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Feb 29. 2024

4. 풍류 익어 벗님들 꽃봉오리 터졌지만

김대술 신부님의 삼부작 시집 마무리 소회

[님을 위한 글감 자료 사랑방]을 오픈했습니다.

'님'이 누구인지, 다 아시죠? 바로 여러분 작가님 & 독자님이십니다. ^^

<동아시아의 창세기 일장 일절>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 이곳에 동아시아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창작 인스피레이션이 파바박~~ 샘솟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큽니다.

분수 넘은 짓거리를 벌여서 작가님들께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혹시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지는 않을지,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점점 고질적인 직업병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일을 벌이고 나니 두려워집니다.

기탄없는 질정을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김대술 신부님의 시집 세 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바다의 푸른 눈동자》(2013),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2018), 《수원방랑》(2021).


성공회 사제이신 김대술 신부님은 20여 년 동안 나환우, 나눔의 집,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빈민 사목을 하셨습니다. 특히 2019년 초까지는 수원 다시서기지원센터의 장長으로 근무하셨는데요, 이때 노숙인과 함께 뒹군 거리의 이야기들을 세 권의 시집에 담아 출간했던 사제 시인이십니다.


제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2016년부터 경기도와 수원시의 위탁을 받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시작할 그 무렵, 하필이면 제가 보직을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되는 바람에 신부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2020년에 신부님이 강화도로 근무처를 옮기셨을 때였습니다. 수원 시절의 남은 글을 모아 《수원 방랑》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시집을 내신다며 제게 '독후감(해설?)'을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시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지라 완곡히 사양했습니다만, 결국 신부님을 응원하는 마음 하나로 감히 소개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앞서 세 번에 걸쳐 김대술 신부님의 시집 세 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첫 번째 시집 독후감은 바다의 푸른 눈동자참조하시고요,

두 번째 시집 독후감은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참조하시고요,

세 번째 시집 독후감은 수원 방랑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그 마무리 소회입니다.



벗님이 그리운 순례자의 생명 교향곡 3부작 (완)



《수원 방랑》을 비롯한 김대술 신부님의 삼부작 시집은 노숙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노숙인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한 혁명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루저가 되어 괴롭게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삼부작 시집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절망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다. 기도하고 명상하여 깨친 대로 행동하는 사랑의 실천 노래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참된 삶인 것인지, 어떤 생존의 방법으로 어떻게 인류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휴머니스트 순례자의 생명 교향곡이다.



풍류 익어 벗님들 꽃봉오리 터졌지만


그러나 순례자는 벗님이 그립다. 일망무제의 대초원을 지나 아스라이 줄지어선 히말라야 연봉으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 티베트고원의 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오체투지의 험난한 순례길에는 반드시 도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물며 그보다 더욱 고되고 슬픈 이 땅의 실천적 순례의 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가는 길 끊어져도

눈 오시면 맞이하던

소년에게 가득한 신화  … 중략 …

끊어질 수 없다고

산과 강 연줄에 달려

백두산 넘은 만주벌판

독립군 하얀 호랑이

겨울밤도 차곡차곡 쌓였다.

텅 비어 고요한 섬

독산 넘어 연을 띄우면

그대 오시는 그리움 가득하다

- <슬픔이,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에서


매화 향기 쫓아 쪽배 타고 건너갈 때

구름 속 달도 빼꼼히 강줄기 비추었다  … 중략 …

풍류 익어 벗님들 꽃봉오리 터졌지만

엊그제 홍안 되돌릴 수 없어 터벅터벅

- <당신이 그리울 때면>에서     


힘들고 외로운 길에서 순례자는 길동무 벗님이 마냥 그립다.

‘벗 붕朋’은 대붕大鵬, ‘큰 새 붕鵬’의 편방 글자다. ‘대붕의 두 날개’라는 뜻. 


