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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22. 2023

"대통령 노무현"은 과연 유능한 지도자였는가?

대한민국 정치인-5

https://youtu.be/pXkrkWBxfCc?si=pKQUsvrhYjSCFxlF

(사실 브런치 특성상 진보 내지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꽤 많은 플랫폼이라 이런 주제로 올리기가 조금 망설여졌는데 한번 써보기로 했다.)


노무현은 한국 정치에서 호감이 가장 높은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다. 보수 진영에서 박정희를 존경한다면 민주당에서는 노무현이 있다고 할 정도. 이러한 노무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노무현입니다>였고 노무현과는 전혀 정치적인 연관이 없던 이재명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고, 또 노무현 퇴진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던 이낙연이 노무현의 후계자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하는 등 민주당계 진영에서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김대중 그 이상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래도 약간 내 생각을 밝히자면 80년대 당시 "검사는 홍준표처럼, 판사는 이회창처럼, 변호사는 노무현처럼"이라는 말이 있었던 만큼 대통령, 정치인이라는 자리를 떠나서 바라본 인간 노무현은 충분히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노무현입니다>, <변호인> 모두 나는 재밌게 보기도 했고 노무현이 말년에 검찰 수사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홍준표나 박형준도 일부분 인정하듯이 솔직히 치졸한 정치보복, 모욕주기식 수사에 가까웠다고 보기에 동정심도 있는 편이다. 정책적으로도 자주국방 기조나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라크 파병, 사스 대응, 주 5일제 시행, 전작권 회수 시도, 국가보훈사업 확대 만큼은 굉장한 업적이라 보고 있고.


그렇기에 이 글은 특별히 흔히 그가 비판받을 때 많이 사용되는 노무현이 빨갱이네 어쩌네 하려는 색깔론으로 까진 않을 거라고 미리 밝혀둔다. 내가 오늘날 민주당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고 문재인에 대해서 굉장히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김대중 만큼은 개인적으로 존경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노무현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확실하게 인정하기 때문. 햇볕정책 문제도 저번 김대중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일부 우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운동권들이 이상론에 빠져 우리 민족 끼리 잘해보자는 감정 하나로 막무가내로 추진한 정책은 아니라고 보며 결과론적으로 잘 안되었을지언정 당시로써는 한번쯤 도전해볼 만했다고 얘기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 불리는데 이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은 서민 냄새난다는 노무현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솔직히 말해 낙제점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취임 직후부터 양극화 해소, 국가 균형발전, 동반 성장,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 등 '아름다운' 정책목표들을 내걸고 다양한 시책들을 시행했지만 정권 말인 2007년에 전국가구의 5분위 소득 분배율이 7.64배로 전년보다 0.08% 높아지면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이라면 참여정부보다 기업 중심의 성장을 강조하고 또 복지 축소 및 민영화 논란이 매우 심하게 나오던 이명박 시절에 오히려 지니계수가 낮게 나왔다는 것.


복지 분야에서는 그래도 무조건 나쁘지는 않았다. 노무현 시기 "사회투자국가론"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재정 중에서 복지예산 비중은 2002년 19.9%에서 2006년에는 27.9%로 급격하게 커졌고 이렇게 늘어난 예산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사회보험, 의료복지, 보육, 노인과 장애인 복지에 투입해 나름의 효과를 보았다. 사회보험제도의 적용-징수를 일원화한 것도 나름의 업적이고 박근혜-문재인-윤석열까지 이어지는 오늘날 시대의 화두인 "양극화"를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담론화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었다는 점에서 그 부분은 높게 볼 만하다. 뭐, 당시 사회투자국가론은 한나라당, 민노당 양쪽에서 비판받았지만.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분배 정책은 문제점도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절대빈곤율이 1996년 3.51%에서 2006년 12.76%로 크게 악화된 것이었다. 또 복지예산을 대대적으로 확충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빈곤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이는 정권 중반기 2005년 말 현재 832만 명이 중위소득 50%에 미치지 못 하는 상대적 빈곤층이라는 연구결과까지 나오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부동산 정책은 대실패로 끝났다. 그 당시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값이 폭등하여 도심 한복판과 산골짜기의 땅값이 비슷해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서민들의 삶은 크게 붕괴하였고 국제적인 활황과 부동산 폭등에 맞물려 GDP는 크게 올랐지만 잠재성장률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저성장 국면이 되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군사정권 이후로 거의 최초로 평택 대추리 시위 진압에 군부대를 출동시켰고 그 결과로 시위대에 참가한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의 시위 진압이면 이명박근혜 당시보다 훨씬 더 강경한 진압이었으며 전용철이라는 사람은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 곤봉에 맞아 죽었다. 명박산성의 원조 역시 무현산성이고. 노무현은 당시 대책 없이 농업을 개방하고 쌀 수입 제한을 다 해제시켜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였고 비정규직을 마구 양산시켰다. 그러니 농민들이나 저소득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기득권 통치자에 불과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실제로 노무현 정부 내내 정부여당은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도 계속 충돌을 빚어댔으니 말이다.


그리고 동북아 균형론자론은 의도를 다 떠나 불가능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최선의 외교란 지정학적으로 미중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에서 주 어느 한 강대국 A로부터 확실하게 보장을 받아 그쪽 편에 서있으면서도 다른 주변국 B와도 최대한 불필요한 갈등은 자제하여 투트랙적으로 이익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후에 조금씩 천천히 충격을 최대한 덜 입으면서 A, B 양국 사이에서 한 국가의 편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론자론은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마저도 잘 못하면서도 정작 중국의 대전략에 편중된 듯한 스탠스를 취하다가 김대중식 다자협력은 개뿔 고립만 되었다. 노무현 때는 그래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긴 했고 또 한미 FTA 같이 우리를 보장해주는 우방과 손잡을 때는 확실하게 했지만 노무현의 계승자 문재인이 한 "한반도 운전자론"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 하나로 완전히 대실패로 끝장났다.

