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새로운 모임에 가서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웃기고도 모순되었다고, 어떤 이는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도 묘한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역할(예를 들어 직장인으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나 등)에 맞게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주 5일 동안 전문 상담사로, 하루에 3번 약을 먹거나 병원을 가거나 상담을 갈 때는 주요 우울장애 환자로 분한다.
내가 만난 모든 의사 선생님들과 상담 선생님들, 그러니까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경험이 있으시니까 그만큼 내담자에게 공감하기 쉬울 거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분명 일에 도움이 될 거예요."
나를 위로하려는 말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들이 그나마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가 나의 심리학과 진학을 반대하면서 하던 말은 이랬기 때문이다.
"네가 그 따위인데 누굴 상담하겠다는 거니?"
난 오랫동안 우울감과 자살사고에 시달려왔다. 내가 뭘 느끼는지 모를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쯤부터 종이 뒷면에 자살 계획을 세웠다. 그런 네가 누굴 상담하냐는 말, 그 말이 비수가 되어 10여년 뒤 내 발목을 붙잡았을 때 나는 이미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각종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엄마의 말이 틀렸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나에게 설명하고 위로해주고 싶어했다. 때로는 맞는 것 같다. 내담자들이 느끼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공감이 가능하고, 내담자들도 나의 진심을 느끼며 라포가 형성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의 고통을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일 때도 많다. 아마 그만큼 숙련되지 못했고 훈련이 덜 됐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때로는 생각한다. 차라리 저 이의 마음을 몰랐으면 좋았을 걸.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고통을 느껴보고 말았으면 좋았을 걸.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늪을 건너와서 온 몸이 푹 젖은 채로, 천천히 진흙 속에 빨려들어가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나를 도와달라는 손길이 아니라, 흙이 잔뜩 묻었어도 당신을 도우겠다는 간절한 손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