대붕은 온전한 두 날개가 함께 힘찬 날갯짓을 해줘야만 구만리 창공으로 날아올라갈 수 있다. 한쪽 날개로 힘겹게 날고 있는 순례자는, 어딘가 존재할 또 한쪽 날개의 ‘그대’에게 그리움의 연을 띄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순례길의 도반은 못 되지만, 종종 강화도로 쳐들어가서 막걸리 벗님이나 해드려야겠다.      


이 두 편의 시는 뜻도 좋지만 낭송하기에도 그만이다. 풍류 익어 벗님들 꽃봉오리 터졌지만 엊그제 홍안 되돌릴 수 없어 터벅터벅…. 특히 이 구절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거대 담론을 떠나서 그저 벗님이 그리운 모든 사람들에게 길이 회자膾炙될 명구名句다.


신부님의 삼부작 생명교향곡은 대부분 낭송하기가 힘들지만, 입에 올리면 옥구슬 구르는 듯 귀가 즐거운 청아한 구절들도 사이사이 숨어있다. 인내하며 숨바꼭질하듯 그 낭창한 청각적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도 시집을 읽는 커다란 재미일 것이다. 99%의 괴로움 속에서 1%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삶의 재미 아니던가.


<끝>



남은 이야기 ― 살아있는 성자聖者


나는 신부님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신부님은 어느 광야에서 삭풍을 맞고 싸우던 독립군의 후손이다. 제주도 4.3. 사건의 피해자 후손이기도 하다. “전철에 끼어 숨지고 기계에 갈아져 나오고 길에서 옥상에서 굴뚝 위에서 절망을 토해”내는 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늘 죄짓는 마음... 모순의 현실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신부님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날마다 가난을 밝히는 별을 그리워하는 삶"을 고집하시는 게 화가 난다. 그러다가 얼마 전 기어이 큰 병에 걸려 이제는 목소리도 거의 안 나온다. 전화도 길게 하지 못하고, 술 한 방울도 못 드신다. '김술'이 '김술'도 아니고 아예 '김술'이 되다니... 막걸리 벗님조차 못 해 드린다니, 가슴이 먹먹하다. 이 기막힌 상황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신부님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신부님은 얼마 전 은퇴를 하셨다. 그런데 연금이 거의 없다. 하릴없이 그 몸으로 다시 노동 현장에 뛰어드셨다. 그 몸으로 네 번째 시집, <그 먼 어느 젊은 별에게>를 내셨다. 어느 독지가가 200만 원을 보냈더니만 냉큼 대한적십자사 특별회비로 내셨다. <'노숙인의 대부' 김대술 신부, 시집 출간 후원금 기부> 1, 2년 사이에 부쩍 핼쑥해지신 얼굴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화가 나서 혼자 엉엉 운다.


나는 박효영 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박효영 님은 수원시 다시서기지원센터의 팀장이다. 김대술 신부님이 노숙인 선생님들의 대부라면 박 팀장님은 엄마이자 누이다. 나이도 젊다. 심지어 예쁘고 날씬하다. 남자들의 시큼털털 걸쭉한 농담도 방글방글 웃으며 다 받아준다. 속상하면 뒤에서 혼자 운다. 매일매일 속상한데 매일매일 방글방글 웃고 매일매일 숨어서 운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없다.


