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고애신의 할아버지 고사홍은 죽기 전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
상여는 소박히 하고 음식은 넉넉히 하라.
장례식은 5일간 치르되 문상객은 귀천에 상관없이 받아라.
사는 동안 도움받지 않은 이가 없다.
그는 고종 황제의 스승이었고 의병 활동을 남몰래 지원하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보수의 품격을 지닌 인물이다. (면암 최익현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사는 동안 도움받지 않은 이가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며 '소중한 나'를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 마디이다.
이른 새벽 산책을 할 때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는 분들에게 나는 감사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쓰레기 수거 차량이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갈 때 낮게 진동하는 악취를 느끼고 그 차에서 하루 내내 그 악취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분들의 노고에 나는 공감한 적이 있었던가.
그분들이 있었기에 깨끗한 거리를 걷고 매일 성실하게 생산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으니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도움을 받고 있음은 분명한데 말이다.
며칠 전 "다시, 역사의 쓸모"를 읽다 일제 침략기에 오직 가난한 조선인들을 위해 살다간 미국인 간호사 엘리자베스 요한 셰핑(이후 한국이름 서서평으로 개명)의 헌신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간호 선교를 위해 한국으로 와서 광주의 가난한 지역과 제주 등에서 간호선교사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특히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을 보살폈는데, 입양하여 키운 고아가 14명, 오갈 곳 없는 과부를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38명이었다고 한다.
‘나환자의 어머니’라 불리며 한센병에 걸린 아기를 아들로 입양하여 업어 키우며조선인도 멀리 하던 한센인을 돌보고소록도에 나환자 단독시설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54세의 나이에 영양실조로 유명을 달리한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이름 없이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선교사 니일의 도움을 받아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워 여성교육에 힘쓰기까지 했다. 그녀가 조선에 와서 했던 일들은 일제 침략기에 여성 혼자 해낸 일이라고 믿기 힘든 일들이다. 조선의 '작은 예수'로 불리던 그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머나먼 식민지 나라에 와서 생면부지의 나병 환자를 돌보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살아가던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그녀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해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마약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지금.
의로운 나눔을 실천한 고사홍과 한센병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간 서서평이 품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
나의 행복과 성공은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나의 성공과 부는 결코 나 혼자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돈, 욕심, 욕구로 인한 심리적 카오스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자식들에게 안정된 삶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좋은 집, 넉넉한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과연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보다 내가 도움받지 않은 사람은 없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행복을 전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 작은 소원이 있다면 남편과 나의 가족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함께 살아가고 실천하는 것이다. 부모세대인 우리가 고사홍과 서서평의 정신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