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Simone Adolphine Weil)는 사랑은 방향(direction)이지 영혼의 상태(state)가 아니라고 하였 다. 물론 신학을 동반한 그녀의 사상은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질 수 있지만 영혼을 갈아 넣은 감정은 스스로를 죽이는 독이라는 것을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시간은 공을 들여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육체의 아름다움도, 정신의 명료함도... 내 것이었던 많은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어느 시간에 이르면 인간은 더 이상의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시간이 주는 자연스러움이다.
돌이켜 보니 시간은 한순간도 자비도 베푼 적이 없었다. 인간 속도에 맞추어 기다리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시간의 속도에 맞춰 흘러갔고, 우리 모두는 그런 당연함 속에서 주어진 만큼만 지금도 살았가고 있다.
이리도 답답하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이별을 하고 있다.
떠나는 것도, 남겨지는 것도 매번 아쉽고 무서울 테지만, 그래도 그중 참으로 특별하고 두려운 것은 아마 온 심장을 잡아먹힐 듯 그 사람만 보이던戀人과의 이별이 아니었을까?
별 것 아닌 시답잖은농담이 하루를 웃게 하고,초라하지만 사연 있는자잘한 선물들로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내 연인.이루지 못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아려오고,철없이 상처 줬던미안함 역시 옅어질 뿐사라지지 않는... 그런 소중했던 사람. 나를 가장 이해해 주길 바랐고, 언제나 관심받고 싶어 안달 나게 했던 사람... 나의 삶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하며 인생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던 사람.
자식에 대한사랑은 필연 희생이 따르고, 부모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없는부담감이 생기기 마련이며 우정은 재미와 공감으로 이루어진 사라지기 쉬운 가벼운 관계이다. 하지만 내게 맞추어 시간을 내어주고, 따뜻한 말을 골라 삶을 위로해 주는 연인은 인생이 주는 조금은 다른 형태의 특별함인 것은틀림이 없다.
류시화 시인은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모든 상처는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봐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면 황량한 인생도 살만하지 않을까?
연인에게는 영혼을 담은 필사의 집착은 무의미하다. 그저 삶의 방향을 맞추어 걸어주고, 따뜻하게손을 잡아 주며, 오늘도 고마웠다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하루는 충분히 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