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향기에 미친 별들이 쏟아져 내리도록 그리운 얼굴만큼 하늘 창을 열어놓아야지 별에 찔려 백혈이 낭자한 밤을 사르다 아침이면 연보라 꽃물 든 시집에 얼굴을 묻고 처참하게 죽어 있어야지 - 강효수, <라일락 블라썸>
모처럼 봄 날씨가 섞여 농도가 불균일한 6월이었다. 너에게 빌렸던 시집을 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오던 중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걸음이 어느새 학교 정문까지 내려와 있던 어느 한날.
바로 옆 반에 교실을 두고도, 이게 무슨.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운동장을 향해 푸념했다. 교실에 없던 너희 반 아이들은 전부 거기 모여 있었다. 체육 수행평가가 한창이었다. 배구며 배드민턴이며, 연습과 점검을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여자애들은 틈새 시간을 벌어 운동장 구석에서 저들끼리 피구를 하곤 했다.
그 무렵 어울리지도 않게 자주 몸이 아팠던 너는, 그 핑계로 늘 스탠드에 앉아 있어서 땀은 흘릴 일이 없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너를 찾아냈다. 양팔에 푸른 줄무늬가 그려진 하얀색 반팔 체육복을 입고, 죽은 물고기처럼 가지런히 무릎을 모은 채 꼼짝없이 앉아있는 너를.
내가 옆에 한 자리를 띄어 앉자 너는 맥없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유독 혈색이 파리한 것이 정말로 무슨 병이라도 걸렸나 싶었다. 하얗게 질린 네 왼뺨 쪽에 앉아 그 속에서 두런거리는 시퍼런 혈관을 살폈다. 너는 슬슬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 다쳤다며.
- 별로?
무심한 대꾸와는 달리 네 오른뺨에 넓적한 반창고가 붙어 있었고, 자꾸 외면당하는 그 뺨 아래로 이어지는 턱선도 조금 부어 있었다. 너는 계속 왼뺨으로만 괜찮다고 말했다. 숨기려는 것을 굳이 헤집고 싶지 않아서, 내 걱정은 네 머리카락 끝에 나의 서러운 지문을 살짝만 묻히는 것에서 그쳤다.
오늘 점심시간에 있었던 피구경기에 머릿수를 채우러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던 너는, 공을 크게 잘못 맞고 미끄러져 거친 모래 바닥에 뺨 한 면을 싹 갈았다.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던 아이도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치며 말을 해서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그 애가 사용한 표현에 따르면- ‘잘못 걷어찬 빗자루같이’ 쓰러진 너는 미동도 않고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고 했다. 정말 머리라도 잘못 박았을까 봐 아이들이 둘러싸고 보니, 네가 어떤 액체 같은 걸 흘리고 있었단다. 아무도 정확히 명칭을 알지 못하는 괴상한 액체.
나중에는 네가 피를 철철 흘리며 의식불명 상태로 한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는 식으로 와전이 되긴 했지만, 하여튼 간에 그런 식으로 전해진 것이 되려 다행일 정도로 네가 흘렸다던 것의 정체는 미궁이었다. 쟤, 원래 땀 많이 흘려, 하고 누군가 해명해 주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공을 맞는 순간 갑자기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땀이라니. 귀에서 코에서 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아주 투명하고 묽은 땀이라니.
무엇이었을까. 그것도 단지 와전된 소문에 불과한 것 아닐까. 너는 결코 이유 같은 것은 설명해주지 않을 터였다. 보건실에 부축해 데려다 놓으려는 것도 극구 사양한 너는 '멀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랬다. 들키면 추방당할 병이라도 가진 것처럼, 필사적으로. 멀쩡해. 난 멀쩡해.
- 웬일로 피구를 다 해선.
- 그러니까, 괜히 했어.
그렇게 심통을 부리긴 했지만 좌우지간 네가 괜찮다고 말했으므로, 나는 금세 의문 같은 것은 잊었다. 어차피 전해 들은 것도 거기까지였고 그래서 달리 더 궁금할 것도 없었으며, 그런 것보다 당장 눈앞의 너는 뺨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기력이 없는 게 문제였다.
