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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l 14. 2024

꼭 오후 3시에 해야 했어?

분갈이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지금 당장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발작버튼이 있다. 그 버튼이 하필 습하고 뜨거운 오후 3시에 발동하고 말았다.


작업실에 작은 화분을 몇 개 키우는데 분갈이를 미뤄왔던 게 생각이 났다. 급하게 다이소에 들러 화분과 흙을 샀다. 흙을 돈 주고 사는 세상이 왔다. 물을 돈 주고 살 때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음에는 무엇까지 돈을 내야 살아낼 수 있을까?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작은 화분들을  뒷마당으로 꺼내 분갈이를 하고 보니 작업실 꼴이 말이 아니다. 날 잡았다. 화분에 물기가 빠지는 동안 책꽂이부터 시작해서 대청소를 했다. 땀이 줄줄 흘렀다. 이래서 일은 미루면 안 된다. 우울이 길어질수록 주변은 엉망이 된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베란다까지는 도저히 할 수 없어 포기.


발작버튼이 작동했다는 건 내가 조금씩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다. 분갈이 한 화분이 잘 자라주면 좋겠다. 화분에 물 주는 재미로라도 작업실에 매일 출근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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