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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26. 2024

이번 회식은 호텔뷔페입니다.

첫 회식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이었다. 회식장소를 물색하며 마음이 들떠있는 아따씨. 함께 일하면서 모두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없는데 회식은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회식이 결정되고 두 달 전부터 인터넷 리뷰를 뒤지며 식당들을 서치하고 메뉴를 고민하는 아따씨가 보였다. 한편으론 회식이란 게 밥만 먹고 일어나는 거라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저리도 좋을까 싶어 걱정되기도 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아 회식이란 문화를 접하진 못해서였겠지만 실망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아따씨야! 회식이란 게 별 게 아니에요. 밥만 먹고 집에 가는 거라고요."

"예? 차도 안 마시고 밥만 먹고 일어난다고요?"

"친구들하고 밥 먹습니까? 차는 무슨 찹니까. 물론 다른 곳에는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니라고요. 깔끔하게 밥만 먹고 일어나니까 기대하지 마시라고요."


평소 맛집 탐방을 좋아했던 그녀는 먹거리에 진심이었다. 익숙한 것들만 챙겨 먹는 나와는 달리 여러 종류의 메뉴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한참 동안 먹거리 선정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그대에게 일식과 양식, 한식이 모두 있는 뷔페로 정하자고 말했다. 메뉴에 대한 고민과 양에 대한 부담도 없으니 깔끔했다.


"과장님! 호텔 뷔페로 7시에 예약했어요."

"그래요? 사장님 이름으로 예약해 놓은 거죠?"

"예? 내 이름으로 예약해 놨는데요."

"뭐라고요. 님이 돈을 내십니까?"

"아닌데요. 호텔에서 이름을 물어보길래 그냥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회식하다 체할 일이 있나. 자기 이름으로 예약을 하다니. 사장님한테 찍히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다. 예약자명단으로 눈치덩어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현실을 알려주어야 했다.

"보통 회식을 할 때는 회사명을 넣거나 사장님 이름으로 예약을 남기는 게 좋지요. 사장님 체면도 있고 우리가 얻어먹는 입장인데 이런 식으로 하시면 그대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네요. 그럼 어떡해요?"

"사장님 눈 밖에 나기 전에 호텔에 전화해서 예약자 이름을 바꿔야겠지요."

"아. 알았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다.


회식날 저녁. 호텔뷔페에 모여 각자 접시에 먹을 음식을 담았다. 예약을 하고 왔기에 스테이크가 기본으로 나오는데 식탁  추가로 놓을 자리가 없었다.

"아따씨야. 접시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스테이크 놓을 자리가 없어요."

"먹고 싶은 거 이것저것 담았더니 그렇네요. 그냥 제 거는 여기 포개놓을게요."


그대 자리에만 가득한 접시들. 생각보다 많이 먹지도 않는 그대는 하나씩 먹다가 국수를 가져오고 그 국수를 먹다가 김치를 가지러 가는 식이었다. 옆자리에서 들썩거리며 접시들만 쌓여가니 내 호기심도 쌓여갔다.

"아따씨야. 그 거 다 먹을 수 있어요?"

"아이. 걱정 마세요. 다 먹습니다. 근데 이 빵 하나만 먹어 보세요. 맛있는데 많이 들고 왔네요."

"이 빵은 처음부터 있더니 아직도 있습니까. 침 다 튀어가지고 맛도 없게 생겼습니다. 제발 한 가지씩 다 먹고 들고 오세요."


회식자리에서 조차 그대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으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나의 장난기를 자극했다. 내가 옆에 있어 불안했던 것일까? 먹던 음식을 앞에 두고도 다른 것을 가져오니 내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 음식 먹는 모습에서도  사람을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잔소리하듯 말하며 접시를 치워주니 그대의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해했다.

"내가 알아서 치울게요."

"아따씨가 치울 게 아니라 직원분이 다니면서 치우는데 정리를 해서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치우고 싶어도 음식이 있어 서성거리는 직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아 알겠어요. 과장님! 그만 치우세요."

"나도 그만 치우고 싶은데 그대의 식탁이 너무 지저분합니다. 여기저기 빵부스러기며 소스는 또 왜 이렇게 많습니까. 다 먹지도 못할 거 조금만 들고 오지. 어? 스테이크가 있네. 스테이크는 왜 안 먹어요?"

"배 불러서 못 먹겠어요."

"아~ 아까워라. 봉지에 싸서 집에 있는 애들 주기라도 하지. 아이고 버리는 게 반이에요."


그날 아따씨가 먹은 음식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식탁도 정리하면서 먹어야 마음이 편한 나는 아따씨의 식탁이 어지러워 보였다. 그 어지러운 식탁의 접시를 치우면서도 잔소리와 장난기가 발동하니 회식자리는 마냥 좋은 자리가 아닌 게 확실했다.


음식과 잔소리가 섞여 배불리 붉어진 아따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으시지요?"

"예. 우리 신랑이 그리워지네요."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두 번째 회식이 결정됐다. 메뉴는 월남쌈 뷔페인데 야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우연찮게 식당을 알려주면서 정하게 됐다. 좋아하는 야채를 먹고 좀 조용히 있으라는 뜻인가?


"아! 그 식당은 예약이 안 돼서 일찍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해요."

"그러면 가 먼저 가서 앉아 있을게요."

"식당에 가면 쌈이나 먹거리가 많으니 파트를 나눠서 가지러 가야 해요. 과장님은 쌈채소를 담당하세요. 우리는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담아 올 테니."

"아이쿠야.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예행연습하십니까?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잘하시겠는데요."

"아이. 일하는 거하고 먹는 거 하고 다르지요. 아! 그리고 과장님은 내 옆에 앉지 마세요."

"왜요?"

"또 이것저것 가지고 온다고 잔소리할까 봐요. 과장님 하고 떨어져 앉을 거예요."

"예? 뻔한 4명에서 앞이나 옆이 아니면 어디에 앉는다는 말씀입니까? 혹시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드실 겁니까?"

"아! 그러네. 피할 곳이 없네. 아무튼 그날은 잔소리하지 마시고 기분 좋게 음식만 드세요."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확신할 수 없습니다."


회식날이 정해지고 식당의 동선과 먹을 때 주의사항까지 알려주는 것이 먹거리에 진심인 아따씨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반응하는 점이 다르다지만 '진심으로'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는 경우였다. 처음 회식 때 아따씨의 취향을 알게 됐으니 내 호기심은 채워졌고 좋은 기분으로 감사하게 먹자라는 마음만 가지면 되겠다. 사방팔방 튀는 야채와 음식들에 나의 잔소리가 더해질 수 있겠지만 유쾌한 회식시간을 위해 인내심과 미소를 연습해 놔야겠다.





진심인 그대의 얼굴


그대는 먹거리를

진심으로 애정한다

먹거리에 감동하고

먹거리에 설레한다


제품의 선별과

재고의 유무는

그대의 관심밖


식당 동선들

그곳 음식들

그 먹거리 종류와

재고만을 생각한다


진심인 그대의 얼굴

심각하다

걱정스런 그대 얼굴

염려스럽다


우리 매장의 물건보다

타 매장에 먹거리를

애정하다니

진심으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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