- 아파 보인다, 너.
- …아프진 않아.
- 누울래?
옆으로 한 칸 더 비켜 앉았다. 너는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무마되지 않는 낯빛 탓으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너의 그 웃는 모습에서 괜스런 연민을 느꼈다. 붉은 기라곤 돌지 않는 네 얼굴은 현실감이 없었다. 가만 손등으로 이마를 짚어 보았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이마는 낯설기만 했다. 네가 뒤로 물러났고, 손등에는 따뜻한 허공이 닿았다. 그 감촉이 오히려 너와 더욱 비슷하게만 느껴져 한동안 손은 그 높이에 머물러 있었다.
이윽고 네가 슬쩍 내 손을 붙잡아 내렸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거기서 놀랍도록 건조한 문장이 한 줄 흘러나왔다.
-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네가 읊은 구절에 저절로 다음 구절을 외웠다. 네가 읽었구나, 하고서야 너에게 빌려 읽은 시집에 수록된 글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그 시집을 세 번도 넘게 읽은 너보다 더 긴 문장을 말했다는 사실이 문득 기이했다. 네 눈에서 문장이 흘러나왔노라고 표현했지만, 다음 순간 정말로 그 눈이 어떤 액체 같은 것을 쏟아내며 뺨을 적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전에 없이 놀랐다.
- 왜…울고 그래.
놀란 나머지 다시 손이 먼저 다가가 네 눈가에 닿았으나 몇 방울 채 훔치지 못하고 내쳐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에 얼굴을 묻는 식으로 너는 나를 다시 외면했다. 곧, 그 빛깔도 없는 것이 네 팔을 타고 내려왔다. 팔꿈치에 가득 맺힌 방울들이 네 치마 위로 뚝 뚝,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라고 하기엔 점점 더 많은 양의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마치 또 다른 수로 하나가 열린 것 같았다. 너는 걷잡을 수 없이 넘치는 액체에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 여기저기를 감싸 쥔 채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다.
나는 궤도에서 벗어난 행성처럼 혼란히 남았다. 잠시 네게서 옮은 손등 위 몇 방울의 기피를 문지르며, 영영 사라질 작정으로 도망치는 듯한 너의 뒷모습을 끈질기게 눈에 담았다. 이상하리만치 아무 감촉도 없었다. 손에 묻혀 온 너의 작은 울음은. 보통의 물방울보다도 무르게 부서져 금세 증발했다.
종이 울리는 소리에 가까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여자애들이 하던 것을 정리하고 체육복 겉옷을 일제히 벗어던지며 반으로 돌아가는 곁을 얌전히 지나쳤다. 무리 속에서 네 이름이 언급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내 걸음이 조금 더 앞서고 있었을 것이다.
- 야, 아픈 년 어디 갔냐.
경멸에 찬 단말마의 말을 듣고 하필 너를 떠올린 것에 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뒤이어 먹잇감이 던져지길 기다렸다는 듯, 열렬한 언성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그들은 줄곧 스탠드에 앉아만 있던 너의 병약함에 대하여 신랄하게 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실은 애초부터 네게 뭔가 꺼림칙한 면이 있었노라 말했고, 그 말은 적어도 세 명 이상의 동의를 샀다. 그러나 근거가 되는 것은 대부분 길게 잇지도 못하는 추측성 루머들 뿐이었다.
몸이 덜덜 떨리는 오한을 느끼며 뒤에서 걸었다. 이제껏 네가 겪었을 진실이며 진심은 거짓으로 무성히 자라나, 그들과 나 사이의 공간에 컴컴한 그늘을 울망 울망 만들어 놓았다. 나는 너도 아닌데, 이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으로 착잡해졌다. 순간 네가 그 거짓들 속에 발이 뒤엉키기 전에 달아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어쩌면 이 그늘이 이미 너를 여러 번 병들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긴긴 수업 시작종이 그치고 여운 처리마저 끝낸 뒤라 다시 너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날 하굣길을 혼자 걸었다. 늘 나보다 빨리 정문에 나와있던 너는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비교적 늦게 끝나는 윗 학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정문 앞을 서성였지만, 헛일이었다. 결국 네가 먼저 집에 갔으리란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다.
