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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6. 2021

[헌정/리메이크 앨범 7] 오리지널 아닌 오리지널 노래


김광석의 '다시부르기'는 언제 들어도 좋다. 내 경우 정말 너무 많이 들어 이젠 두 앨범의 트랙리스트에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다. 2000년대 들어 리메이크와 트리뷰트가 유행하기 전, 김광석은 거의 10년 앞서 그 유행을 예고하며 자신의 음악적 디딤돌로 삼았다. 기획은 성공적이었고 또한 역사적이었다. 기존에 있던 곡들을 '다시 불러' 이처럼 오래 사랑받은 음반이 과연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었던가. 심지어 수록곡들 중 많은 수가 아직도 김광석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그건 아마도 두 장에 나눠 담은 스물 한 곡을 그가 얼만큼 진심으로 대했고 또 잘 소화해냈는지를 말해주는 방증이리라. '사랑했지만'을 쓴 한동준의 말처럼 김광석은 자신이 부르는 곡들에 "의미와 생명력"을 불어넣을 줄 아는 천생 노래꾼이었다.


'다시부르기' 1과 2는 같은 듯 다르다. 1은 김광석이 이전에 참여했거나(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스스로 발매한 음반들(솔로 1~3집)에서 선곡했고 2는 그가 이전부터 좋아했던 곡들을 담은 것이다. 그러니까 1은 리메이크 앨범인 셈이고 2는 트리뷰트 앨범인 셈이다.


모든 건 '이등병의 편지'에서 시작됐다. 이 곡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활동한 '노래동인 종이연'의 리더였던 김현성이 김광석에게 허락한 곡이다. 애초 김광석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부르고 싶어 했지만 그 곡은 이미 윤도현에게 가기로 돼있던 터라 포기해야 했다.


김현성은 1986 7 옴니버스 음반 '땀흘리며 부른 노래'에서 '이등병 편지'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처음 발표했다. 5  김현성은 자신의  독집 '어린날로부터  편지'에도  노래를 실었다. 여기서  제목은 '이등병의 편지' 된다. 그는  곡을 스물    군대  친구를 서울역까지 배웅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썼다.


'이등병의 편지' 전인권(들국화) 불렀다. 1990년도에 한겨레신문사가 진행한 창간 2주년 기념 대중문화사업의 일환이었던 '겨레의 노래 1' 그의 목소리로 먼저 실린 것이다. 당시 앨범 발매와 함께 '겨레의 노래' 전국 순회공연이 열렸는데 전인권이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김광석이 대신  공연에 참여했다. 덕분에  노래는 지금 우리가 아는 버전으로 박찬욱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JSA' '부치지 않은 편지' 함께 삽입돼 영화의 정서에  버팀돌이 되었다. 김광석은  곡과 관련해 자신의 큰형인  김광동이 1980년도에 군복무  사망한 일을 라이브 앨범 '인생이야기'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오리지널 아닌 오리지널 곡으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비슷한 시기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이장우의 '훈련소로 가는 ' 함께 3 입대송(?)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다시 부르기' 음반에서 김광석 다음으로 중요한 이름은 김창기다. 동물원 동료였던 그는 김광석과 누구보다 절친이었고 김광석은 그런 친구의 곡을 누구보다 많이, 또 잘 불렀다. 김광석은 1에서만 김창기의 곡 네 곡을 부르고 2에서 두 곡을 더 불렀다. 이중 '기다려줘'는 동물원을 떠나 홀로 서는 김광석에게 김창기가 선물한 곡이다. 그리고 '변해가네'는 김창기가 1984년 초여름에 짝사랑하던 여인과 이른 점심을 먹고 기숙사에 바래다준 뒤 도서관으로 돌아오면서 만든 노래다. 내 경우 김창기가 부른 동물원 버전을 더 좋아하는 '잊혀지는 것'은 그가 24살 때 "사랑과 인생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한 스물네 살 때 만든 노래"였다. 생전에 도노반과 김민기와 송창식을 좋아한 김광석은 그렇게 김창기의 곡들로 대중에게 더 가깝고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김광석은 김창기의 음악적 페르소나였다.



