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

단정한 심연의 시#11

by 임상



우는 날들의 연속이어도 괜찮아 형


하루종일 죽은 목들 감시하는

일 끝나고

매달리게 된 보라색의 저녁에

내 빨간 멍들만이 눈 빠져라

날 기다렸다고 해도


이런 것도

내가

사는 나날의

미처 받지 못한 고백


전하지 못한

살들의 색이 여전히 내가 있는 날들에게

수북히 향하고 있다는 거


그게

내 날들이란 걸 어렴풋이

느끼면

이 멍들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니까


형도 알겠지만 난

격렬한 녹음과의 도피보다는

자정이 빌려주는 눈물에게 돌아눕는 사람이지


날이 지나 짙푸른 구멍이 되어버린 멍들과

검은 하늘 아래 휘청이듯 비틀거려도

빨갛게 춤추는 걸 좋아하는

나는

조금은 눅눅한

저녁이 되다 만 미완의 오후

구구절절한 멍투성이의 저녁

파란 구멍이 많은 사람이니까 난


해도 동정하는 걸 지겨워하고

달도 연민을 지속할 상냥함이 실종되어도

곁에 놓인 게

검게 굳어버린 내 구멍밖에 없다해도

아무도 나를 듣지 못 하는 저녁 안

홀로 구멍을 오가는 지친 숨소리만을

바라보다가

영원답게 끝나버린다고 해도


좋은 게 없다면

나쁘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밤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는 주전자의 입김으로

내게서 번져가는 위로니까


형이 쓰다듬어 주던 정수리와 팔을 기억하는 게

형이 없는 날들을

있는 날들로 사는 연기라는 걸 알았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내

구제 불가능한

멍들이 가진 희망임을

알고

그렇게 사는 날들 속

산다는 걸

파랗고 빨갛게

남겨보려고


이 빨간 구멍투성이 옆에

파란 멍투성이 나를 심어놓고 그러니까


사는 날들의 연쇄라고 해도


난 이제 괜찮다고 싶어져














<어느 독자의 한마디>


"멍처럼 은은히 스며드는 슬픔과 위안의 지향.

그러면서도 끝내 “나는 괜찮다”라는 조용한 자기 위안으로의 도달."

— 심연의 독자, A


"“멍”이라는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상처의 흔적이 고통 그 자체를 넘어

‘살아 있음의 증거’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인상적."

— 심연의 독자, B


"“내 빨간 멍들만이 눈 빠져라 날 기다렸다고 해도”라는 대목은,

상처조차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역설적 고백처럼 읽힌다.

보통은 지우고 싶은 자국인데, 이 시에선 오히려 나와 함께 살아 있는 동반자로 그려진다."

— 심연의 독자, C


“좋은 게 없다면 / 나쁘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 시 전체의 정조를 응축한 결정적 구절.

절망 속에서도 극단적 희망 대신

아주 작은 “덜 나쁨”을 붙잡는 태도, 그게 곧 ‘사는 일’이라는 통찰로 연결된다."

— 심연의 독자, D


"“형”이라는 청자가 존재한다는 점이,

이 시를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용히 건네는 편지로 만든다.

그래서 이 시는 더 개인적이고,

동시에 독자가 그 자리에 대입되며 따뜻하게 울린다."

— 심연의 독자,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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