혼자 귀가하는 길은 하염없이 길었다. 어둑어둑 노을이 내려오고, 사람과 건물의 그림자가 겹겹이 땅을 덮어 한층 더 어둡게 명암 진 길을 걸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얼마나 먼 뒤에서든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종종걸음을 멈췄고 아마 그래서 길이 더 멀게 느껴졌으리라.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저녁이 말끔히 지나 있었다. 하늘은 재빠르게 낭만을 죄다 지우고 까만 밤을 깔았다. 별 하나 없는, 텁텁한 아스팔트 도로와 같은 밤하늘이었다. 집에는 언제나처럼 아무도 없었다.
커다랗게 비어있는 공간의 어느 구석에는 아주 찰나의 추위가 고이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여름이 왔어도 아직은 온수로 샤워를 해야 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세차게 털며 나와, 서랍에 4장 정도는 쟁여놓은 흰색 무지 티를 꺼내 입었다. TV를 켜고 없는 반찬으로 저녁밥을 대강 차려 먹었다. 평소 보지 않던 채널과 너무 많이 봤던 프로그램의 재방송 채널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내내 웃지도 않다가 TV를 꺼버렸다.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어 두고 다시 방으로 오는데 몸이 무거운 피로로 시름거렸다. 앉으려던 자세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칼에서 번지는 물기가 찝찝하고 눅눅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몸을 완전히 뉘이면서, 느닷없이-모래 바닥에 누운 너를, 온몸으로 물 같은 액체를 왈칵 토해내던 너를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눈이 닫히자마자 네 꿈을 꿨다.
꿈속에서, 너는 조명 꺼진 무대 같은 쓸쓸한 방에 흐느끼며 앉아 있었다. 희고 푸석한 입술을 아들아들 떨면서, 누구야, 하고 물었다. 너는 거기 놓인 대로 있을 수밖에 없는 인형 마냥 꿋꿋이 앉아 있었고, 결 좋은 어둠이 네 표정을 부드럽게 뒤덮고 있었다. 너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네가 나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이 갑자기 서러워, 왜 그러느냐고 반문하려 벌린 입에서 딱딱한 울음이 덩어리째 굴러 나왔다.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는 울음들 위로 너의 흐느낌이 또 다른 선율처럼 덧입혀졌다. 우리는 서로 무어라고 웅얼대었지만, 또 서로 우느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네가 품에 꼭 안고 있던 연보라색 시집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한 떨기 꽃처럼 시들어가는 종이 낱장들을 보다가, 그 속에서 함께 죽어가고 있는 시구들을 생각하다가, 급히 네게 손을 뻗다가……
깨어났다.
시야가 잠시 온통 연보랏빛이었다. 몽롱한 머릿속에 붙잡지 못한 구절 몇 개가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뭐였더라, 그 문장이. 뭐였더라. 보랏빛이 걷히고 새하얀 천장이 전등처럼 환히 눈을 찔러올 때까지 같은 말을 되뇌었다. 시린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밤을 꼴딱 지새운 것처럼 몹시 피로했다. 돌연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학교는 3학년 건물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 있을 시각이었다.
문득 옷차림을 확인했다. 당장 집 밖을 나서기에 그리 부적절하지 않았다. 곧바로 윗옷만 챙겨 밖으로 나섰다. 네 책상에 놓아둔 연보랏빛 시집을 기억했다. 조금 전 꿈속에서 명을 다했던 그 말들이 못 견디게 궁금해서,라는 무모한 이유로 학교까지 곧장 걸었다. 이미 어둠에 깊숙이 갇힌 학교는 예상대로 운동장 우측에 위치한 3학년 건물만 훤했다. 1, 2학년 건물은 잠기지 않은 문을 찾아 두 바퀴를 빙빙 돌아서야, 위층으로 통하는 복도 끝의 문을 찾을 수 있었다.
