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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r 06. 2024

17. 울타리 아래 국화꽃 한 송이

'평범'의 진리를 헤아리며 (2)

※ 이 글은 <별유천지비인간, 무릉도원을 찾아서>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그 글에서 제가 말하는 '도교道敎가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시고 난 후에, 오늘 주제인 도가道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무슨 뜻일까요? 도교에서 추구하는 불로장생 不老長生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 아주 쉽게 뜻풀이가 됩니다. 그러나 '무위자연'은 무슨 뜻인지 도통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노장사상은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쇳소리로 침을 튀겨 가며 열강을 해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헷갈립니다. 심지어 노장 사상을 이십 년 동안 가르치셨다는 대만대학 철학과 교수님도 솔직히 자기도 자기가 무슨 얘기를 떠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수업 시간에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저는 노장사상 전공자가 아닙니다.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공자들이 어렵게 이야기하고 심지어 자기도 모르겠노라 고백한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글을 읽으며 아주 쉽게 깨달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으뜸 가는 깨달음(싯단타 siddhānta)'은 '특별한 언어(데샤나 deśanā)'로 가르쳐라!


중국 선종禪宗의 길을 열었던 《능가경楞伽經》의 가르침입니다. 특별한 언어, 데샤나가 뭘까요? '문학文學'을 말합니다. 서구에서 말하는 literature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의 '문학'입니다. 그 '문학'의 방법을 통하면 한없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이야기.


정말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세요.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시 한 수를 배우겠습니다. 동진東晋시대 도연명陶淵明(365~427)이 지은 <술을 마시며 飮酒>라는 연작시의 다섯 번째 시입니다. 짧은 오언五言 고시古詩이지만 도가 정신의 핵심이 담긴, 중국문학을 길이 낸 명작 중의 명작이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오늘도 생각해보기 시간이 먼저입니다. 검색해서 정답을 맞히려고 하지 마시구요,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만 가져보시길. 그러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해보기



1.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무슨 뜻일까요?


▶ 무: 없을 무

▶ 위爲:  위 (영어의 do 동사. ~을 하다)

▶ 무위無爲: 하지 않는다? 무엇을?

▶ 자연自然: 대자연 (영어의 nature)


동아시아의 공부하는 학인들에게는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었답니다. 유교를 추종하는 유학자이든, 불교를 믿는 불자이든,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사이든 간에 모두들 '무념 · 무상 · 무아의 경지'를 가장 좋은 공부 방법으로 여깁니다. 또한 도가에서는 '무위'를 말하고, 불가에서는 '무심無心'을 말합니다. '낭만파'는 '무정無情'을 숭상합니다. '무無', 도대체 뭘까요? 오늘의 키포인트입니다.


'자연'이라는 말은 또 왜 '무위'라는 말 뒤에 붙어있을까요?

힌트 들어갑니다. '무위'와 '자연'은 대등한 관계입니다.

[ 무위 ≒ 자연 ]

즉 대자연은 '무위'라는 이야기. '무위'를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로 해석하면 이상하겠죠? 대자연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대자연은 □□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오케이?

앗, 힌트를 너무 많이 드렸네? ^^


2. '전원田園'은 무슨 뜻일까요?


최불암, 김혜자 씨가 출연했던 최장수 프로그램, 다들 아시죠? 근데 여기서 '전원'은 무슨 뜻일까요?

사전 찾아보거나 검색하지 말기로 한 것, 기억하시죠? 그냥 생각하는 시간만 가져보시라구요. ^^


3. '전신傳神'은 무슨 뜻일까요?


도연명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대자연'을 소재로 한 두 시파詩派가 있었답니다.

(1) 도연명의 전원시田園詩 (2) 사령운謝靈運(385~433)의 산수시山水詩.

중국문학에서는 그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 도연명의 전원시는 '전신傳神' (2) 사령운의 산수시는 '사경寫景'.


무슨 뜻일까요?

