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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Oct 30. 2022

보통의 것

2020년 7월 14일 : 글쓰기 14일 차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의 나날을 간절히 그리던 날의 기록이다. 제대로 옷을 챙겨 입을 정신도 없이 몇 주째 병간호를 하다 보니, 이 날은 아무 일도 없는 무색무취의 날이 너무도 그리웠지 싶다.




1.

뒤적뒤적 핸드폰을 찾는다. 아침 5:30분 알람보다 10분 먼저 눈이 떠졌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히 침대 밖으로 나온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다. 역시나... 오늘도 흐리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다행이다. 늦지 않으려면 적어도 7시 15분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밥 먹을 시간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뜨거운 물에 빠른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 화장을 대충하고 머리를 만진다. 어제 가방을 미리 챙겨둔 덕에 아침 먹을 시간이 생겼다. 빵에 잼을 바르고 바나나 하나와 요거트로 간단히 아침을 해치우고 시계를 보니 6시 50분. 남편을 깨울 시간이다. "자기야, 나 준비 다 했어." 아침 비행이 있는 날은 남편이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준다. 차로 고작 3분 거리인데, 커다란 여행가방 끌고 걷는 길은 힘들다는 남편의 마음이다. 오늘도 아침 길 교통 체증이 장난 아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브리핑이 10시 시작이니 커피 한 잔 여유롭게 할 시간은 있겠구나. 


2. 

한 숨 길게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 50분이다. 암막 커튼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니 해가 쨍하고 뜨겁다. 배가 고프다. 뭐라도 요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동료들과 저녁 약속이 있으니 허기만 달래야겠다. 회사 건물로 가서 유니폼을 찾고, 아이스 밀크티에 딤섬 몇 조각을 먹는다. 저녁 6시, 동료들을 호텔 로비에서 만나 핫팟을 먹으러 간다. 오늘 비행이 어떠했고, 뭐가 어땠고, 누가 저랬고 할 말도 참 많다. 오늘은 저녁 멤버는 6명이다. 핫팟 먹기 딱 알맞은 수다. 동그란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주문서를 작성하니 더 신이 난다. 각자 취향에 맞는 소스를 만들어오고, 테이블 가득 주문한 음식이 쌓이기 시작한다. 입에 한가득 씹고 떠들고 웃느라 바쁜 시간이 이어진다. 홍콩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가끔은 귀찮지만 대부분은 별 것 없는 이 시간이 좋다.


3. 

요란한 세탁기 소리에 눈을 뜬다. 이제 탈수가 시작되었으니 곧 끝나겠네. 일어나야지... 이른 아침에 런던에 도착했다. 새벽같이 버스 정류장에서 날 픽업하고 출근한 남편이 없는 조용한 집. 커피 한잔 들고 창 밖을 바라본다. 오늘도 구름이 잔뜩이다. 아이들 학교가 끝났나 보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5분. 초록색 교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들이 엄마, 아빠 혹은 누군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몇 엄마들은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다른 엄마들과 수다 중이다. 하교 길에 흥이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높고 쨍하다. 유일하게 시끌시끌한 시간이다. 


4. 

남편과 브런치를 하러 나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둘이 외식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템즈 강변 카페에 왔다. 사람들이 많은 걸 싫어해 오늘도 브런치라고는 하지만 이른 아침이다. 바나나와 블루베리가 얹어진 팬케이크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시킨다. 나는 홍차, 남편은 카페 라테를 마신다. 커피에 설탕을 넣으려는 남편의 손을 주시한다. 한 스푼이 들어가고 두 스푼이 들어가려 던 차에 그 손을 막아선다. "하나면 충분해." "에이 그럼 반 스푼만 더 넣을게.", "아니! 하나면 충분하다니깐..." 건강을 운운하며, 설탕 하나로 한참을 옥신각신한다. 


5.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 떠오른다.

오늘은 보통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풍경이 무척이나 그리운 그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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