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인 셈이고 더 자세히 파고 들면 선거 제도를 비롯해 외형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요건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권위주의 구조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혼합 체제라는 게 정확한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북한, 중국, 베트남, 쿠바 같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같은 전제군주제 국가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선출하지 않기에 비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시민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제도적 제한으로 나타나는 정치 체제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의 제4공화국 유신 체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권,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정권,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 체제가 대표적인 비자유민주주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비자유민주주의 사례는 특히나 눈 여겨볼 점이 "주권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이데올로기 토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권 민주주의의 이론적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푸틴 밑에서 제2수석보좌관으로 재임했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라는 자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서방 언론으로부터 "푸틴 체제 실력자", "푸틴의 오른팔", "막후 조정자", "회색 추기경", "제2의 라스푸틴"으로 불리었던 인물로 오늘날 러시아 정치 체제가 형성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친 비 실로비키계 인사 중 하나였다. 참고로 수르코프는 체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이었고 그 덕분에 체첸 전쟁과 연관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태, 2004년 베슬란 학교 테러 사건 등에서 활약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게 되었다.
2004년 베슬란 학교 테러 사건 당시, 러시아 연방 정부 측은 선출직 주지사를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를 주고 러시아 내 자유주의 세력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푸틴의 편에 선 수르코프는 정권의 홍보 담당으로 나서서 러시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맞지 않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때 그래도 러시아는 주권 차원에서 우위에 있지만 비러시아계 민족은 아예 국가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하였으며 이 시기를 거쳐서 훗날 주권 민주주의라는 러시아 정치 체제 이념의 토대가 되는 제한적 민주주의 이론의 기초가 다져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주권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공식 석상에서 언급된 것은 2006년 2월 통합 러시아당 당대회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되었을 때인데 이후 그해 연말까지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푸틴과 수르코프
주권 민주주의의 기초는 자신의 대속자는 인민을 대표하기로 한 것이기에 민주적 독재자이며 러시아 체제를 떠받드는 기둥은 중앙 집권, 인격화, 이상화라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는 통일되어야 하고 국가의 권위는 한 개인에게 부여되어야 하며 그 개인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수르코프는 적백내전 시기 러시아 백군 계열의 사상가였던 이반 일린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인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는 만큼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근거로 러시아 민주주의는 2000년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국유재산을 점유하고 국민의 권력을 찬탈한 과두재벌에 제재를 가하고 그들 소유의 언론에 대해 국가의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간신히 되살아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주권 민주주의라는 러시아식 민주주의는 러시아에 맞는 민주주의라야 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서방의 ‘자유민주주의’를 반드시 추종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수르코프는 러시아를 서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바라보았으며 그렇기에 서구식 민주주의는 러시아에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했다. 당연히 러시아는 러시아식 전통과 공동체 문화에 입각하여 "강한 국가", "강한 중앙", "강한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주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주권(suverenitet)과 민주주의와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는데 따라서 여러가지 요인의 외부적 압력과 위협으로부터 격리하고 동시에 러시아 내부에서 심각한 부패, 범죄, 올리가르히(독점 재벌)들의 횡포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체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주권에 대한 3대 위협으로 수르코프가 규정한 것은 바로 색깔혁명, 테러리즘, 경제적 경쟁력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등에서 서방 세계가 약체 정부를 상대로 색깔혁명이라는 쿠데타를 사주하여 인접해있는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위기의식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게 훗날의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또 만약 러시아가 1990년대 당시처럼 제 앞가림을 못한다면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식민지화의 위협 앞에 놓일 것이고 주권이라는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 방법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자원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크게 키우고 밀 생산량을 바탕으로 식량 자급자족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소련 시절 천연자원 관련 지도
다만 그렇다고 수르코프가 극단적인 배타적 국수주의자인가, 하면 그건 좀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수르코프 정도면 후술하겠지만 푸틴 정권 당시 엘리트 인사들 중에서는 상대적이나마 좀 자유주의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푸틴이 권위주의 체제가 매우 강화되었던 시점인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수르코프가 권력의 2인자 자리에서 밀려난 상태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주권 방어라는 전략의 일환으로서 러시아의 주력 산업인 연료-에너지 부문과 정보, 통신, 금융 및 방위 산업 등에서 대해서는 확실하게 러시아 정부나 자본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러시아의 주권을 보존하기 위한 방어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통합 러시아당이 적어도 10~15년을 집권해야 한다는 것이 수르코프의 생각이었다.