'사경'은 쉽습니다. '풍경을 묘사했다'는 이야기죠. '전신'이 조금 어렵습니다.

'전傳' '전달한다'는 뜻. '신神'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귀신? 아닙니다. '정신, 혼 spirit'입니다.

즉 '전신傳神'은 '정신을 전달한다'라는 뜻. 그렇다면 전원시는 누구의 정신을 전달한다는 말일까요?


4. '국화'가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화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사군자四子는 매화(봄), 난초(여름), 국화(가을), 대나무(겨울)를 말합니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에 피어난 지조를 상징합니다.

난초는 더운 여름에도 그윽한 향기를 퍼트리는 고상함을 상징합니다.

대나무는 모진 추위를 버티는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국화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네이버 지식사전을 찾아보면 국화는 '지조, 은일'의 상징이라고 나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화가 동아시아 지성인 사회에서 사군자 중의 하나가 된 이유, 바로 오늘 소개하는 도연명의 작품, <술을 마시며 5> 때문입니다. 도연명은 이 작품에서 '국화'를 무엇의 상징으로 사용했을까요? 곰곰 생각하면서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좌) 명, 정운붕丁雲鵬, 〈녹주도漉酒圖〉. 여기저기 들국화 사이에서 도연명이 갈건을 벗어 술을 거르고 있네요. 상해박물관 소장. (우) 조선, 장승업張承業, <도연명애국도陶淵明愛菊圖>. 도연명이 흐뭇한 표정으로 국화꽃을 완상玩賞하고 있군요.




사이사이 한자 공부를 할 텐데요, 혹시라도 한자 울렁증 가지신 분들도 겁먹지 마시길. 그런 부분은 그냥 건너뛰어도 된답니다. 하지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 고전과 한자는 어렵다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으시면 어떨까요? 빈칸에 퍼즐 채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만 인내하시면 큰 깨달음의 기쁨을 얻으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보셔요? ^^



작품 감상



사람 사는 그곳에 오두막 지었다.

수레 마차 시끄러움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으시는가?

마음만 멀리 있으면 공간은 저절로 심심산골.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노라니,

아아, 유유자적함이여! 남산이 보이누나!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산 이내 속에 아름다운 저녁노을

공중의 새는 짝을 지어 돌아온다.  

이 안에 담긴 진리,

설명하려다 문득 할 말을 잊는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해설 (1) 사람 사는 곳, 멀리 있는 마음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사람 사는 그곳에 오두막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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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廬(결려)는 오두막을 짓는다는 뜻.


도연명이 <집 짓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첫째, '오두막 '입니다. 넓고 화려한 집이 아니군요. 그냥 몸 하나 누일 곳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감상할 <귀거래사>에서 다시 이야기하지요. 둘째, 어디에 짓는다는 걸까요? '人境(인경)'입니다. 여기서는 '사람 사는 그곳'으로 의역을 했는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사는 경계 人境’입니다.


무엇과의 경계일까요? 대자연입니다. 그러나 '절경絶境'은 아닙니다. 사람 사는 그곳의 대자연, 평범한 대자연입니다. 지난번 시간에 나왔던 '무릉도원'이 사람 사는 곳과 동떨어진 '절경絶境'에 있었던 것과 크게 대비되죠? 도가와 도교의 차이입니다. '도가'의 '도'는 깊은 산속에 있지 않습니다.


人境(인경)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평범한 장소입니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그 속에서 겸허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주거지, 사람과 자연이 벗하며 사는 경계 지점이죠. 중국문학에서는 그곳을 '전원田園'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전원에 도연명은 아주 평범한 오두막집을 짓습니다. 요새 트렌드 중의 하나인 서구풍의 멋진 '전원주택'과는 조금 다른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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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그래도 수레 마차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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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馬(거마)는 수레, 마차라는 뜻. (거)를 '자동차 차'라고 읽으면 안 되겠죠?

 喧(훤)'시끄럽다, 떠들썩하다'라는 뜻.

