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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물함은 왜 한 번에 안 열리는 거야!

하얀 쪽지 하나. "하진아, 오늘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을까?"

by 박재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나니 더 더워졌다. 땀을 덜 흘리기 위해 책상에 엎어져 있었는데, 강찬이 뭔가 혼자 좋은 것을 알고 있다는 얼굴로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야, 하진아. 너 사물함 한 번 열어봐라,”

“왜?”

“아 빨리 열어봐”
나는 별로 흥미가 안 났지만 히죽 거리는 그 녀석의 표정에 어울려주기 위해 사물함으로 걸어갔다. 언뜻 생각했지만, 사물함에는 땀 냄새 밴 체육복과 대충 욱여넣어 구겨진 가정통신문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무심하게 사물함을 잡아당겼다. 한 번에 열리는 법이 없다. 대체 사물함 따위에 왜 이리 강한 자석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워서 그런가. 괜히 짜증이 났다. 반대손으로 옆을 짚고서 힘주어 당겼다. 턱! 열렸다. 순간. 사물함 속에서 한 움큼의 시원한 기운이 흘러나와 얼굴을 살짝 식혔다. 그리고 낯선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쪽지 하나.


새하얀 쪽지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가 보통 과자봉지를 쪽지로 접어서 버리는 그 모양으로 말이다. 말로만 듣던 연애편지인가 싶어 내심 기대가 차올랐다.


뒤에서 강찬의 관심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보려고 하면 보일 수 있도록 간격을 내어주고 그 자리에서 쪽지 매듭을 풀었다.


“하진아, 오늘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을까?”

글씨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목소리가 재생됐다. 그대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교실을 둘러봤다.


있다. 모한비는 자기 자리에서 6교시 책을 미리 펴놓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볼펜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귀에 걸리지 못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어떤 표정인지 알 수는 없었다.


모한비가 넣고 간 것을 봤다며, 강찬이 호들갑 떠는 것을 6교시 수업종이 겨우 진정시켰다. 나는 다시 주머니 속 쪽지를 만지작 거렸다. 설마 했는데, 이거 진짜 고백인가? 강찬에게 별일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머리털 나고 여자에게 처음 받아 보는 고백이었다.


헌데, 별 감흥은 없었다. 단지, 묘하게 뿌듯했고 만족스러웠다.

‘역시 그랬군.’


그래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여자의 등장과 고백에 기분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손에 깍지를 껴 머리 뒤에 대고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괜히 선풍기 쪽을 잠시 쳐다보고선 다시 창가로 시선을 옮기며 더위가 살짝 식어가는 것 같았다.






<계속, 매주 2편씩 올립니다>

(Image. @st.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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