물론 김현성의 곡과 김창기라는 이름은 이 두 음반을 대표하곤 있지만 기억해야 할 사람과 곡은 그 외에도 많다. 같은 동물원 출신인 유준열이 허락한 '새장 속의 친구',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너에게'라는 김광석의 대표곡을 쓴 김형석, 김민기와 동시대 인물이지만 조명은 덜 받은 김의철의 '불행아', 동요와 CCM, 민중가요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펼친 백창우(정호승의 시를 가사로 쓴 '부치지 않은 편지'가 그의 작품이다)의 '내 사람이여', 한국 블루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타리스트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밥 딜런의 원곡에 포크 뮤지션 양병집이 한글 노랫말을 붙인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연을 맺은 한동헌의 '나의 노래'와 '그루터기',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1990년도에 발표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특히 '다시부르기 2'의 대표곡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아이유가 즐겨 불러 지금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노래로, 과거 김광석이 마포대교 지나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듣고 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영국에서 밴드 활동 때 현지 노부부를 보고 만든 곡이라 밝힌 김목경은 한때 김광석에게 빌린 돈과 이 곡을 "퉁쳤다"는 에피소드를 한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풀어놓기도 했다.


선곡과 노래, 원작자들도 중요하지만 역시 스튜디오 앨범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의 역할도 흘려 보아선 안된다. 여기에선 편곡과 베이스를 맡은 조동익을 비롯해 함춘호(기타)와 신현권(베이스), 박용준(키보드)과 김영석/강윤기/이철희(드럼)를, 그리고 이훈석(믹스)과 이춘석/김윤겸/김태하/최권순/윤상철(녹음)을, 송어시스턴트 신윤선을, 임창덕과 이용준(엔지니어)을 기억해야겠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이 음반이 명반으로서, 무엇보다 음악으로서 가치를 획득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다시부르기 1'의 재킷 그림을 그린 사람이 김광석의 친구이자 과거 소극장 학전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이창우라는 사실도 이참에 짚고 가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실린 김광석 4집 그림도 그의 솜씨였고, 김민기 전집음반 디자인과 뮤지컬 '지하철1호선'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션도 죄다 이창우의 땀이었다. 그는 김광석을 이미지의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겨준 사람이다.



실제 '다시부르기' 음반들은 이들의 노고를 크레디트에 유난히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가령 '다시부르기 1'에서 경우, 앞서 조동익의 편곡을 말했지만 사실 '기다려줘'와 '이등병의 편지', '그루터기'는 김광석이 직접 편곡한 것이고 '너에게'와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곡을 쓴 김형석이 편곡한 것이다. 또 베이시스트 조동익은 야마하 6현 프렛리스 베이스와 TOBIAS 5현 베이스를 썼고, 기타리스트 손진태는 마틴 어쿠스틱 기타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일렉트릭 기타를 썼다. 색소폰은 당대 최고라 일컫는 이정식의 연주이며, 건반 주자 박용준은 어느 지점에서 야마하 어쿠스틱 피아노를 연주했다. 함춘호는 '기다려줘'에 기타 솔로를 입혔고, 김광석은 '이등병의 편지'에서 HONER 하모니카를 불었다. 더불어 김형석은 자신의 곡에서 신시사이저 모듈인 프로테우스 XR-1을 활용했다. 노래를 더 힘있고 풍성하게 만든 코러스에는 한동준을 비롯해 장필순, 윤영로, 김수철, 안치환 등이 참여했다. 이 모든 정보가 앨범 크레디트에 빼곡히 적혀있다.


세수를 하다말고 문득 바라본 거울속의 내가 낯설어진 아침, 부르고 또 불러도 아쉬운 노래들을 다시 불러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1993년 2월 6일, 김광석은 첫 번째 '다시부르기'에 썼다. 기회가 된다면 록과 블루스도 해보고 싶었다는 김광석의 밝아보였던 미래는 그러나 2년 뒤 나온 '다시 부르기 2'에서 결국 멈추고 만다. 김민기는 그런 김광석을 "좋은 노래 콜렉터"라 했고 김현성은 그가 부른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노래 임자는 따로 있는 듯" 하다고 했다. 아이유는 소극장 공연에서 기타 한 대로 관객을 사로잡은 자신의 영웅을 앨범에서든 공연에서든 틈만 나면 기리고 또 기린다. '변해가네'의 가사처럼 모든 것이 변해가고,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처럼 변함없는 음악을 만난다는 건 늘 설레는 일이다. 그렇게 닳도록 들었어도 또 듣고 싶은 '새로운 헌' 노래들. 김광석이 불렀기에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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