 (이)접속사. 여기서는 역접으로 사용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래도'의 뜻.


사람 사는 곳에 살면 원래 사람 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시인은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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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으시는가? 마음만 멀리 있으면 공간은 저절로 심심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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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問君(문군)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뜻.

何能爾(하능이)'어떻게 가능한가요?'

心遠(심원)은 '마음이 멀리 가 있다'는 뜻. 멀리 어디에 가 있다는 말일까요? 곧 알게 되십니다. ^^

(편)은 '치우치다'는 뜻. 여기서는 이 세상 어느 깊은 곳에 치우쳐있는 '오지의 땅'이라는 뜻.

地自偏(지자편):내가 살고 있는 땅이 저절로 세상과 격리된 깊은 산골된다는 뜻.


아니, 세상과 차단된 깊은 산골이나 절해고도도 아닌 소박하고 평범한 거주지인데, 그런 곳에 살면서 어떻게 속세의 시끄러운 소리도 안 들리고 인간 세상의 번뇌도 없다는 말일까요? 도연명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살고 있는 땅이 어디에 있는지,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답합니다. 마음이 현상을 초월해 있으면 내가 살고 있는 땅은 저절로 심심산골이 되는 법. 평범한 대자연이 보이는 그런 정도의 장소면 충분하다고 답변합니다.



해설 (2) 임진자득 任眞自得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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采菊(채국) : 국화꽃을 딴다

東籬(동리) : 동쪽 울타리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작품을 중국문학 최고 명작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있답니다. 이 아래 구절과 합쳐서 열 글자를 얼른 일백 번 암송하세요.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한자로 글씨를 쓰면서 암송하시면 효과 일백 배, 일천 배일 거예요.^^ 그래야 오롯이 여러분 스스로의 것이 된답니다.


근데... 뭐가 좋다는 건지, 잘 모르시겠죠? 저도 그랬답니다. 오래오래 궁금해하며 두고두고 음미해 보는 것. 그게 동아시아 학문의 매력이지요. 그래야 진짜 자기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옛날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이 구절을 배웠는데요, 선생님께서 “얘들아, 참 좋지?” 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네요? 뭐가요? 여쭤보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가 없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막급이었답니다. 아, 그때 질문할걸... 얼마나 답답하던지요. 그렇게 궁금함을 마음속에 담고 수십 년이 지나가던 어느 날, 논문을 쓰다가 갑자기 머리에 섬광처럼 와닿더군요. 유레카!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도연명이 살았던 그 시대는 끊임없는 전쟁과 폭정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다고 했죠?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거나 머릿속에 든 게 많은 사람들은 호흡법을 익혀서 금강불괴의 몸을 만들거나, 신선이 되는 불로장생의 비약을 만들어 먹거나, 동남동녀와의 성적 접촉을 통해 젊음을 되찾으려 발버둥을 쳤죠.  


하지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았던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버거웠지요.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과 단절된 유토피아의 땅, 무릉도원을 하염없이 그리워했답니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그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 같은 신선세계를 찾아 헤맵니다. 그걸 ‘유선遊仙’ 풍조라고 했죠? 그 신비로운 땅을 찾아내어, 천년 묵은 산삼이나 하수오 같은 신비의 약초를 먹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이 있기를 간절히 꿈꾸었답니다.


하지만 도연명은 지금 불로초가 아니라 뭘 따고 있죠? 국화꽃입니다. 가을이 되면 어디에나 지천으로 깔려있는 평범한 꽃입니다. 국화꽃은 '평범'의 상징이지요. 그렇다면, 采菊(채국), 국화꽃을 딴다는 것은 평범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해 내는 일이 아닐까요?