수르코프는 이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수직적인 권력의 작동, 즉 위로부터 지휘받고 사회의 지나친 갈등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제안했다. 또한 주권 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위해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는 푸틴 정권의 권력 장악과 여권인 통합 러시아당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푸틴은 주권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의구심을 표한 적도 있었지만 푸틴 2기부터는 통합 러시아당의 강령에 주권 민주주의가 추가될 정도로 러시아 정치 체제의 사실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무튼주권 민주주의에 대한 수르코프의 전달하고자 하는 요지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강조되는 것은 민주주의보다 아니라 주권이 더 주체이며 우리는 "우리식 민주주의"를 고수할 것이며 서방 세계는 구 소련권 지역에서색깔혁명 같은 허튼 짓할 생각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사실 주권 민주주의의 기원은 다름 아닌 옐친 말부터 푸틴 초기까지의 관리 민주주의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관리 민주주의의 주된 특징으로 무엇보다도 의회를 비롯한 다른 권력의 중심을 압도하는 대통령의 권한, 즉 대통령 대권제, 언론과 비정부 단체 등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조되어 왔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는데 바로 관리 민주주의는 국내 문제에 방점을 뒀다면 주권 민주주의는 국제적인 문제로 범위를 넓혔다는 것이다. 관리 민주주의는 소련 붕괴의 여파 속 국가적 지위의 추락, 올리가르히 세력의 지배와 횡포, 총체적인 현대화 실패 등의 상황에서 나와 푸틴 초기까지 러시아 국내 통제 정책의 정당화 근거로 썼다. 반면에 주권 민주주의는 글로벌 경쟁, 에너지 자원 확보, 색깔혁명에 대한 반격이라는 국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관리 민주주의나, 주권 민주주의나 둘 다 민족과 세계 공동체의 시각에서 집권 세력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지위를 유지하는데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 역시 크다.
러시아 정당별 정치적 스펙트럼. 가장 오른쪽-권위주의에는 자유민주당이, 왼쪽-권위주의에는 연방 공산당이 있다.
2007년 당시 러시아 국내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러시아 국민의 36%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반면에 비슷한 수치인 33%가 전제 통치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왜 러시아인들은 주권 민주주의라는 비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동의를 한 것일까? 우선 사회 질서, 안보적인 이유로 보자면 옐친의 서구식 민주주의 정권 동안 국가적인 혼란과 국제적인 영향력 추락 사태가 너무 심각했던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그 대안으로 소비에트 시절과 같은 강한 리더쉽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고 위에서 언급한 2007년 여론조사도 구 소련의 충격의 여파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이후임에도 그런 맥락에서 저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또 냉전이 끝난 이후부터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핵심 회원국이던 체코와 폴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거나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며 색깔혁명 우려가 나오는 등의 러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지정학적 악조건들이 연달아 생겨났기 때문에 국제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던지는 의제인 주권 민주주의가 차선으로라도 느껴졌을 것이다.
국내 정치적인 요인을 보면 20세기 소련 말기부터 시작된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이 너무 처참한 결과만 만들어냈던 이유도 있다. 고르바초프부터 옐친에 이르는 기간 동안 러시아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무분별하게 수용했으며 소련 경제가 서구 자본에 의한 시경경제화에 기초된 식민 민주주의로 변해갔다. 이 시기의 개혁은 다당제, 의회, 민주적 선거, 대통령제 등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이식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대실패로 끝났다. 특히 선전 매체들로 하여금 서구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그렇게나 강조하였음에도 개방된 경제는 곧 미국과 서유럽의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취약한 구조로 변해가며 하필 정치체제의 과도기 단계에 국가자율성 문제가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식민 민주주의라는 1990년대 러시아 경제의 흐름을 만들어냈으며 페레스트로이카의 당사자였던 그 고르바초프조차도 중국처럼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했다며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급격한 개혁개방의 흐름은 러시아인들에게 시장화의 장점보단 반감만 더 키웠다.