네 반은 한 층 올라온 곳에 바로 있었다. 창문 앞에 서서 휴대폰으로 안을 비추는 순간, 나는 다시 꿈과 마주친 것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아연해졌다. 창문은 당연히 잠겨 있었고, 앞문도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어 그 대신 뒷문의 걸쇠를 주먹으로 몇 번 내리친 뒤에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짐짓 주춤하지도 않고 너에게로 곧장 달려갔다. 바깥에서 보면 언뜻 귀신처럼도 보일 만큼 가만히, 교실 벽에 기대앉아있는 너였다.
-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일어나 봐.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살짝 흔들어보았지만 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치우자 눈이 차분히 감겨 있었다. 네 입술 부근에 귀를 가져다 대고 호흡 소리를 들었다. 쌔근대는 숨소리가 분명 자는 게 틀림없는데, 어쩐지 너무 미약하고 흐렸다. 귓가에 와닿는 숨결의 온도가 찼다. 혹 거의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닐까. 애초에 너, 여기 왜 갇혀 있는 거니.
나는 조심스레 네 뒤통수에 팔을 받치고 너를 옆으로 눕혔다. 네 팔이 스르륵 몸에서 미끄러지며, 품에 안겨있던 시집이 덜컥 떨구어졌다. 역시, 꿈에서 본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너도 나처럼 이 안의 구절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돌았고 그래서 차오른 욕구는 과연 쓸데없이 맹목적이었다. 무작정 시집을 펼쳤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걸 찾아 읽겠다고 너를 두고 교실을 나갔다. 불빛이 있는 복도 왼편에서 책을 열고 페이지를 넘겼다.
어디쯤이었더라. 너와 내가 멈추었던, 멈추어 간직했던 그 구절이.
-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그러나 읽으려 했던 문장은 이번에도 너에게서 먼저 나왔다. 나는 네 목소리를 어렴풋이 듣자마자 책을 덮고 부리나케 교실로 돌아갔다. 언제 깨어났는지 네가 큼지막한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려던 나는 축축한 바닥에 닿고는 흠칫하며 도로 무릎을 떼었다. 네 주변으로 물 웅덩이 같은 것이 넓게 드리우고 있었다. 가득 떨리는 손으로, 시집을 내게서 빼앗아 든 너는 그것을 그대로 그 젖은 바닥에 내리꽂았다.
- 영 효과가 없네.
원망이라 불러도 좋을 속삭임이었다. 당최 네가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증상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존재가 분명해진 정체 모를 액체가 줄줄 새는 동안, 더 이상 내보낼 것도 없다는 듯 점차 네 몸은 납작하게 가라앉았다. 네 옆구리 근처에 내팽개쳐진 시집도 물기가 묻어 한껏 오그라들고 있었다.
- 다 쏟아버렸잖아. 오래 간직하고 싶었는데……
곧이어 네 몸 밖으로 기어 나온 말은 마음이 없는 사람의 것처럼 탕연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네가 지어먹었다던 이름인지, 쏟아버렸다는 마음인지 몰랐다. 그저 너를 기울지 않게 두었더라면 네가 괜찮았을지 모른다는 기묘한 자책이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 그래도 내가 너를 많이 좋아했었던 것 같지, 그렇지?
그러니 그런 말을 맞아줄 대답 또한 없었다. 나는 정녕 모르겠으니까. 너는 이제는 히끅거리는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나를 영영 잃어버리는 곳으로의 문턱을 넘어가며. 네 병이 내 이름 따위로는 치유되지 않는 것이었던지, 아니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것이 단지 부작용의 일종인 건지, 그런 것들을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나는-내일이면 너에게 이따위 의문 중 하나쯤 물어볼 수 있을까. 내일도 네가 온전히 내가 걱정하는 너로 살아있다면.
나는 이번에야말로 무릎을 꿇었다. 쓸모없는 나의 걱정은 너의 괴로움에 대하여 어떤 일부도 대신해주지 못했다. 네가 또 메마른 목으로 울음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밭은 숨소리 사이로 한 줌씩 끼워 넣는 울음소리가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애달팠다. 네 속에 욱여넣은 내가 너무도 많은 모양이라고, 나는 따라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생각해야 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던 거지 끝내 전하지 않을 거였다면 무어든 각별히 손꼽지는 말았어야 했던 거지 ••• 나 혼자만의 것이잖아, 특별한 것은 무어든 - 이닻,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