 싶은 주말 아침에 꽤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위해 모여 있다. 선생님 수업의 매력에 답이 있겠지. 이 수업에 모여든 사람들은 다들 힘들어 헉헉거리고 있지만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듯하다. 게으름이 허용되는 주말에 부지런히 수련하러 나온다는 건 웬만한 즐거움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지.



2.

비라아사나로 앉아 앞으로 몸을 숙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망가진 경첩이 된 것처럼 잘 숙여지지 않았다. 손목과 팔꿈치를 꽈배기로 꼬아서 손바닥을 앞으로 비틀어 빼고 쫙 펴야 하는데 잘 펴지지 않는다. 이런 순간마다 평소 때도 손목을 자주 풀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실천이 잘 안된다. 


이어서 빈야사. 하체의 힘이 많이 쓰이는 다양한 움직임들. 근육이 각성되는 것을 넘어서서 힘이 달려 내 몸이 이제 더 이상은 못 버티지 않을까 느끼는 순간 달콤하게 시퀀스가 잠시 중단되며 휴식을 취한다.



3.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연습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비파리타 사라바아사나로 향하기 전 짝의 도움을 받아 에너지의 방향을 연습해 보는 것으로 보였다. 블럭 두 개를 어깨 아래에 대고, 팔은 허벅지 앞에서 모으고 매트에 손바닥을 펴서 바닥에 밀착 시킨 후 한쪽 다리를 힘써서 들면 짝꿍이 두 다리를 잡아 세워주었다.


짝이 다리를 잡아주지 않는다면 두다리를 내 힘으로 세우기는 어려웠다. 친근한 Y와 짝이 되어 열심히 응원을 해주면서 두 번씩 들어주고 아기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다른 사람들 연습하는 동안 시간이 남아 혼자서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망도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꾹 참았다. 타이른다. 오기 부리지 말자꾸나.



4.

마무리 시르사아사나에서 선생님이 옵션을 추가했다. 시르사파다로 연결. 흉부 곡선 만들고 발을 대각선 뒤로 뻗으며 야금야금 후굴을 내려가는데 이마 쪽으로 지면이 닿고 본격 후굴이 시작되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힘을 동원하여 컨트롤을 해야 하는데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이런 조마조마한 순간을 은근히 좋아한다. 모든 감각과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그때 오는 묘한 기분이 재미있다. 


착지 시점을 찾지 못하고 배회 중인 몸뚱이 곁으로 선생님이 다가왔다. 골반을 잡아주셔서 발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되었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후 다리와 복부의 힘으로 컴업. 아까 빈야사에서 다리를 잘근잘근 '조져놔서' 하체가 힘을 발휘한 것일까. 다시 드롭백으로 내려가 보라고 해서 천천히 내려갔는데 이것도 사뿐히 착지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사뿐히 되었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5.

오늘처럼 이렇게 선생님들은 이따금씩 나에겐 도전적으로 느껴지는 후굴의 연결을 아무렇지 않게 안내할 때가 있다. 선생님이 해보라고 해서 해보긴 하는데, 주저없이 그냥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한 번 바라본다.


요가를 하면서 종종 느낀다. 시도를 해봤는데 안되었다고 해서 그걸 실패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시도를 해본 그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시도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라는 나의 선택만 존재할 뿐이다.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이 나의 요가가 된다.






2023. 12. 06. (수) 언더드릴



1.

주차한 위치가 옆 건물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다가 결국 다시 내려가 위치를 조정하고 올라왔다. 이동시간을 아껴보려고 차를 가지고 왔는데 결국 그러면서 시간을 다 허비하고 부산스럽게 오늘의 수업을 시작했다.


호흡명상 후 간단하게 몸을 풀고 바로 블럭 두개로 연습에 들어갔다. 살람바 시르사아사나Ⅱ. 접은 다리와 편 다리 여러 모양으로 세 네 차례 반복했다. 잠시 발을 매트 양옆으로 벌려 착지시킨 후 허리 펴고 호흡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편한지 모르겠다. 프라사리타 파도따나아사나A에서 손만 블럭을 짚은 것과 같은 자세인데 시르사Ⅱ 후에 그 자세로 휴식하니 말 그대로 달달한  '휴식'이 된다.