당연히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정당제도는 너무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며 발전하지 못한 채 퇴보만 했기에 국민의 불신을 키웠고, 이게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 중심의 주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제정 러시아에서 소련 시대를 거치며 러시아인들은 시민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래서 애초부터 정당정치의 사회적 기반이라는 게 거의 없었던 상태로 출발했다. 푸틴 초기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78%가 정당을 불신한다는 응답을 할 정도. 아무튼 러시아의 정당은 의회에 뿌리 내리지 못했고 원래 개념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차르를 중심으로한 귀족 봉건제인 제정 러시아 시대 뿐만 아니라 비교적 소련 시대까지도 명확한 중앙집권 체제 하에서 수직적인 구조에 익숙해져서 의회보다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았기에 정당 정치라는 개념에 냉소적이었다.
수르코프는 러시아 정치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기틀을 만드는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엘리트 인사다.
그러나 주권 민주주의는 2008년 푸틴에서 메드베데프로 권력이 교체되며 약간 주춤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드베데프는 푸틴 계열 인사였지만 한편으로는 푸틴에 비하면 친 서구적이고 온건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2년에 부정선거와 관련된 대규모 항의 시위들이 연발하자 수르코프는 "시위자들 중에는 우리나라 지도층의 보수파를 만족시킬 수 없는 최우등국민 몇명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발언했고 결국 해임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수르코프는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긴 하다. 일례로 해임된 이후에 수르코프가 통합러시아당 하부 조직인 청년단체 '나쉬'를 창립하려 애쓰기도 하였으며 정권 밖에서 푸틴을 지원하는 행보를 펼친 것이다.
그러나 수르코프가 어쨌든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기에 예전 만큼의 입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그가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계 출신이고 KGB로 대표되는 실로비키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푸틴이 거리를 뒀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었고 또한 푸틴의 최측근들인 모스크바 수뇌부 중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영리하면서도 자신의 영리함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하는 눈초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권 내부의집중 공격 대상이어서 밀려난 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었다. 뭐 자세한 진실은 모르겠지만 다 떠나서 지금 언론에서는 메드베데프, 쇼이구, 보르트니코프, 얼마 전에 죽은 프리고진 같은 정권 관련 인물들이 이제는 푸틴 정권의 기틀을 다진 수르코프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라 나쁘게 말하면 "퇴물"이 된상태다.
이처럼 수르코프가 형성한 러시아의 비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푸틴 체제의 독주 요인이 되었다. 사진은 2021년 국가두마 선거에서 각 당이 획득한 의석 수.
그렇지만 권력에서 밀려났어도 수르코프가 남긴 주권 민주주의라는 유산은 푸틴이 집권하는 동안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정치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비자유민주주의적 체제가 대표적인 예시일테고 주권에 대한 러시아 정부가 위협으로 간주한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문제 개입 역시 구 소련권 지역에서의 색깔혁명에 대한 반격이라는 "주권" 중심의 민주주의와 연관성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서방의 민주주의는 그 본질과 목표는 똑같지만 러시아에는 서방과는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러시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력한 공권력과 추진력이 시민의 자유와 공존하는 형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푸틴이 연설할 때마다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여가서 주권 민주주의의 늬앙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르코프의 이론은 실질적으로 아직까지 러시아 체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주권 민주주의는 하나의 개념, 하나의 슬로건, 국가적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의 준거로서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기획의 다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개념이 가지고 있는 다의적인 측면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성 주장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암시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