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공부하는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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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비주류인 '유가/도가/불가'의 패러다임은 동아시아 중에서도 대한민국에 가장 잘 보전되어 내려온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에는 패권주의 주류문화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와 '감동'이 담겨 있다. K-문화가 세계인의 환영을 받는 이유는, 그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을 가장 잘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5) 지식과 서양학 :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었고,
점 A와 점 B를 잇는 가장 빠른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공간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사실,
1 더하기 1도 언제나 2는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 초의 서양학, 특히 과학(물리학)은 큰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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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혜와 동아시아의 '학문' :
'지혜'의 고향은 곡선을 추구했던 동아시아 대륙의 농경문화다. 동아시아 결합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삼라만상의 이면에 대한 것이다.
삼라만상의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내재원리에 의해서 변화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비롯된 '지식'은 금방 쓸모없게 되지만, 삼라만상의 일정한 내재원리에서 비롯된 '지혜'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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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혜와 양자물리학 :
19세기 이전의 서양학, 특히 물리학은 '일반적 현상의 세계'만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비롯된 모순과 한계에 부딪친 20세기 이후 서구 물리학자들은 동아시아 패러다임에서 합리적 논거를 발견한다. 그리고 천체망원경과 원자현미경 등의 발명을 통해 동아시아 패러다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과학'이 붕괴되고 완전히 새로운 '과학'이 탄생했다.
19세기 이전의 서구 과학을 '고전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양의 과학)
21세기 이후의 현대 과학을 '양자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음의 과학)
'지식'에 의거한 서양의 고전물리학 이론 체계가 무너지고,
'지혜'에 근거한 현대의 양자물리학이 새롭게 태어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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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전의 서양학은 '지식'을 가르쳤고, 동아시아의 '학문'은 '지혜'를 추구했다.
20세기에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학을 근간으로 하는 '식민지 학문'을 이 땅에 들여왔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은 아직도 19세기 이전의 낡은 서양학의 단편적 지식만을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라도 하루속히 일제 식민지 학문 100년을 청산해야 하는데,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 독재 시대를 합쳐 놓은 것 같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인문학자가 왜 정치를 이야기하느냐고.
문학 교수는 문학이나 가르쳐야지 왜 정치 선동을 하느냐고 말한다.
아니다!
그게 바로 단편 지식이나 추구하는 과거 서구의 낡은 이분법 논리다.
독재자 또는 수구 기득권자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궤변일 뿐이다.
모든 것은 하나다.
우리의 몸속에 문학을 집어넣는 주머니가 따로 있고, 정치 주머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
동아시아 학문에서 말하는 '대학'에서는 어떤 '지혜'를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아보자.
'대학'이라는 단어는 유가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유가 사상의 핵심을 알아야 '대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유가 사상의 최종 목표는 한 마디로 '대동사회 大同社會'를 구현하는 일이다.
공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 즉 대동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무엇으로?
‘인仁’으로! 사랑으로!
일시동인一視同仁, 온 세상 사람들을 똑같은 ‘인’의 정신,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여 대동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 유가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 길과 방법을 모색하는 공부를 ‘대학’이라고 하는 거다.
동아시아 전통 학문에서는 '대학'을 공부하기 위한 초등 교육을 '소학'이라고 했다. 주로 단어의 발음과 뜻을 가르치고 배웠다.
그 '대학'의 내용을 글로 써놓은 것이 《대학 大學》이라는 책이고, 또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를 '대학 university'이라고 한다. '대학'에는 이렇게 몇 가지 개념이 중첩되어 있다.
《대학 大學》이라는 책은 누가 썼을까?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지었다는 썰도 있고, 증자의 제자이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썼다는 설, 훨씬 뒤에 한漢나라 유학자들이 지은 책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념 Ideologie'은 무엇일까? 명명덕明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선至善이다. 뭔 소리일까? 소오생 버전으로 쉽게 통역해 드리자면... 그게 바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자'라는 뜻이다.
어떻게?
《대학 大學》은 구체적으로 대학인의 여덟 가지 행동 강령을 제시한다.