이어서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우바야 파당구쉬타아사나-뒤로 사뿐히 굴러 누었다가 다시 우파비스타 코나로 돌아오는 것을 몇 회 반복했다. 후루룩 굴러다니지 않도록 코어에 힘써서 천천히 움직임을 컨트롤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리 들었으니 나바아사나 잠시 들렀다가 무릎 접어 몸에 붙이고 롤라아사나 시도 후 다시 나바아사나. 롤라만 안 해도 수월하지만 롤라를 포기할 순 없지. 다섯 번의 나바아사나가 있다면 그중 세 번은 롤라가 간신히 바닥에서 뜨지만 후반 두 번 정도는 힘이 달려 종이 한장만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버겁다. 그러나 이것도 제법 는 거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긴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은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구령을 진행하시지만 내용은 고요하지 않은 언더드릴. 땀이 줄줄줄.



2.

다운독에서 한 걸음 뒤로 발을 보낸 뒤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내면서 어깨를 바닥으로 향하여 어깨와 옆구리를 늘렸다. 늘어나는 감각은 유쾌하지만 어깨에 힘을 주어야 해서 상완이 힘들었고 어깨 힘이 많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손바닥 아래에 블럭을 두었다가 나중에는 블럭 없이 해보기도 했다. 어깨가 힘들어 관절에 기대게 되면 힘듦은 가속화되었다. 게다가 손바닥에 땀이 맺히면서 매트에서 손이 밀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감하기도 했다. 평소에 잘 안하던 낯선 움직임이니 잘 쓰지 않는 부분들을 쓰는 중이었다. 일단 다음부터는 타올을 챙겨보기로.



3.

오늘의 빈야사는 전반적으로 끊김 없이 무난하게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갔다. 월경 기간 뒤에는 언제나 딱 일주일 동안 호르몬의 혜택 덕분에 상대적으로 좋은 컨디션인 상태로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존재감을 실감하는 기간이랄까. 언젠가부터 호르몬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언젠가 갱년기였던 엄마에게 좀 더 잘해줄걸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호르몬의 변화가 극심한 폐경 시기에 엄마는 얼마나 몸이 힘들었을까 싶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치고 힘 없었을 그때 좀 더 다정했어야 했는데.



4.

마지막 시르사 후 머리 띄우기도 바들바들 열카운트를 채우고 난 후 마지막 빈야사를 하려는데 양갈래 머리 중 오른쪽 묶음 고무줄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렇지만 그냥 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 상태로 우르드바 하스타부터 다운독까지 연결하면서 머리카락의 걸리적거림을 참아내며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웃긴 내 모습을 모른척하며 지나갔다. 한 쪽은 묶인 채로, 한 쪽은 풀린 채로 엉망인 비주얼로 옴 챈팅까지 하고 사바아사나.


대역죄인 몰골. 수련시간마다 함께한 고무줄 재사용의 흔적은 그렇게 코믹하게 마무리되었다. 







2023. 12. 08. (금) 하타



1.

호흡명상 시간에 수카아사나로 앉아 쿰바카호흡을 했다. 손가락으로 코를 막는 교호호흡은 하지 앉고 바른자세로 앉아 숨에만 집중을 해보았다. 쇄골 아래까지 숨을 가득 채우고 내쉬지 않고 대기할 땐 숨을 참는다라고 하기보다는 흉곽과 복부의 공간을 만들어서 숨이 더 가득 차오르는 느낌으로 머무르다 숨을 천천히 내보냈다. 오늘의 느낌은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딱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라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쇄골아래가 어쩔땐 조금 뻐근하지만 특히 늑간이 시원하게 늘어나는 느낌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비염만 아니면 숨을 참아 버거운 느낌이 아니라서 그런지 심박수 변화도 크지 않았다.



2.

기분 좋은 호흡을 마무리하고 자누시르사아사나, 파리브리타 자누시르사아사나, 트위스트, 트리앙무카 파스치모마따아사나, 마르치아사나, 와일드씽, 부장가 등을 거쳐갔다.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누워서 세투반다아사나, 살람바시르반가아사나도 하고 나가기 스트레칭도 하고 사바아사나. 템포가 느린데도 뭔가를 많이 지나왔다. 꽤 촘촘했던 오늘의 수업.