그 행위를 어디서 하고 있죠? 동리하東籬下, 자기 집 양지 바른 동쪽 울타리 아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주 대하는 존재의 가치를 쉽게 망각합니다. 그 평범함에 식상하여 새로움을 찾아 나서죠.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떠나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듯싶은 행복의 나라, 유토피아를 찾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도연명은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 가을이 되면 언제나 자기 집 울타리 아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평범한 국화꽃을 보며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행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내는 일은 전적으로 나그네의 몫이겠죠. 우리네 삶의 연도沿道에 제아무리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한들 피곤에 지친 여행자가 눈을 감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요. 영혼의 눈이 열린 나그네는 평범한 국화 한 송이에서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 숙여 기도합니다...

조선, 정선鄭敾, 〈동리채국東籬采菊〉부채 그림. 18세기, 종이에 담채, 22.7×5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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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아아, 유유자적함이여! 남산이 보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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悠然(유연) : 유유자적함. 한가롭고 여유 있는 마음 가짐. 흰구름이 떠 있는 것 같은 마음.

(견) : 보이다. 목적어가 있는 타동사인 '보다'가 아니라 목적어가 없는 자동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南山(남산) : 도회지 남쪽의 산. 도시인들이 쉽게 찾아가서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곳.


'悠然(유연)'은 '몸이 유연하다'라고 말할 때의 '유연 柔軟, 柔然'이 아닙니다. 흰구름이 둥둥 흘러가는 듯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흰구름은 어떤 마음의 상태로 흘러갈까요? 아무 마음도 없는 텅 빈 마음이라구요? 네,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까요? □□ 하지 않는 마음, '무위無爲'의 마음입니다. 궁금증을 남겨놓고 일단 넘어가 보겠습니다.


'남산'은 무엇일까요? 서울에도 남산이 있죠? 우리 주위에 가깝게 있는 산,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나 쉽게 찾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 유토피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남산입니다.


‘見 견’이 중요합니다. '견'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입니다. '본다'는 ‘간看’이라고 하죠.  ‘간看’은 화자話者의 의지가 담긴 타동사구요, '견見'은 화자의 의지가 없는 자동사랍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구요? 중요합니다. '남산'은 흰구름처럼 □□ 하지 않는 '무위'의 마음이 될 때에만 우리 눈에 보인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그곳을 목적지로 삼고 찾으려고 하면 도리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 그러나 내게 주어진 현실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아나가면, 어느 순간 저절로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오는 것. 그것이 유토피아라는 뜻이 될 테니까요.


유토피아는 □□ 하면 찾을 수 없다.

□□ 을 버리고 최선을 다할 때 찾아온다.


옛 문인은 도연명의 이러한 경지를 일컬어 ‘임진자득 任眞自得’이라고 했답니다. 맡길 임, 참 진, 저절로 자, 얻을 득. ‘참된 것에 맡기면 저절로 얻어진다’는 말이죠. 무엇이 얻어진다구요? 유토피아, 무릉도원은 □□ 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마음속에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해설 (3) 곱디고운 노을 할머니, 인생의 리즈 시절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산 이내 속에 아름다운 저녁노을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공중의 새는 짝을 지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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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氣(산기) : '산 이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내'는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순우리말이지요. 산이 있는 곳이면, 그곳에 저녁노을이 찾아오면 어디에나 나타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현상입니다. 30년 전, 제 직장에서 해 질 무렵 맞은편 야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볼 수 있었죠. 제 직장이 바로 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상 없게 되었네요. 전원을 잃어버린 아쉬움이 아련합니다.

日夕(일석): 노을.


먼 산에 끼인 이내, 저녁노을... 어디서나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대자연입니다. 시인은 이 평범한 대자연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세상과 격리된 신비한 '절경'이 아니라, 평범한 '인경 人境', 사람과 대자연이 만나는 그 경계 지점에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그 평범한 대자연, 아름다운 대자연은 저물어갈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바다는 저물면서 빛납니다. 새들은 낮에는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다가도 날이 저물어가면 배가 고파도 둥지로 돌아옵니다. 도연명은 그 평범한 대자연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전신傳神, 대자연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다


황혼은 하루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이니, 대자연처럼 산다면 당연히 노년기가 리즈 시절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아닐까요? 곱디고운 노을 할머니, 당신은 우리 인생의 리즈 시절입니다.

