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 친구들과 일상을 나누며 지내던 어느 날 그 친구 중 나중에 합류한 친구의 어머님이 오랜 암투병 끝에 돌아가시며 장례식에 가게 됐다. 오랜만에 그 친구의 지인들도 만나고 나도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장례식에 가면 늘 그렇듯 이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오랜만의 인연들에 대한 반가움들이 뒤섞여있다. 어머님의 장례식에서 나도 자연스레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스무 살..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려던 사업이 잘못되고 엄마 몰래 집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엄마까지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 아빠도 연세가 다 드셔서 또 실패를 하게 되니 병까지 얻으셔서 정말 행복했던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아빠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하진 못하셨다. 그래도 엄마가 바깥일을 도맡아 하시며 무리 하시진 않았기에 건강이 나빠지진 않고 지내오셨다.
다행히 병원에서 한 달 만에 퇴원하시고 집에 오셨는데 스스로 저지르신 일이 뒤엉켜 마음도 힘드시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일 년 정도 쉬시다가 경비일을 하신다며 일을 다니시게 됐다. 엄마의 오뚝이 같은 성격과 나의 낙천적인 성격이 더해져 그 시간들도 점차 이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하루하루도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함께였기에.. 그렇게 지내시다 급작스레 귀 통증부터 시작하셔서 온몸이 무너지듯이 아픈 곳이 터져 나오셨다. 그동안 참다가 이렇게 되신 것인지 오랜 지병에 합병증들인 건지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오가셨고 집에 와서 지내시다가도 안 좋아지시면 응급실로 실려가길 반복하셨다. 그때마다 엄마도 나도 놀라서 다음날 출근해서 어찌 일했나 싶었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아빠는 더 이상 큰 병원에서 집에 돌아가는 날이 기약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술도 하시고 합병증에 회복도 더디고 연세가 있으시니 점차 의식도 많이 흐려지셨다. 아빠도 겁이 많으셔서 이렇게 병원에 오시면 안 그래도 높던 혈압이 더 높게 측정되셨고 나도 아빠를 따라다니다 보니 이때 이후로도 병원만 가면 혈압이 높아져버리곤 한다. 엄마도 아빠가 마지막인 것 같아 모든 걸 정리하시고 아빠 곁에서 병간호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아빠가 급작스레 나빠지기 전 나이 많은 우리 언니가 소개받은 분과 소개팅을 했었는데 그 분과 잘되자마자 아빠가 더 많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언니를 만나러 병원으로 종종 오시게 되었다. 둘 다 나이가 있기에 결혼을 서둘러 날짜를 잡을 즈음 아빠의 담당의사는 아빠가 일주일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며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시라고 일인실을 주셨다. 아빠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셨고 가족을 알아보는 게 전부셨다.
일인실에 들어간 첫날 언니는 아빠에게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됐는데 결혼식이 한 달 뒤니 꼭 버텨달라고 울면서 얘기했다. 아빠가 의식이 또렷하지 않아 들으셨을 것 같지 않았지만 아빠가 들으셨던 것 같다. 기적이 일어났다.
아빠가 의사가 말한 일주일의 시간을 더 버티시고 더 나빠지지 않고 그대로 셨다. 의사는 미안한 얼굴로 괜찮아지셔서 다행인데 일인실에서 다시 지내시던 병실로 옮기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빠가 버티신 것만으로도 일인실이 필요 없어졌다. 그렇게 언니가 결혼식을 끝내고 아빠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고 며칠 뒤 나에게 아빠가 다급하게 산소 호습기를 하신 채 말을 거셨다. 의식이 없던 아빠가 근래에 처음 말을 거는 거라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틀니를 다 빼시고 거의 입모양만 하시는 정도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해 아빠의 입모양을 보며 무언가를 사
달라는 이야기신가 하고 아빠의 입을 봤다
.... 사줘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아빠 사달라고요~? 필요한 거 있어요~?
아빠는 아니... 하시며 다시 힘주셔서 말씀하셨다.
웃어줘... 아빠가 나에게 하신 말씀은 웃어줘였다.
늘 밝던 딸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근심 걱정이 가득하자 아빠는 웃던 모습이 보고 싶으셨었던 같다. 정말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환하게 웃었다.
철이 없어 아빠가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사고 치신 거.. 다른 아빠들과 비교하면 많이 나약하셔서 원망도 했던 거.. 그동안 나만 생각했던 시간 동안 누구보다 가장 힘드셨던 건 본인이셨을 거라는 걸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건강하지 못해 딸에게 못해줬던 것도 일하는 엄마를 보며 매번 미안해했을 것도.. 언니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의식이 없어도 끝까지 버티신 것 같다. 아빠는 늘 말없이 그 자리에만 계셔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해서 그 사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은 참 소중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시고 며칠 후 정확히 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 뒤에 투석실에서 투석을 받으시다 심장이 멈추셨고 의사가 급히 응급처치를 해서 시간을 벌어주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시듯이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 미소 지으시며 떠나셨다. 오빠가 뒤늦게 도착하여 아빠와의 시간을 갖고 우린 그렇게 아빠를 보내드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고 이미 눈물은 다 흘려선지 장례식에선 마음이 덤덤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까지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크게 변화가 시작된 그 시작점이 만나 제과점의 문을 열고 가게에 발을 디디게 된 순간이었다. AB클럽의 결말은 객관적인 친구는 소개받았던 남자와 결혼했고 뒤늦게 합류한 친구는 헤어졌다. 나는 사장님과 결혼했다. 최민수 씨의 부인 강주은 씨가 했던 얘기처럼 결혼식장에서 지금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늦었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만나 제과점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끝나는 곳이자 시작인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