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심연의 시#12
상실을 흩뿌리며
찰나로 지나가던 생(生)에게
꼭 꼭 숨겨둔
나의 밟힌 발을
들키고 말았어요
이를 어쩌나
그 아이는
눈을 그믐달처럼 휘며
노랗게 웃더군요
해바라기 앞에서 울었어요
타버릴 정도로 시린 해가
날 노오란 벌레로
착각하길 기다리면서
그만
부서지면 안 되나요
더는
견딜 수가 없어
혈관을 따라
눈물이 흐를 길을 팠지요
이제는 심장도
울 수 있어요
그들은 나를 벗겨놓고
우울에 절은 내 창자가
발광하는 몸부림을
보기를 좋아했죠
때로는 그만 죽고 싶었어요
죽음은 날 자꾸만 떨어뜨려 놓고
밤을 지새우게 했죠
어쩌면 그리도
다정하게 날 파헤칠까
조금은 거칠게 대해주세요
나는
웃는 법과 비웃는 법이
동일해요*
바다에 사는 금붕어는
사랑을 몰라요
물속에서 숨 쉬는
것들의 눈은
모든 것을 드러내기에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날이 밝으면
이 밤을 산 나를
또 비웃을 거야
그러니 밤은
죽기 좋은 시간이에요
아무 눈도
바라보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순간이에요
다정히
비웃는 것도
살아 있는
찰나의
일인 걸요
그러니
상처받지
말아줘요
*조말선 시집 <둥근 발작> 중에서
"‘살아남는 순간조차 비웃음’이라는 감각으로,
자조와 절망을 아름답게 비틀어낸다."
— 심연의 독자, A
"“밟힌 발을 들키고 말았어요 / 그 아이는 눈을 그믐달처럼 휘며 노랗게 웃더군요”
→ 상처를 들키는 장면이 첫발인데, 그게 다정 아닌 비웃음으로 감각되는 순간이 중심축.
절망스러운 경험으로의 입성이 강렬하다."
— 심연의 독자, B
""고통의 변주."
혈관·창자·울음으로 이어지는 장기적 이미지들이 차갑게 나열되는데,
이게 단순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드러나는 나”라는 노출감 + 수치심을 드러낸다."
— 심연의 독자, C
"아이러니한 애원의 구절들.
“조금은 거칠게 대해주세요 / 나는 웃는 법과 비웃는 법이 동일해요”
→ 자기를 향한 폭력/다정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 오히려 “적당히 때려달라”는 심리.
여기가 시의 잔혹한 핵심."
— 심연의 독자, D
"결말이 특히 좋다.
“상처받지 말아줘요”라는 구절은 폭력과 다정이 뒤섞인 화자의 고백으로,
여운을 남긴다."
— 심연의 독자,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