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표정으로-) 바쁘시더라도요
시원님,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첫 끼니를 챙겨드셨다니요. 반강제 간헐적 단식을 하셨네요. 부득이한 상황이셨겠지만 부디 제대로 챙겨드신 그 한 끼만큼은 배를 따땃이 채워주는 식사였길 바라요.
떡볶이처럼 쫄깃했던 일상을 함께 즐겨주셨다니 기뻐요. 아침에 함께 얼굴 보며 합평 모임을 갖고 또 이렇게 글로도 마주하니 더 새롭네요. 저는 서울에서 일요일 오후를 준비하며 편지를 씁니다. 오늘 포항의 날씨는 어떤가요? 오후에 진행하는 두 가지의 독서 모임 가기 전에 부리나케 저의 사랑스러운 동거인이 만들어 준 알리올리오 한 접시를 가득 먹고 나갈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쓰고 있답니다. 언제나 이렇게 쫓기듯 쓰지만 마음만큼은 느긋한 점 알아주셔요.
11월의 마음이라니. 정말 시의적절한 글이었어요, 시원님. 덕분에 저도 11월 한 달을 돌아보면서 마음과 생각 회고를 해볼 수 있었답니다.
너무 행복해서 이 순간이 끝나면 어떡하지 -
이 마음 너무 공감가요, 저는 이런 마음이 들 때 괜히 이 행복이 어쩌다 깨지게 될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못난 습관을 갖고 있어요. 내 이런 성격 때문에, 다가올 이런 문제 때문에 깨어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 사고습관에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스스로에게 지금 행복하니까 그때가 되선 어떻게 되든 괜찮다고 말하곤 하거든요. 오히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당장 순간의 소중한 것들을 솔직하고 곧이곧대로 마주하고 누리자고요.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 11월이란 제목의 작품이 있는지 몰랐어요. 어찌나 탁월하고 아름답던지요.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이 계절을 날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를 것 같아요. 제철 시가 되겠어요. 짧아진 날을 느끼며 더욱 당신을 사랑하겠노라는 고백을 하다니요. 마음도 본받을 수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 저에게 심고 싶어져요.
서울은, 저도 모르게 너무 좋으면서도 너무 떠나고 싶은 도시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일까요. 가장 복작대고 붐비는 속에 외롭고, 가장 다채로운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지만 너무 바빠서 정작 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건 이 도시 때문일까요, 저의 욕심 때문일까요? 그런 고민이 선자마을을 그리게 만든 걸까요?
연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죠? 곧 조금씩 만나게 되실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아까 합평 시간에 말씀드리긴 했지만, 정말 소설을 써보다 보니 다독, 다작, 다상량이 왜 3원칙처럼 쓰이는지 알 것 같아요. 이전에 쓰던 글의 양으로는 결코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겠다는 걸 절절히 느끼는 요즘이거든요. 아무리 많이 읽고 생각하더라도, 실제로 많이 써나가지 않으면 결코 이야기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요. 막막하면서도 그 세계를 기다려주는 독자가 생겨 쓰는 마음은 더 설레고 기대됩니다.
포항의 밤 이야기해 주셔서 말인데요, 시원 님을 보러 포항에 갔던 일주일의 여행 기간 동안, 홀로 밤바다를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고요하게 검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에 빨려들 듯이 쳐다보며 천천히 걷고 뛰었던 기억이요. 그때는 봄의 끝자락이라 저녁에 딱 뛰기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추워졌겠죠?
서울의 밤은, 그저 저에게 매일 반가워요. 퇴근이 기다리니까요. 퇴근을 밤 10시에 하다 보니 깜깜한 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더라고요. 하하.
좀처럼 하루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더라는 시원님의 일상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네요. 부디 오늘 밤이라도 편안히 하루를 완전히 끝내고 깊은 잠에 빠져드시기 바라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빌려 저의 마무리 인사를 전해보아요.
사회가 조금 더 쌀쌀해졌어요, 시원님. 우리 서로를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