신부님의 다시서기 지원 계획은 일회성이 아니다. 일 년 동안 교육을 진행한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일당을 준다. 당일 지급이 아니라 교육이 끝날 때 모아서 준다. 돈으로 주는 게 아니다. 수원시와 연계하여 '집'으로 준다. 취업도 알선해 준다. 본인들이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활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첫출발이 어렵다. 본인의 참여 의지를 확인해서 20~30명의 인원을 모아야 하는데, 대부분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박효영 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박효영 님은 또 다른 소명의식의 소유자인 김석 팀장님과 함께 수원역 일대 곳곳에 쓰러져 누워있는 '그분'들을 찾아간다. 보통 사람은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낸다. 가까이 가면 퀴퀴한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그런데 박효영 님은 그분들이 자기 가족이다. 눈물을 흘리며 따스한 목소리로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박효영 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우리는 '노숙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노숙인 인문학 교육'은 '어깨동무 인문학 교육'이라고 했다. 다른 예산을 아껴서 1년에 번씩 2박 3일로 답사여행을 갔다. 어떤 보직교수는 그러다가 사고 나면 책임지겠느냐고 나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래도 무시하고 떠날 수 있었던 이유, 신부님과 박효영 님이 있기 때문이다. 싸움이 나면 신부님이 호통을 친다. 팀장님은 뒤에서 눈물로 '선생님'들을 달랜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 사진은 2018년 봄(좌) 강원도 답사와 가을(우) 전라도 답사의 자료집 표지다. <자료집>을 만들어서 상황에 따라 버스 안에서 현장에서 강의를 했다. 학교의 신○호 시설팀장이 턱 없이 부족한 예산 안에서 검색하고 검색하여 싸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주면, 거기에 맞춰서 동선을 짰다.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참고 삼아 자료집의 일부분을 올려드린다. 능력자 신 팀장의 파워로 모두 칼라프린트하여 책으로 제본해서 나누어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강의해주신 여러 교수님과 신 팀장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나는 박효영 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인문학 교육이 끝나면 학교에서 수료식을 열어준다. 대학생들의 졸업식장은 썰렁하지만 어깨동무 수료식장은 뜨겁고 울컥하다. 학교의 신○호 시설팀장의 맹활약으로 시설 좋고 정겨운 장소를 선정하여 '선생님'들에게 학사모와 가운을 입혀준다. 감동의 물결이 소용돌이친다. 종종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박효영 님에게 '금반지'를 선물한다. '선생님'들은 휙휙 휘파람을 불며 기립박수를 치고 박효영 님은 하염없이 운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화성 행궁 부근에서 개최한 노숙인 선생님들의 작품 전시회. 신부님과 박효영 님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다.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 동티베트 해발 4,000m 황량한 고원에서 순례자를 만났다. 석 달 전, 의기투합한 6명의 동네 사람들이 라싸를 향해 오체투지 순례의 여행길에 올랐단다. 전 재산을 털어 먹을 것을 준비해서 리어카 두 대에 실었단다. 번갈아가면서 두 명은 리어카를 끌고, 네 명은 2인 1조로 오체투지를 한다. 


궁금했다.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왜 이 여행을 떠나셨나요?" 별 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무심히 답변한다. "아, 그거야 여행길의 평안함을 위해서죠." 응? 왜 여행을 떠났느냐고 물어보니 여행길의 평안함을 위해서라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선승禪僧의 언어 같다. 


사실은 티베트불교를 조금만 이해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여행을 물어봤지만, 그들이 대답한 여행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 박힌 굳은살을 보며 살아있는 성자의 모습을 보았다. 마음을 바쳐 간절하게 두손 인사를 드렸다. 따시뗄레... 

 


살아있는 성자인 티베트의 순례자들에게는 반드시 도반道伴이 있다. 그보다 더욱 고되고 더욱 슬픈 이 땅의 실천적 순례의 길을 걷는 신부님에게는 그런 도반이 없다. 도반이 되지 못하는 소오생은 슬프기만 하다. 



배우고 늘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而不慍不亦君子乎!

논어論語 · 학이學而



김대술 신부님은 배운 대로 깨달은 대로 실천하는 분이시다. 이따금 '벗님'이 찾아오면 개구쟁이처럼 장난치며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결국은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봄날의 별이 되기 위해 혼자라도 없는 길 만들며 가신다. 공자는 그런 분을 '군자君子'라고 불렀다. 나는 '성자聖者'라고 부른다.



풍류 익어 벗님들 꽃봉오리 터졌지만

엊그제 홍안 되돌릴 수 없어 터벅터벅



신부님, 죄송합니다...

신부님, 존경합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2017.10.21. 동해안.



매거진의 이전글 3. 쟈클린의 눈물, 순례자의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