<저물면서 빛나는 리즈 시절>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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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

이 안에 담긴 진리, 설명하려다 문득 할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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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中(차중) 이 안'은 어디일까요?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겠죠. 평범한 오두막집, 평범한 장소, 평범한 우리 집, 평범한 국화꽃, 평범한 산 이내, 평범한 노을, 평범한 새들... 평범 속에 진리가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그래, 맞았어. 이런 게 참된 진리야! 뭔가 입을 열어 말하려는 그 순간, 도연명은 잠깐! 우리들을 제지합니다.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설명하려다 문득 할 말을 잊는다


시인은 설명하려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어는 평서문이 명령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으뜸 가는 깨달음(싯단타 siddhānta)'은 일반적인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특별한 언어(데샤나 deśanā)'로 체득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평범'은 말과 글로 옮기는 순간 뭔가 '비범'해지기 쉬운데, 무연고 작가님은 여전히 쉽고 친근하고 평범한 목소리로 평범을 이야기한다. 필력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시다.  <별유천지비인간, 무릉도원을 찾아서>에서.


제가 지난 시간에 무연고 작가님의 <보구씨의 평범한 하루>를 칭송한 이유입니다. 평범의 진리는 이렇게 강의하듯 떠들면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 무연고 작가님처럼 '특별한 언어, 데샤나의 문학'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어 소통의 한계를 지적한 동아시아의 지혜입니다. 이제 소오생의 해설은 잊어버리시고 무연고 작가님의 데샤나의 작품 활동으로 평범의 지혜를 터득하시면 되겠습니다.




앗, 근데 잠깐만요. 아직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안 했네요. 죄송합니다.

□□가(이) 무엇인지, 얘기는 수가 없잖아요. ^^;;

우선 오늘 어떤 순간에 □□가(이) 출현했는지 여기에 모아볼까요?



◎ 대자연은 □□을 하지 않는다. (무위자연)

◎ '남산'은 흰구름처럼 □□ 하지 않는 '무위'의 마음이 될 때에만 우리 눈에 보인다.

유토피아는 □□ 하면 찾을 수 없다. □□ 을 버리고 최선을 다할 때 찾아온다.

◎ 무릉도원은 □□ 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마음속에 저절로 찾아온다.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 무엇일까요?


힌트 드리겠습니다. 엊저녁 시하 작가님의 <나의 사랑 초록이>를 읽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작가님은 반려 식물을 키우시는데요, 제일 먼저 키우기 시작한 '벤자민'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위한 애도문을 쓰신 거죠. 딸랑딸랑 아부가 아니구요, 글을 읽으면서 작가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저절로 노장사상의 도道를 깨치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 말이 거짓인지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셔요.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아래 인용문 속에 □□라는 글자의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무엇일까요? 찾아보셔요.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베란다에 와서 옹기종기 아우 초록이들을 거느렸던 벤자민.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갔는데, 이제는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연의 끝자락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허전하고 출처도 없는 슬픔이 더더욱 보태어져서 그 크기가 산더미처럼 불어납니다. 하물며 이 작은 생명도 그러할진대 사람의 인연은 더할 테지요. 그래도 가야 할 것은 명징하게 보내야 합니다.


내게 오랫동안 기쁨을 주었던 벤자민을 다시 대자연으로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는 속삭입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생명이든지 간에, 집착하지 말고 사랑하라. 채우지 말고 비워내라. 아버지의 환영이 잠시 벤자민에 머물다가 사라집니다.



이제 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집착'이 키워드입니다. 대자연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국화도 흰구름도 노을도 그 어떤 대자연도 집착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무위자연'의 '무위 無爲'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대자연처럼 '집착에 사로잡힌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 되는 거지요. 도연명의 <술을 마시며 5>는 바로 대자연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전신傳神'노래입니다.



