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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Sep 24. 2024

#49 아이고, 손이 미끄러져...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 하지만, 나는 스스로 조심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소 산만한 부분이 분명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건 따위를 쉽게

부수거나 고장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는 한은 물건 따위를

제법 오래 쓰거나, 끝까지 쓰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은 지난밤 차를 마셨던 다기들의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딱히 시간에 쫓겨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딴생각에 잠겨 정신이 팔려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에서 비누칠을 하던 다기가

미끄러지듯 내손을 빠져나와 싱크대 턱에 한번 튕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다기는 나의 노오란 개완의 뚜껑이었다.


"아!..." 의미 없고, 무미건조한 나의 외마디 탄성과 함께,

'와장창!' 하고는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실제 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다. 그저 깨진 모양새가 '와장창!' 같았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재미있는 구절이라 좋아하는 구절인데,

(엄밀히 따지면 소설 제목이지만...)


실제 추락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날개는 없었다.

'날개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평소에 이런 쓸데없는 다소 멍청한 생각을 즐기는 나이지만,

그때는 출근 전이기도 하여,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였지만,


바닥에 떨어져 크게 서너 조각으로 쪼개지고, 파편화되어 흩어진 개완의 뚜껑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멍청한 생각들을 하며,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깝고 속상한 마음도 컸지만, 당시 나는 맨발이었고, 발을 헛디뎠다가는

아침부터 피가 낭자하는 유혈 사태맞이해야 같았고,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는 청소기를 들어 바닥을 대충 정리하고

큰 조각들을 쓸어 모았다. 그렇게 정리를 대충 마치고 나니, 뒤로 미뤄두었던,

아까움과 속상한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개완은 찻잎과 더운물을 붓고는 우려낸 후, 뚜껑을 살짝 열어 찻잎을 걸러내어 찻물만

찻잔으로 따라내어 마시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다기 이기 때문에,

뚜껑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고,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다.


"기왕 깨뜨릴 운명이었다면, 받힘이나 깨뜨리지, 하필 뚜껑을..."

실제 개완의 받힘은 그다지 큰 쓸 모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뚜껑 없는 개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심란하게 고민하다가,

이 개완을 처음 샀던 때가 문뜩 떠올랐다.


이전 까지는 친구가 선물해 준 다기로 차를 마셨던 내게,

이 개완은 내 돈 주고 산 첫 다기였다.

고가의 제품은 아니었지만, 그 연미색보다는 진한 노오란 색깔이 마음에 들어

골랐고, 그 개완 특유의 멋스러움에 이리저리 돌려가며

퍽 마음에 들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들 때문인지 물질적 아까움 보다는,

심적인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더 컸다.

.

.

.

깨진 도자기나 토기들을 복원하는 '킨즈키'라는 기법이 있다.

킨즈키는 감쪽같이 도자기를 복원한다기보다는 되려 깨진 부분을 돋보이게 하여,

이전보다 아름답고, 멋스럽게 이어 붙이는 기법으로,

친구가 자신의 자사호를 수리하며 내게 알려준 기법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관심을 갖고 있던 '킨즈키'라는 기법.

최근 우연찮게, 거진의 기사를 통해 <번역된 도자기>라는 이수경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이 기법에 좀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작품은 여러 깨지고 부서진 도자기들을 아름답게 이어 붙인 작품으로, 제법 거대한,

설치/조형 예술작품이다. 실물로 봤으면 좋았으련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이러한 킨츠키에 도전해 볼까도 고민했지만, 그마저도 관뒀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데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다음에 언젠가 내가 킨츠키 기법을 도전해 보게 된다면,

이 기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고 싶다.


다만 그전에 내 다기들을 더 이상 깨뜨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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