(그래도 문재인이 한미 미사일 거리지침 해제시킨 것만큼은 높이 본다)


노무현의 정치적 능력, 협치 능력도 솔직히 전임자 김대중을 따라가기는 커녕 너무 수준이 미달일 정도였다. 노무현은 야당과의 협력은 커녕 오히려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여당이었던 기존 새천년민주당을 분열시키고 박살내버렸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는 노무현이 대선 때 사용한 경비 44억 원을 고스란히 새천년민주당 몫의 빚으로 남긴 채 탈당하여 먹튀해버렸기에 기존 새천년민주당으로부터 더욱 더 분노를 살 수 밖에 없었고 이게 2004년 탄핵 사태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 자민련과 연합해 찬성표를 던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야당의 노무현 탄핵 발의가 명분 없는 병크인 것과 별개로 애당초 노무현이 야당을 자극하고 심지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까지도 대북송금 특검으로 깨부수는 짓을 자제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반면 노무현의 전임자 김대중은 야당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했으며 오히려 구 여권층 인사들을 등용하고 보수 정당인 자민련과 연정을 하기도 할 정도로 노련한 정치력을 보였다. 김대중은 서로 대립하는 여러 사안들과 이해관계의 충돌들에 대해서 갈등을 조정하면서 합의를 하는 과정을 중시했고 그래서 보수 정당인 자민련과도 연정이 가능했던 것도 있다. 그러한 타협적인 정치력 덕분에 김대중 하에서 민주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고 집권, 정권 연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며 만약 김대중이 타협하지 않고 노무현처럼 무조건 대결적인 정치만 고집하며 주변을 다 적으로 돌렸다면 민주당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본 입헌민주당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2004년 총선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자폭으로 어찌저찌 150석대 규모의 의석을 얻으며 승리를 거뒀지만 문제는 그 이후 노무현을 둘러싸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개판이 된다. 대연정 파동 실패로 열린우리당이 발칵 뒤집힌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의 대참패, 한미 FTA 문제 등으로 개판 오분 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만의 기반이 없이 무작정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노무현은 그 상황에서 대안도 없이 여권 유력 주자였던 고건을 계속 물어뜯으며 정권 재창출을 방해한다는 비난까지 나올 지경이 되었고 마침내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에 이어 김한길, 정동영, 천정배(대선 경선 당시 유일한 노무현 지지 현역 의원) 같은 노무현 정부 탄생 공신들마저 반노 진영에 편승해 여권 내부에서조차 고립되는 신세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였던 정동영이 대놓고 노무현과 선을 그었음에도 정권 심판론에 힘 얻은 한나라당 이명박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며 노무현에 대한 국민 여론은 2009년 5월 전까지 최악을 달리게 되었다.


참여정부 시절에 유행어였던 말 중에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것도 있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영화로까지 나올 정도로 좋아진 2010년대 이후로는 상상이 안가는 얘기일테지만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표가 크게 쏠렸을 정도로 당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여당 내부에서조차 말이다. 일각에서, 특히 친노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힘을 합쳐서 노무현 죽이기를 했기에 악의적인 프레임이라고 주장할텐데 뭐 그런 부분이 없진 않은 건 사실이긴 하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노무현을 수사하던 방식은 한나라당의 몇몇 정치인들마저 절레절레할 정도로 너무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는게 보이는 수준이었고 그 이전 2004년 탄핵 사태도 노무현이 아무리 야당과 새천년민주당을 공개적으로 적대한다고 해서 그게 분명 탄핵 사유 조건에 해당된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즉 억까당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노무현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처신을 잘한 건 아니었으며 전임자 김대중 정부의 교훈을 따라가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 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라고 해서 노무현보다 딱히 나을 건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MB 정권 창출 일등공신인 노무현이 잘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일부 친노 세력을 제외한 여야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평가는 바로 실패한 정부, 경포대라는 것이었으며 그 평가가 뒤집힌 건 2009년에 벌어진 비극 이후였다. 당장 후임 대통령인 이명박만 해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다스, BBK 의혹이 그렇게 터져나왔고 이 때문에 훗날 감옥까지 갔다왔지만 2007년 당시에 범 여권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다는 것은 그냥 그 "야비하고 영악한" 이명박을 찍을 만큼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노무현이 싫었다는 얘기다.


이 글을 쓰면서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를 굉장히 안좋게 묘사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나의 평가는 나쁘지 않고 재임기의 정책 중 5일제 시행, 자주국방, 제주해군기지 건설, 전작권 회수 시도, 사스 대응 만큼은 매우매우 고평가하는 업적이라고 본다. 또 아무리 단점이 있다지만 정치적 후계자라고 자칭하는 문재인보다는 적어도 지도자로서 훨씬 나은 대통령이기도 했던 건 확실하다. 다만 내가 이렇게 노무현의 이면을 끄집어낸 것은 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정서와 그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인해 노무현의 어두운 면은 가려지고 인간미만 부각되어 일종의 신화이자 성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일베충으로 몰리니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 서거 10주년이 지난 이제는 그러한 성역화된 노무현에서 벗어나 이면도 바라보고 한계와 대안 모두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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