3.

오늘 옷 안에 탑을 따로 입지 않고 긴팔만 입고 와서 더워도 벗을 수가 없었다. 수련 내내 옷이 펄럭거리고 다운독이나 아도무카 자세들에서 옷이 흘러내려 얼굴을 덮어 숨 쉬기도 힘들고 시야가 가려지니 무척 불편했다. 옷도 입던 데로 입자. 안하던 짓을 하니까 불편함이 굉장하다. 자유롭고 싶거든 자유로울 준비가 되어야 한다.







2023. 12. 12. (화) 아쉬탕가



1.

복닥복닥한 인원과 분위기. 오늘은 곽꽉 눌러 담아 수련해 보자는 선생님의 선포와 함께 지체 없이 수리야로 들어갔다. 스탠딩 웃티타하스타파당구쉬타 아사나 왼쪽에서 휘청휘청 무용을 하다가 철푸덕으로 지나갔다. 오른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골반을 열어야 하는데 오늘은 유독 오른쪽 발바닥부터 그라운딩이 허술한 것이 느껴졌다. 어제에 이어서 한 다리로 밸런스 잡는 구간에서 균형 잡느라 카운트 다 흘려보낸다. 싯팅에서도 요모조모 골고루 해본 뒤 마무리하며 피니싱으로 들어갔다.



2.

60분 수업에 쉴 틈 없이 꽤 많은 시퀀스를 했다.

아쉬탕가는 원래 수련 자체가 쉴 틈이 없고 빈야사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늘 같은 흐름이 버거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어떤 의도이든지 사람들의 성장과 충분한 수련 몰입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수련을 이끄는 분을 신뢰하고 애정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수업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힘쓰는 시간이 그 60분 안에 담겨 있다. 핸즈온은 지적이 아니고 도움이고 애정이다. 이건 누군가를 이끌고 도와보거나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업은 애정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4.

그래놓고 어리둥절하게도 사바아사나 하는 동안 내일 있을 업무 생각이 머리 위에 계속 둥실둥실 떠 있었다.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데 어쩐 일인지 자꾸만 끼어드는 일 생각에 당황하며 하이퍼 각성 상태로 사바아사나 시간이 지났다. 몰입은 어디로 간 거니.







2023. 12. 29. (금) 하타



1.

12월 말 금요일 저녁인데 수련에 많이들 참석했다. 특별한 스케줄보다 매일의 리추얼이 더 중요한 사람들. 나도 모임이나 약속보다 요가수련 가는 게 더 즐겁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도착하여 따듯한 물도 한 잔 마시고 들어갔다. 보일러를 따뜻하게 틀어주셔서 차가웠던 매트가 금방 데워졌다. 누워서 하는 자세들에서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2.

수업 시작 때 호흡명상에서 오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좀 힘들었다. 하루 종일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고 말투가 사나웠나 했더니 호흡하면서 딱 꺼냈다. 잡았다, 요놈.


매트 바깥에서의 일들을 한쪽으로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안고 들어왔더니 물컹한 덩어리가 수련을 방해한다. 너무나도 사사로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흐를 뻔했는데 정말 애써서 잘 참았다. 수도꼭지 마냥 틀면 우는 나에게 눈물 참기는 너무 어려운 미션이다.


수업 전반에 골반을 여는 전굴자세들을 했다. 호흡하고 머무르고 다시 호흡하고 머무르며 이런저런 전굴 시리즈를 하는 동안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몸을 움직이고 호흡에 집중을 하면 이 또한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전굴하면서 이런 마음이 통증이라고 치면 이 상황은 관문통제이론 같은 원리인 건가 하는 비약적이고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다니 약간의 웃음마저 나왔다.


수업 오길 잘했다. 내게 그 생각을 잠시라도 떨쳐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그 순간이 감사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바아사나 하는 동안 몇몇의 장면이 또 지나갔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다독거리며 얼마 남지 않은 사바아사나를 위해 한숨을 쉬면서 머물렀다. 그래도 오늘 나의 사바아사나는 온통 꽝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잘 쓰다듬어보자.

자고 일어나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 있을지도.





이전 10화 2023년 11월의 기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