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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Feb 25. 2016

빌어먹을 날씨 아래 즐거웠던 시간

운이 없는 건 불행한 게 아니다

누가 최악이라고 한다면 말하고 싶다.
 그게 최악이라고? 아닐 수도 있어!
빌어먹을 날씨

이틀간 햇살이 반짝 비추더니 거짓말처럼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리며 바람이 거세게 분다. 외출을 준비하고 나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둑한 집에는 다른 식구들은 모두 일을 가고 없다. 나와 할아버지만 남았다. 우리는 어젯밤 뉘른베르크 근교 세 군데를 들릴 계획을 세웠다. 오늘 날씨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어제와 사뭇 다르다. 날씨가 어떠하든 계획대로 우리는 차를 타고 첫 번째 마을에 들렸다. 박물관을 살짝 둘러보고는 바로 길을 잃었다. 길을 헤매어 이십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한 시간을 뱅뱅 돌아서 갔다.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마을은 원래대로라면 활기찬 기운이 가득한데 평소와는 달리 드물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꼬마는 빌어먹을 날씨라며 투덜거린다. 가장 기대했던 로텐부르크는 가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로 옆에 도로 주행 연습을 하는 차로 인해 가다 멈추기를 여러 번해야 했다. 우리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상점에 오후 5시 55분에 겨우 도착했다. 상점에서 할아버지 카메라를 찾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팠지만 다른 식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누우려고 하던 찰나 1층에 사는 G가 올라와 대화를 나누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사실이 말해주지 않은 우리의 시간

사실은 빌어먹은 날씨에서 지낸 하루인데 사실은 또 그렇지 않다. Gunzenhauzen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길을 물어봐야 했다. 우리는 빵 사진이 크게 붙어있는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운전사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독일 전통 도넛을 두어 개 주었다. 참 독일스러운 맛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Dinkelsbuhl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평소와는 다르게 일본인 관광객 한 무리만 있을 뿐이었다. 눈을 펑펑 맞아가며 우리는 여유롭고 느리게 마을을 둘러보았다. 눈이 내리는 한적한 마을을 걷고 있으니 햇살이 비출 때와는 다른 고요함이 편안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그러다가도 바보 같은 날씨(Silly weather)라며 빌어먹을 날씨라고 말하는 꼬마 흉내를 내며 웃었다. 날씨 덕분에 하루를 온전히 한 마을에만 마음을 쏟았다. 다른 마을과 하루를 나누지 않고 온전히.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와 화덕에 장작을 넣으며 미리 따뜻한 공기를 만들었다. 다른 이를 기다린 후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배가 부른 채 잠이 들 수 있어 감사했다. 배고프면 잠이 안 오니까. 

할아버지네 집 앞마당과 마을


길 잃은 우리에게 힘을 충전해준 독일 도넛


동네 주민은 커녕 관광객도 볼 수 없었던 거리 / 할아버지가 저번에 와보았다던 식당


점심 식사


카페에서 나서며 M을 주고 싶어 호두 케이크를 포장했다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은 Dinkelsbuhl / A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H

스스로 로맨틱하다는 H를 보며 S는 정말 숨 넘어가게 웃었다.

할아버지 카메라를 찾으러


추울까봐 걱정하는 S의 원피스를 입은 나


아늑한 집 / M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다

좋은 것이 좋은 점만 있지도 않고 나쁜 것이 나쁜 점만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쁜 일이 생기면 불평하고 좌절하고 슬프고 절망하기 마련이다. 사실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일시적인 것이다. 날씨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어떤 걸 보고 어떤 곳을 가고 누구와 함께 보낼지는 내 선택이다.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을 때도 있지 않은가. 



*

독일 문화에 대해서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한 번도 똑같은 대답을 들은 적은 없다. 사람마다 모두 달랐는데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에는 부모님 세대보다 한 세대 앞선 노인 분들이라 현재 유럽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불만스러운 한국 문화를 말할 때면 그들도 같은 문화가 있었다며 30년 전 독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예를 들면 당연하게도?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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