[ 1 단계: 내면의 완성 ]
▶ 이성적理性的 차원 : ①격물格物, ②치지致知
▶ 감성적感性的 차원 : ③성의誠意, ④정심正心
∴ ⑤ 수신修身 ( ① + ② + ③ + ④ = 내면의 완성 )
[ 2 단계: 봉사와 헌신 ]
⑥제가齊家, ⑦치국治國, ⑧평천하平天下
먼저 글자 그대로의 뜻부터.
◎ 격물格物: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내재 규율을 탐구하다.
'격格'은 '탐구하다', '물物'은 '삼라만상'
◎ 치지致知: 삼라만상의 내재 규율을 깨치어 지혜를 얻다.
여기서 '지知'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격물'과 '치지'는 둘로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인 듯 하나이고, 하나인 듯 둘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근본 이치를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내재규율을 깨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번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격물치지'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걸까?
공자는 ‘배움(學)’과 ‘사색(思)’의 방법을 제시한다.
배우더라도 사색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사색하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논어 · 위정爲政》
( 1 ) 배움(學)
▷ ‘배움’이란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강의나 독서 같은 것을 통해 얻는다. 공자는 따로 특정 스승이 없었으므로 독서를 통해서 배웠다.
▷ ‘배움(學)’에는 '익힘(習)'의 개념도 포함된다. 머리로만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배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학문'은 '지행합일 知行合一', 즉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일을 매우 중시했다.
( 2 ) 사색(思)
그렇다면 ‘사색(思)’의 방법은 무엇일까?
“공자님은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셨대요?”
독문과 차교수님은 늘 감탄하셨다. 전공도 전혀 다르건만, 교수님은 늘 열린 마음으로 한참 어린 후학인 나에게 토론을 청하셨다.
동아시아에서 ‘학문’의 목적은 뭐죠?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거죠.
범위와 대상은? 천지인天地人, 요새 말로 하자면 우주와 대자연과 인간세계겠죠.
그 엄청나게 넓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공자님은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다 알았대요?
‘배움’과 ‘사색’을 통해서였다. 방법은 ‘소리 듣기’였다.
공자에게는 특정 인물로서의 스승이 없었다. 그의 배움은 주로 '책'을 통해 이루어졌다.
공자의 '배움'은 글 속에 녹음된 글쓴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고,
공자의 ‘사색’은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참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그는 '참 나'의 소리를 경청하며 타인의 목소리와 대자연과 우주의 내면에 흐르는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나’라는 존재가 인간인 이상, ‘참 나’의 목소리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우주와 대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보편적 원리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주와 대자연의 내재원리도 깨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 개를 알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색’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소리 듣기’를 말한다. ‘현상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 듣기’다. 사색과 명상을 통해 ‘나’와 우주의 내면에 흐르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대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삶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옛 지성인들은 귀에 들리는 ‘현상의 소리’보다는, 사색을 통해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希聲)’, ‘소리 없는 소리(無聲)’와 같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리 듣기’란 ‘공기의 떨림 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소리’를 듣는 단순한 ‘청각작용’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결합된 총체적이고 입체적이며 청각적이고 감성적인 ‘학문하기’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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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늘 소리를 들었다. 현상세계의 소리(음악과 같은)가 지니는 청각효과에 주목하고 그를 적극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 없는 소리에도 늘 귀를 기울였다. 특별히 공자는 예순 나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순 나이에는 귀가 순해져야 한다. 六十而耳順"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그와 정반대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 연세가 되신 양반들은 대체로 무슨 말을 들어도 노엽기만 하다. 서글프고 야속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자신만의 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내면세계에 흐르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래 살아온 그만큼 아상我相과 아집我執만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무슨 말을 들어도 귀가 순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순 나이 정도 삶의 연륜이 쌓이면, 상대방 언어의 이면에 숨어있는 우여곡절 파란만장했던 삶의 순간순간마다 터뜨렸던 통곡 소리를 듣고 너그럽게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일흔 살이 되자 공자는 마침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내면의 소리가 시키는 그대로 행동해도 조금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논어論語 · 위정爲政》참고.
공자는 늘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공자의 '사색'이란 바로 '내면의 소리 듣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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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사색'도 마찬가지다. '내면의 소리 듣기'다.
