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함께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사랑할 일이다
‘구경열반 한들 그것이 무엇이랴. 석가여래께서 입멸하셨을 적에 많은 성문들은 어찌하여 울었더란 말이냐.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며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 것이며.... 형체가 있고서야 마음을 보지 아니하겠는가.’
토지 3부1권 230쪽에서 인용/ 마로니에 북스
구경열반이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말한다. 석가께서 돌아가시어 열반에 들었는데 왜 불제자들은 울었던가?
기독교에서도 가족이나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들의 교리대로라면 그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갔을 것인데 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가?
그것은 이제 다시는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인 것이다.
같이 살아있어서 얼굴을 마주하고 살던 사람이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이 보다 더 큰 슬픔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그 슬픔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 남아 오랜 시간동안 강물이 되어 흐르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그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 사실 앞에서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 되셨을 때의 일이다. 햇살 좋은 마루에 앉아 무심히 빨래를 개던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어디 저 제주도쯤 가서 작은 댁 얻어서 살림 차리고 살아 있다면 좋겠다.
너거 아부지.’
멀리 가서 딴 여자 얻어 살림 차리고 살고 있다면 그래도 한 번 씩은 만나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간절하고 안타까웠으면 그런 말을 할까싶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절망이다.
함께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서로 부지런히 사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