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가 내리던 날

by 은선

7살이었던 나는 어떤 아저씨의 두 팔에 안겨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나에게 새로운 아빠가 생기던 순간이었다.

유난히 검고 숱이 많던 머리, 툭 불거진 광대뼈, 햇볕에 타서 까맣게 그을린 피부, 거칠고 두툼하던 손.
그날, 새아빠는 나를 보며 웃었을까?

나와 오빠는 초대받지 못한 엄마의 결혼식이 끝난 후, 곧 불러오는 엄마의 배를 마주했다.
새로운 동생이 생긴 것이다.

새아빠는 선장이었다. 며칠을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다시 육지로 들어왔다.
함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가끔 오래 머물 때면 큰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올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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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배가 너무 무거워져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질 것 같던 어느 날,
새아빠가 고기잡이로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는 무거운 배와, 나와 오빠를 데리고 외할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떠났다.
시외버스 안에서 엄마는 쉬지 않고 알사탕을 빨게 해서 토를 막았지만,
귀에 걸어둔 검은 비닐봉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멀미가 심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몇 시간을 달리고, 버스를 갈아타서 드디어 목포에서 전남 강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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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삭의 몸으로 그 먼 여정을 떠난 이유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새끼를 낳으려는 동물의 본능 같은 것이었을까.

초여름 밤. 마른 날씨 속에서 바삭바삭 타들어가던 새벽,
엄마의 진통이 시작됐다.

첩첩산중의 작은 마을에는 병원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동네에 산파를 찾아다녔고,
나와 오빠는 절대 마루에 나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작은방에 갇혔다.

문고리에는 숟가락 하나가 걸려 있었다.
철통보안처럼.
하지만 하얗고 빳빳한 창호지는 침 묻은 검지손가락으로 톡 찌르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동생이 나오려나 보다. 이제 나에게 올 사랑이 한 번 더 나눠지는 걸까?’

엄마가 왜 그렇게 울부짖는지,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내가 보지 않으면, 현실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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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신음 소리, 고무 슬리퍼 소리, 찰박거리는 물소리, 말소리, 가위 소리,
그리고 흙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고리에 꽂아둔 숟가락이 빠지는 소리도 났다.

조용히 마루로 나오니, 마루 한가운데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었다.

‘엄마가 죽은 게 아니구나.’
안도감이 밀려왔다.

울음이 차올랐고,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귀찮게 하지 말라며 다시 작은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 방에는 뻘겋고 작은 아기가, 하얀 보자기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산파 할머니는 말했다.
긴 가뭄 끝에 오늘 새벽 단비가 내렸다고.
그렇게 내 동생은 단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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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는 작고 빨갰고, 머리칼은 검었으며,
보자기 사이로 나온 손가락은 만두처럼 동그랗고 단단하게 쥐고 있었다.

‘그 고얀 것이 엄마를 저렇게 아프게 하고, 고생시키다니…’
나는 손등을 꼬집어 봤다.

코, 코… 거리며 자는 아기.
‘이제 엄마의 사랑은 너에게 가겠지.’

팔뚝을 꼬집어 봤다.
코, 코… 거리며 자는 아기.

죽은 것도 아닌데 미동 하나 없는 그 애가 정말 살아 있는 건지 확인하는 김에,
내 심술을 담아 볼을 꼬집었다.

으앙— 하고 울음이 터졌다.

외할머니인지, 산파할머니인지, 무슨 할머니인지 모를 이들이 몰려와 물었다.
“네가 울렸냐?”

“아니요. 혼자 울던데요.”

단비는, 내 마른 마음엔 단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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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핏덩이 하나가 더해진 우리는 강진에서 다시 목포로 돌아왔다.

마당 한가운데, 무화과나무 아래에는 깨진 유리창이 널브러져 있었고,
세상 처음 본 꽃다발은 밟힌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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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빠는 엄마가 외할머니 집에서 단비를 낳아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단비가 딸이라서 화가 난 걸까?
그도 아니면,
엄마가 집 열쇠를 가져가 문을 열 수 없었던 게 이유였을까?

단비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새아빠는 가끔 엄마의 배를 때렸다.

아이의 탄생 앞에서 그가 보인 무심함은,
사랑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자기 인생 안에 누군가를 온전히 맞아들일 마음조차 없었던 걸까.

나는 그때,
그 모든 것이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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