해설 (4) 무위 無爲: 집착에서 벗어난 최선의 노력



그런데... '집착'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저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집 執', 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행위죠. '착 着', 짝 달라붙어서 절대로 놓지 않고 있는 행위입니다. 무엇을 붙잡고 놓지 않는 걸까요? 무엇을 붙잡든 그렇게 치열하게 붙잡고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럴 것 같지만 아닙니다. 송나라 때 문단의  영수였던 구양수歐陽脩가 <추성부 秋聲賦>의 마무리 부분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시죠.



오호라! 감정 없는 초목들도 떨어질 때가 있지 아니한가!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동물은 백가지 근심과 만 가지 일로 마음과 몸을 지치게 하니, 그 내부가 흔들리면 필경 원기가 상하게 마련이라! 하물며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근심하니, 윤기 반짝이던 홍안의 얼굴이 고목나무로 변하고 칠흑 같던 머리가 하얗게 세어감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磋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爲動物, 惟物之靈;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有動於中, 必搖其精。 而況思其力之所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槁木、黟然黑者爲星星。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 그게 '집착'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도교는 '불로장생'에 매달립니다. 신선이 되고자 합니다. 그게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가능한 일일까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도가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무위 無爲'입니다. 알고 보면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인 거죠.


그러므로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도가 패러다임과 도교 패러다임은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똑같이 몸을 단련하더라도 도교 패러다임은 불로장생에 집착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죠. 도가 패러다임은 건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면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심無心'도 마찬가지! '아무 마음도 없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정 無情'이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집착하지 고 사랑하라, 그 말입니다. '무념 無念'도 마찬가지.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것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현실 속의 예를 들어볼까요? 요새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고자 아주 필사적입니다. 옛날보다 훨씬 더 하죠. A+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거의 그런 수준이랄까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학기말이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설령 모든 학생이 전부 다 아주아주 잘하더라도 25%의 학생만 A학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이른바 상대평가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A+를 목표로 수강한다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집착'입니다. '나'의 통제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가의 패러다임을 가르쳐주었답니다. A+를 위한 수강을 포기하라! 이 강의를 통해서 내 삶을 살찌울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라. 그건 얼마든지 여러분 자신의 능력과 의지 안에서 통제 가능한 일이 아니냐, 그렇게 설득했더랬죠.


그런데 결과를 보니 아주 재미있었답니다. (1) A+를 위해 열공 모드였을 때와 (2) A+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최선을 다했을 때, 어떤 경우가 A+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까요? (2)번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가르쳐주셨잖아요.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 진짜로 죽으라는 아니라, 생사를 초월해서 싸울 살아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이해가 되시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건 집착일까요, 목표일까요? 브런치스토리의 많은 작가님들이 출간을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그건 집착일까요, 목표일까요? 어디까지가 도교의 집착이고, 어디서부터가 도가의 영역인 최선의 노력일까요? 경계선은 어디일까요? 다음 주에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도연명의 <술을 마시며 飮酒 5>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요?  


사람 사는 그곳에 오두막 지었다.

수레 마차 시끄러움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으시는가?

마음만 멀리 있으면 공간은 저절로 심심산골.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노라니,

아아, 유유자적함이여! 남산이 보이누나!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산 이내 속에 아름다운 저녁노을

공중의 새는 짝을 지어 돌아온다.  

이 안에 담긴 진리,

설명하려다 문득 할 말을 잊는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 도가의 정신,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무엇인지, 평범平凡이 무엇인지, 감이 좀 잡히시나요? 만약 못 느끼셨다면 순전히 제 능력 부족 때문입니다. 깊이 사죄드립니다... 만약 뭔가 느낌을 얻으셨다면, 데샤나, 문학의 힘입니다. 작가인 도연명과 독자인 여러분의 정감이 하나로 만난 까닭일 것입니다.


< 계속 >




[ 대문 그림 ]

◎ 청清,석도石濤(1641~1720?), 《도연명陶渊明 시의도詩意圖》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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