불교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존재가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중생들이 외치는 고통과 질곡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의 가엾은 영혼을 구제해 준다는 존재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 ‘소리’를 ‘듣는다(聽)’고 표현하지 않고, ‘본다(觀)’고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보는 것도 그냥 단순하게 눈으로 보는 ‘볼 간(看)’이나 ‘보일 견(見)’이 아니다. 모든 것을 초월해서 관조해 본다는 의미의 '관(觀)’이라는 글자를 사용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세음보살이 듣는 것은 ‘현상의 소리’가 아니다. 고통에 빠진 중생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이 '보는 행위(觀)’는 시각 행위가 아니다. 청각 행위인 동시에 '사색'과 '사유'의 행위인 것이다.
금동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사색'과 '사유'는 삼라만상의 내면에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
옛 지정번호 국보 제7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념念 [niàn, 니엔(↘)]’이란 글자가 있다.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생각하다, 사색에 잠기다.
② 소리 내어 읽다
'사색'이 ‘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念書[niànshū]’라는 단어도 있다. 여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소리 내어 책을 읽다
② 공부하다
'공부' 역시 '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사색'이 아주 중요한 '공부'의 하나라는 사실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독서讀書는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이지만, 니엔(↘)ㄹ쑤(→), 念書는 소리로 책을 읽는 행위다.
어떤 것이 더 깊이 뇌리에 남을까?
20여 년 전, 동틀 무렵 중국의 대학 캠퍼스에 가면 학생들이 소리를 내며 공부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교정 곳곳마다 수백수천의 학생들이 3~4m 간격으로 서서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외국어 공부는 물론이고 수학 물리 공부도 그렇게 소리 내어 읽었다. 유명 대학일수록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욱 많았다.
“선생님, 그럼 도서관에서도 소리 내어 공부하나요?”
물론이다. 단지 도서관에서는 현상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로 공부한다. 책의 저자를 모셔 와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하듯 읽는 것이 제대로 된 ‘독서’ 요, 공부다. ‘공부’란 다름 아닌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인 것이다.
‘념念’이 들어간 다른 단어들도 ‘소리’로 풀이해 보자.
◎ 기념記念: ‘기억할 기記’, ‘내면의 소리 념念’.
'기념'이란 내면의 소리를 기억하는 행위다. 정신을 집중하여 사물의 내면에 흐르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기념’이다. 옛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시절 님의 목소리를 재생해서 듣는 것. 함께 산책했던 대나무 숲길 속의 바람소리를 뇌리에 재생하여 듣는 것이 '기념'의 참 뜻이다.
우리는 흔히 글로 메모하고, 사진을 찍고, 물건을 주고받아 기념을 한다. 그런 기념은 참된 기념이 아니다. 자신의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때의 그 소리와 그 분위기와 그 느낌을 기억하기가 귀찮아서, 시각적인 것에 자신의 기억을 대신 맡겨두는 나태한 행위에 불과하다. ‘기념’이란 내면의 소리를 기억하고, 영혼을 기억하는 일. 그렇게 기억해 둔 소리와 영혼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기념'이다.
◎ 상념想念: 기념했던 그 소리를 다시금 뇌리에서 복원하여 듣다. 옛사랑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으면서 그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상념에 잠긴다'라고 표현한다.
◎ 전념專念: 정신을 집중하여 그 어떤 소리 하나만을 듣는다. 등등...
생각한다는 행위는 모두 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을 '사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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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도 평소에 생각이 많은데 그럼 좋은 거 아녜요?”
가끔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도 있다. 하하, 너무 귀엽지만 아니다. 생각이 많은 건 잡생각, 잡념雜念이라고 한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면 정신분열증에 걸리기 쉽다. 그런 잡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격물치지!
사색으로 지혜를 얻는 비결은 하나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 하지 않는가!
이상으로 격물치지의 실천 강령으로
공자가 제시한 '배움(學)'과 '사색(思)'의 구체적 방법인 '소리 듣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래도 '내면의 소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노장老莊 사상은 여기에 대해 상당히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다음에는 노장 사상에서 말하는 '소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대학 大學
# 격물치지 格物致知
# ‘배움(學)’과 ‘사색(思)’
# 소리
# 문일지십聞一知十
# 이순 耳順
# 기념 記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